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교에서는 스승이 제자에게 자신이 쓰던 발우와 가사를 전함으로써 법맥을 전수했음을 알린다. 부처님을 그리는 불모(佛母)들은 자신이 밑그림으로 쓰던 초도(草圖)를 제자에게 전함으로써 자신의 그림을 전수했음을 인정했다.

초도란 불화의 밑그림으로, 선(線)으로만 그린 그림을 일컫는다. 박물관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는 채색이 안된 부처님이 그것이다. 이를 선으로만 그린 그림이라고 해서 선묘도라고 하는데, 불화에 문외한인 사람들은 미학적인 효과를 위해서 선으로만 그린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불화를 그리기 위한 밑그림 즉 초(草)이다. 풀 끝과 같은 붓으로 선을 그렸다고 해서 초도(草圖)라고 불린다. 초도를 따라서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색을 입히면 불화가 완성된다. 어느 절을 가더라도 불화들이 비슷비슷한 이유가 바로 조선시대부터 전승돼온 초도를 기초로 해서 그려졌기 때문이다.

현대 불교미술사에 있어서 최고봉으로 꼽히는 만봉 스님의 제자 양선희 작가가 스승으로부터 받은 초도(草圖)에 천연 안료들로 색을 입힌(石畵) 불화들을 전시하는 초도석화전(草圖石畵展)을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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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봉 스님의 수많은 제자 가운데 3명의 단청 전수조교 중 한 명인 양선희 작가는 1986년 만봉 스님의 문하에 입문해 20여년간 사사를 받은 대표적인 제자 중의 한 명이다.

이번에 세 번째 전시회를 여는 양 작가는 “저에게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예불을 올리는 마음으로 불화를 그리는 법을 가르쳐 주신 만봉 스님께 고마운 마음을 표하기 위해, 스님이 항상 강조하신 전통불화의 원형을 살려야 한다는 뜻을 받들기 위해 이번 전시회를 초도석화전으로 열게 되었다”고 밝혔다.

만봉 스님은 2006년 입적할 때까지 평생토록 그림만 그린 우리 시대 최고의 불모로 꼽힌다. 만봉 스님은 항상 제자들에게 “전통적인 기법을 살려 맥을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스님은 제자들의 그림이 어느 정도 도달했다고 판단됐을 때 만봉 스님이 그 스승으로부터 받은 초도를 주시곤 했는데, 이는 그 초도에 담긴 불화의 전통을 살려라는 당부의 또다른 표현이었다.

만봉 스님이 전통미술을 그토록 강조한 것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의미였다고 양 작가는 설명한다. 옛 것을 온전히 익혀야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고, 부처님의 법음을 전하는 불화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양 작가는 “불화를 그리다가 힘들 때면 스님의 작업실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는데, 요즘 들어 책임감이 많이 들었다”며 “진정한 불화의 세계를 일러주신 스님에게 감사한 의미를 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스님으로부터 받은 불화들을 후학들에게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보이는 것이 스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해 전시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양 작가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불화를 그리면 항상 행복해요. 그림으로 부처님을 장엄할 수 있다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제가 행복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그렸기 때문에 그 그림을 보시는 분들도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어요.”

행복한 작가 양선희 씨의 세 번째 개인전 ‘초도석화전’은 1월 27일부터 2월 2일까지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열린다. ‘초도석화전’에는 만봉 스님이 전해준 영산회상도 괘불과 지장불화, 현왕탱 등의 불화들과 함께 전통 단청 초본에 현대적인 해석을 가미한 작품 등 총 40여점의 작품이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