(재)대한불교진흥원이 ‘세상을 위한 불교, E-GREEN BUDDHA의 세계로!’를 주제로 개최한 신년 강연회의 다섯 번째 순서로 한국학중앙연구원 김형효 명예교수가 ‘세상을 위한 불교’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벨기에 루벵대에서 서양 후기구조주의 철학을 전공한 김형효 교수는 공군사관학교, 서강대를 거쳐 한국학대학원에서 서양철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10여년전 우연히 청화 스님의 저작 『가장 행복한 공부』를 읽은 후 불교에 입문한 김 교수는 이후 불교학에 대한 연구에 몰두해 『하이데거와 화엄의 사유』, 『원효의 대승철학』등 불교관련 저작을 펴내는 등 서양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과 한국 불교학을 접목한 수승한 학문세계를 펼치고 있다.

2월 5일 오전 11시 대한불교진흥원 3층 대법당에서 ‘세상을 위한 불교’를 주제로 강연을 한 김형효 교수는 불교가 21세기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전했다. -편집자주

크게보기

추운 날씨에 이렇게 나와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번 강연회의 대주제가 ‘세상을 위한 불교’인데, 저 또한 ‘세상을 위한 불교’를 주제로, 불교가 세상을 위해 무슨 생각, 어떤 행동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저는 사실 지금 양쪽 눈이 거의 보이질 않습니다. 백내장이 와서 3월달에 양쪽 눈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글씨도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은 눈이 안 좋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컴퓨터도 치기 힘든 상황이라 강연회 원고를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께 이렇게 육성으로 이야기해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젊었을 때만 해도 지식인들, 특히 신진 서구문물을 먹은 사람들은 기독교 쪽으로 몰렸지 불교 쪽으로는 몰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때만 해도 불교는 어딘가 뒤져서 새롭고 싱싱한 문명의 냄새가 안풍기고 좀 뒤쳐졌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요즘에 와서는 주객이 전도됐습니다. 지금 불교를 믿는 불자들은 가장 앞선 사상과 가장 선진적인 철학, 종교사상을 몸에 지니고 사는 분들이라 자부심을 갖고 불교를 수행해도 됩니다. 지금은 불교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제가 구라파에서 공부를 몇 년간 했는데, 가톨릭이든 기독교든 요즘 구라파 사람들은 믿지를 않습니다. 사상이 유치하고 후져서 요즘에는 그런 이야기를 믿지를 않아요. 한국만 유독 가장 열렬한 기독교인데, 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변하면 한국도 변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미국의 최고 지식인들은 이미 불교 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추세가 불교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 불교의 호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절대 안됩니다. 세계가 불교로 축을 바꾸는 있는 이 시기에 우리가 잠자고 있으면, 좋은 시기가 와도 좋은 열매 맺지 못하면, 22세기에 또다시 서글픈 시대가 될 수밖에 없다, 저는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22세기에 가장 빛나는 종교, 가장 수승한 사상이 되기 위한 정지작업이다, 저도 할 시기라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신념으로 다소 불편한 몸을 이끌고 부처님의 법을 세상에 전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제가 원고도 없이 돋보기를 비춰가면서 강연을 하더라도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주제가 세상을 위한 불교인데, 세상을 위한 사상은 두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과학기술 문명이고, 또 하나는 도덕윤리 문화입니다. 과학기술 문명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는 서양에서 발달한 것이고, 도덕윤리 문화는 동양의 유교문화에서 크게 강조돼온 것입니다.

근대화는 과학과 기술화를 의미합니다. 과학기술을 통해 선진국을 따라잡자는 것이 박정희 대통령이 부르짖은 근대화입니다. 과학기술 문명의 세계 지배와 더불어 기독교도 공짜로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과학기술문화의 덕택입니다.

두 번째 유교문화인데, 조선조 500년간 한국사회를 지배한 사상입니다. 조선시대 500년간 불교는 너무너무 탄압을 받아서 숨도 못쉬었습니다. 얼마나 탄압을 받았는지 스님들은 여덟가지 천민(八賤) 중의 하나라고 해서 도성에 들어오지도 못했고, 도성에 들어오면 아이들이 몰려들어 돌을 던지기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스님들은 산간에 숨어서 살 형편이 되다보니 조선시대에 불교는 노파들이 가족을 위해 복을 비는 종교로만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불교가 우상숭배다, 무식한 노인네들이 돌 보고 나무 보고 절을 하는 우상숭배의 종교”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런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불교가 무엇인가 하고 자신감 있게 불교의 특징과 역할을 외쳐야 할 때입니다. 지금 대단히 중요한 시대에 왔습니다. 그래서 불자들은 기독교 신자들보다 훨씬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어떤 스님들은 책을 보지 말라고 가르치는데,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책을 보면 알음알이가 생겨서 안된다고 책을 못보게 하는데, 책을 많이 보고 생각이 깊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 서적은 잘 팔리는데 불교서적은 잘 팔리지가 않아 불교전문 출판사들이 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문제입니다. 불자들은 스님들의 틀린 것도 지적해 가면서 공부를 많이 한 불자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이제 과학기술의 혜택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교가 과학기술을 위해 도움을 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과학은 편리의 이익을 증진시켜 주었습니다. 유교와 기독교는 도덕윤리주의입니다. 도덕 윤리주의는 항상 선을 강조합니다.

목사님들은 항상 악과의 투쟁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불교는 악과 투쟁하라는 이야기를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불교의 아주 큰 장점입니다.

도덕윤리주의의 특징은 선을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기독교만큼 선을 강조하는 종교는 드뭅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불사선불사악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지구상에서 제가 아는 종교 가운데 선도 생각지 말라고 하는 가르침은 불교가 유일합니다. 선도 생각지 말라는 이야기는 대단히 깊은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왜 부처님께서 선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는지가 우리에게 주어진 화두이자, 공부의 과제 중 하나입니다.

과학기술의 편리, 도덕윤리의 선을 조금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면 편리는 유위, 도덕적 선은 당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편리는 누구나 거부할 수 없는 고마운 것이지만 편리가 편리주의가 되면서 모든 세상을 편리 위주로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편리한 가치만 생각하게 되면 편리하지 못한 인간은 도태되어야 마땅합니다.

당위주의에서는 도덕과 윤리를 강조합니다. 도덕과 윤리를 누가 나쁘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도덕과 도덕주의는 다릅니다. 편리와 편리주의가 다르듯이 도덕과 도덕주의는 다릅니다. 도덕만을 최고의 가치이자 규범이라 여기는 것이 도덕주의인데, 도덕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자신이 대단히 도덕군자인 척 행동을 합니다.

조선조가 왜 저리 건강하지 못한가. 조선조는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이 도덕적인 이데올로기로 무장을 해서 도덕주의적 규범으로 상대방을 심판한 시대입니다. 우리 사회가 그렇습니다.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남을 심판할 때는 엄청 도덕적인 기준으로 남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사람들은 상당히 위선적인 도덕주의자입니다. 털어 먼지 안나는 사람은 부처님과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를 망치는 자들이 이런 위선적 도덕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들의 위선, 옹고집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분열시켜 나갑니다.

이런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일수록 규범이 너무 강조됩니다. 그래도 우리같이 나이 먹은 사람들은 참고 사는데, 젊은 사람들은 규범이 강조될수록 이탈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집니다. 도덕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강할수록 탈선을 하고 싶어하는 충동도 강해집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질입니다.

제가 벨기에 루벵대학에서 유학을 하고 있을 때 모딜리아니 그림을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제가 모딜리아니 그림을 아주 좋아합니다. 모딜리아니는 그림이 너무 앞서가서 거의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작가입니다. 모딜리아니 그림은 여자 그림인데 나체 그림이 많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몸이 그 자체로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그것을 모딜리아니가 아주 아름답게 묘사했는데, 그 전시장에서 그림을 보고 못볼껄 봤다는 듯이 고개를 팩 돌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저 사람 틀림없이 목사겠구나’ 라고 생각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다가 사동 하나가 와서 몽빠스떼(목사님) 하고 부르는 겁니다.

그걸 보고 여인의 몸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 저와, 그걸 보고 고개를 팩 돌린 목사 둘 중에 누가 더 음탕합니까. 그 목사가 저보다 훨씬 더 음탕한 생각을 한 것입니다.

선을 지나치게 생각하면 꼭 부정이 오기 마련입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이 왜 저렇게 싸우느냐, 양쪽 모두 선과 진리를 위한 군대이고 악을 제거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악을 물리치는 성스러운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선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위험합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갔을 때를 신대륙의 발견이라 명명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어떻게 신대륙입니까. 이미 그곳에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처음에 흰 피부를 가진 유럽인들을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비해 백인들은 인디언을 짐승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시 기록 가운데 “인디언들이 영혼이 있을까, 없을까”라는 글이 남아있을 정도로 상대를 보는 눈이 달랐습니다.

크게보기

선 중심, 편리 중심의 생각은 자아 중심의 사고입니다. 이를 좁혀서 들어가면 이기적인 생각, 자기 것이 보편적이다라는 생각으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불교는 자신의 논리를 갖고 보편성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불교는 무아, 공심을 강조하는 종교인데, 공과 허가 불교의 유일한 보편성이라면 보편성입니다. 이 가르침은 불교뿐만 아니라 생활의 진리로 깊이 생각돼야 할 문제입니다.

부처님은 자기 주장이 없습니다. 스스로를 신이라고 일컫지도 않습니다. 신과 부처의 차이점은 바로 보편성의 문제입니다. 공의 입장에서 보면 삿된 견해도 모두 용납해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정화하려고 노력해도 악은 생기기 마련입니다. 도덕으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현대사에서 정의군으로 무장해 악인들의 씨를 말리겠다고 나선 이들이 몇몇 있습니다.

모택동은 문화혁명을 통해 30만명의 지식인들을 처형했고, 히틀러는 게르만의 순수성을 지키겠다며 유태인 600만을 학살했고, 스탈린은 100만을 죽였습니다. 키우 쌍 판은 캄보디아를 살균소독 국가로 만들겠다며 공부 한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 300만을 처형했습니다. 인구의 절반을 죽인 것입니다. 선의 사회를 만들겠다는 노력들이 이런 대학살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불교는 그런 노리가 아닙니다. 선만 남기고 악을 모조리 제거하면 선만 남을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남은 선이 둘로 나뉘어 또다시 선과 악으로 대립하는 것, 이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사회 구제가 안됩니다.

하이데거가 한 유명한 이야기 중에 장미꽃이 왜 피는가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핀다고 하는데,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인간에게 보이기 위해 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인간 중심의 사고입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장미꽃은 피기 때문에 핀다”고 말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말장난처럼 들리지만 자기의 본성(불성)을 피우기 위해 피우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가끔 스님들은 욕망을 너무 부정합니다. 욕망을 부정하는 것은 부처님 말씀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부처님이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성밖으로 뛰쳐나간 것은 욕망이 아닙니까. 탐욕만이 욕망이 아닙니다. 스스로 완성된 자가 되고자 하는 것도 욕망입니다.

불교를 도피주의, 소극주의라고 설명하는 것도 잘못된 해석입니다. 우주의 모든 만물이 지니 욕망을 그대로 피워주는 것, 그것이 바로 불교입니다. 개도 짖고 싶어서 짖는 것이고, 꽃도 피고 싶어서 피는 것, 인간도 말하고 싶어서 말하는 것이 바로 일심 사상입니다. 일심을 다른 말로 하면 우주심, 우주의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우주의 모든 존재들은 자기를 나타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같은 가르침을 담고 있는 불교가 21세기에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선도 생각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는 세상인데, 허심 공심만이 이 세상을 여여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가르침입니다.

불교는 편안해야 합니다. 한국사회는 결코 편하지가 않습니다. 도처에 스트레스로 가득 차 암환자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불교가 해야 할 일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불교는 편안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해야 합니다.

저는 “노는 사회”가 아주 좋은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악인도 놀이에 빠지면 이미 악인이 아닙니다. 선인도 놀이에 빠지만 선인이 아닙니다. 그냥 즐거울 뿐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회로 가야 합니다. 선인만이 있는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이는 부처님도 못합니다. 불국토는 5000만을 불보살로 만드는 세상이 아닙니다. 대신 놀이 하는 사회를 만들어서 마음씨가 안좋은 사람들도 같이 즐거워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예술이 우리사회를 구원하지, 도덕이나 과학기술이 우리 사회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예술은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음악, 아름다운 그림, 아름다운 경치가 우리를 구원해줍니다.

불교가 아름다움을 생활화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줘야 합니다. 불교는 산속에서 머물며 도피나 소극주의의 사상이 아니라, 離苦得樂 즉 괴로움을 떠나 기쁨을 얻는 것이 불교의 본질입니다. 지금 그 이고득락의 길을 세상에 외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