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중국공산당의 침공을 피해 히말라야 설산을 넘어가던 제14대 달라이라마 일행의 봇짐 속에는 네 질의 티벳대장경이 들어있었다. 중국공산당 치하에서는 티벳불교의 순수성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한 달라이라마가 오로지 불법을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건 망명을 강행한 것이었다. 달라이라마는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설치한 직후 다람살라에 티벳승원을 건립했고, 인도 남부에 티벳의 3대 불교사원을 복원했으며, 전세계로 티벳의 젊은 승려들을 보내 불법의 세계화를 실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보물과도 같은 네 질의 대장경은 어디로 갔을까. 그 중에 두 질은 현재 다람살라에 위치한 티벳도서관에 소장돼 있으며, 다른 한 질은 일본 도쿄대에, 또 한 질은 바로 동국대학교에 소장돼 있다.

1967년 달라이라마는 동국대에 티벳대장경을 기증하며, 한국에서도 티벳불교가 연구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전했다. 1966년 5월에 달라이라마 정치 자문인 P. 타클라 씨가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동국대에서 해인사 팔만대장경 영인본을 달라이라마에게 선물로 증정하자, 달라이라마가 그 답례로 라사판 대장경을 동국대에 기증한 것이다.

하지만 이 귀중한 장서는 그동안 도서관 한켠에서 조용히 잊혀져 가고 있었다. 우선 한국에서 티벳어를 읽을 수 있는 연구자도 없었거니와 티벳대장경을 본격적으로 연구할 만한 연구팀을 마련할 계기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티벳대장경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소가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들어선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동국대는 경주캠퍼스에 티벳장경연구소를 설립하고, 12월 9일 오후 2시에 본관 2층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개원식을 개최한다.

연구소가 오픈하게 된 계기는, 또 한 번의 달라이라마의 선물이 도화선이 됐다. 지난해 동국대 경주캠퍼스 손동진 총장이 다람살라를 방문하자 달라이라마가 이번에는 20만불(우리돈으로 2억 4000만원)이라는 돈을 보내 티벳장경 연구에 써달라는 바램을 전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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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동국대 경주캠퍼스 의료봉사단이 다람살라로 봉사활동을 가서 달라이라마를 방문하자, 달라이라마는 티벳대장경에 대한 연구를 당부하며, 망명정부로서는 거금이라고 할 수 있는 20만불까지 보내게 된 것이었다.

이번에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들어서는 티벳장경연구소는 달라이라마의 염원과 40여년 동안 조금씩 성장한 한국의 불교학이 만나 이루어진 쾌거에 다름 아니다.

그동안 한국불교학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티벳불교를 전공하는 학자들이 생겨났고, 현재 약 20여명의 티벳불교 전문 연구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로부터 티벳밀교 성취자로 인가를 받은 이도 탄생했고, 달라이라마의 전문통역원으로 활동하는 이도 있으며, 부산에 한국티벳센터가 들어서면서 티벳 스님들이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거점도 생겨났다.

경주캠퍼스에 티벳장경연구소가 들어서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맡게 된 김성철 교수를 주축으로 한 연구팀이 이곳을 중심으로 모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김성철 교수는 티벳불교의 중심 교학인 ‘중관학’을 전공한 학자로, 경주캠퍼스에서 ‘불교신앙과 수행체계’라는 과목명으로 <보리도차제론>을 강의해 왔으며,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티벳의 라마들을 초청해 이들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온 인물이다.

또한 부산에 위치한 한국티벳센터의 스님들도 이번 연구소 개원의 한 축을 담당했다. 티벳장경연구소의 전임연구원을 맡게된 텐진 남카 스님은 2000년 인도 간덴세라사원에서 계쉐 학위(하람빠 계쉐)를 받고, 2002년 계쉐 최종시험에서 1등상을 수상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티벳의 학승이다.

남카 스님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간덴사원에서 교수로 활동하다가, 2004년 3월 한국에 들어와 부산 한국티벳센터에서 머물면서 한국불자들에게 티벳불교를 전하고 있다.

티벳에서 게쉐 학위를 받은 한국티벳센터 주지 소남 스님도 티벳장경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할 계획이다.

또한 달라이라마로부터 티벳밀교의 성취자로 인가를 받은 최초의 한국인 최로덴 박사도 티벳장경연구소의 전문연구원으로 활동한다. 델리박물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로덴 박사는 <티벳불교의 향기> 등을 발간하고, 동국대와 서울불교대학원대에서 티벳불교학을 가르치고 있다.

달라이라마의 한국어 통역자인 박은정 씨도 객원연구원으로 참가한다. 박은정 씨는 현재 티벳강원에서 7년째 티벳교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한국인들이 참가하는 달라이라마 법회에서 한국어-티벳어 통역을 맡아왔다.

또 다람살라의 티벳도서관과 싸라나트의 티벳대학 등에서 공부한 티벳불교 전문가 양승규 박사도 연구원으로 참가할 계획이다.

김성철 교수는 “경주는 가히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성지라고 부를 수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국제학술대회가 열리고 티벳학 연구의 활성화가 이루어진다면 경주가 21세기 국제문화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곳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불교문화가 꽃피울 수 있도록 티벳장경연구소 운영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또 “현재 국내에 티벳연구 전문가가 20여명 정도 되는데 이들을 위한 여러 프로젝트도 마련하고 연구자들이 공부할 수 있는 지원센터가 될 수 있도록 티벳장경연구소를 국내 티벳학연구의 중심점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티벳장경연구소는 달라이라마의 뜻을 기리기 위해, 달라이라마가 보낸 지원금은 보장성 예금으로 영구 보존할 예정이며, 후원금을 모아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티벳장경연구소는 또한 △티벳불교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 △<우리말 티벳대장경> 및 <티벳총서> 제작 및 출간 △동아시아 불교전통의 문헌들을 티벳어로 번역, 티벳불교계에 보급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티벳 관련 자료와 정보 제공 △티벳과 관련한 특별강좌 및 학술행사 기획 △한국과 티벳 간의 인적, 문화적 교류 지원 △티벳대장경 및 연구서 등을 비치한 도서실 운영 △티벳장경연구소 운영을 위한 기금 확충 등의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원의 개원으로 한국에서도 티벳불교 연구의 본격적인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동안 연구자들에게도, 일반인들에게도 잊혀졌던 티벳대장경이 달라이라마의 원력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일이라 하겠다.

40여년만에 시절인연을 만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티벳대장경, 그리고 세계인들의 <오래된 미래>가 된 티벳불교가 한국불교계 나아가 한국인들에게 어떤 희망과 메시지를 던져줄 것인지 티벳장경연구소에 거는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