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글이나 말을 하기보다는 행동으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법회처럼 말을 해야 하는 자리에 서면 어색합니다. 말도 어눌하고, 수행력도 부족한 사람이 공연히 소중한 시간을 뺏는 것은 아닌가, 염려스럽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닫고 처음 하신 말씀이 “참 기이하고 기이하구나. 일체중생이 여래와 같은 성품을 지니고 있는데, 분별망상으로 인해 알지 못하고 있구나”였다고 화엄경에서 밝혀놓고 있습니다. 또한 선종사의 중요한 인물인 육조 혜능 선사는 “선지식들이여, 마음을 깨끗이 하고,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생각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육조 혜능 대사의 이런 발견을 인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믿습니다.

보통 깨달음의, 즉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음을 잊어먹고, 바깥 경계에서 허덕이며 살아가는데, 두 성인은 윤회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위대한 발견, 즉 각자의 성품 안에 깨달음의 법, 마하반야바라밀법이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나옹 선사깨서 말씀하시기를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에는 매사에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전부라는 교훈이 담겨져 있습니다.

크게보기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잠자고, 졸리지도 않는데 누워서 망상을 펴지 말아야 합니다. 신심명을 지은 3조 승찬대사는 온 몸이 짓무르는 병이 들어 전생의 업이라고 생각하고 업을 씻기 위해 전국 도처를 돌며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마침내 2조 혜가대사를 만나 자신의 업을 씻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리자, 혜가 스님이 말씀하시길 “그럼 그 업이 어디에 있는가? 내게 보이라”고 했는데, 승찬대사는 이 말에 크게 개안을 했다고 합니다. 참 마음자리를 보게 된 것이지요. 그런 승찬대사가 쓴 책이 신심명인데, 그 첫구가 지도무난 유염간택(至道無難唯嫌揀擇) 단막증애 통연명백(但莫憎愛洞然明白), 즉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리라’입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나 오직 간택함이 꺼려질 뿐이라는 것, 그런 것입니다. 분별심을 이야기 한 것이지요.

우리는 사실 늘 일상에서 구별을 하고 살아갑니다. 구별을 위해 공부도 하고, 책도 보고, 생각도 하게 됩니다. 오늘 이 순간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 법회에 참석한 것도 삶의 지혜를 찾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별하는 삶, 더해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자,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 마음이 영원토록 오래 동안 유지되는가? 그렇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면, 기대감이 커지고, 기대감이 크면 실만도 크게 됩니다. 결국 화를 돋우고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네 삶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삶에 대한 애착이 많아질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깊이가 더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삶을, 이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유지시키고 키워갈 것인가? 이것은 ‘대 전환’이 있어야만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지적 능력이나 경험에 의지해 판단하고, 그것을 최고의 가치관으로 두고 살아가는 한 ‘대 전환’은 불가능합니다.

이미 2600년 전에 부처님께서 밝히신 ‘누구에게나 나와 같은 지혜와 덕상이 있다’는 것이나 육조 혜능대사의 ‘청정한 그것을 드러내라’는 것에 길이 제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시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 시각을 버리면 드러납니다.

크게보기

제가 10년 전 백양사 운문암에서 정진했던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마음이 설레고 꿈틀거립니다. 그땐 늘 선방에 갈때면 양식처럼 차를 싸서 갔습니다. 다각실에서 차를 내면 여러 스님들이 찾아와 ‘맛있다’며 모여듭니다. 모여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됩니다. 처음 한 달 간은 주로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그러다가 한 달 반쯤 되면 다른 이야기가 섞여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외려 차를 내는 것이 나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고, 1999년 동안거에는 아예 차를 싸가지고 가지 않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철에는 차도 마시지 않고 공부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실천했습니다. 마침 그 선원에는 25년 동안 참선정진만 해왔던 분, 일본서 선학박사학위를 받은 분, 선어록을 달달 외는 분 들이 함께 정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치를 하고는 다시 좌복에 앉고 틈만 나면 좌복에 앉으니 속이 덥수룩하고 소화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양의 양을 줄였지요. 조금 먹으면 덥수룩해 공부에 방해를 받지는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그랬더니 정신이 맑아져서 잠이 오지 않는 겁니다. 정신이 말짱하니, 그냥 일어나서 앉았지요. 용맹정진이 된 것이지요.

그러기를 한 달여쯤 되었을까, 문득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었습니다. “아, 내가 속았구나! 내가 그 경력에 속고 산 것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나니 한 스님, 한 스님이 다 똑같이 보이고, 잘 사는 스님으로, 다 거룩한 스님들로 보이는 거예요. 내가 그동안 차별심에 속았구나, 하는 생각에 이어 모든 분들이 소중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사람만이 아니라 바깥의 나무와 풀도 다 소중하게 보이는 겁니다. 그리고 아, 앞으로 내가 적어도 속지는 않고 살겠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그래, 바로 승찬대사의 ‘간택함이 없이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게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요.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는 것이 이해가 되고, 나무와 내가 정말 소통할 수 있는 것이구나라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나무와 대화하고, 마음을 나누고, 뭐 이런 거죠.

함께 정진하던 대중 가운데, 말이 거친 분이 한 분 있었는데, 그와는 말을 섞지 않고 지내리라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 스님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렇게 고맙고 대단하게 여겨지는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보이는 이것 이대로가 가장 중요하고 소중합니다. 모든 것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된 것입니다.

육조단경에 무념(無念), 무상(無常), 무주(無住)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분별심을 떠난 시각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중도라고도 합니다. 이런 시각이 바로 부처님의 시각입니다. 이런 시각으로 함께 해야만이 서로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나무와 나, 사람과 나, 세상과 나가 이럴 때에 비로소 소통이 되는 것입니다.

무념에서 평화로움을 얻고, 무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무주에서 진정한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됩니다. 망상이 없으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고정된 상이 없는 생각이 행복을 불러다 줍니다. 머무는 마음은 자신을 구속합니다. 머물지 않아야 자유롭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소중하게 나누는 것, 진실되게 자기의 삶을 가 주는 것, 이것이 진정한 공양이며, 그 마음을 지극하게 나누는 것이 보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