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례에서도 백의문화가 설 땅 잃은 부끄러운 시대

어느 순간부터 상가에 흰 상복이 사라지고 검은 상복이 등장했다. 백의민족의 백의문화가 밀려나는 생생한 현장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자들은 검은 양복에 검정넥타이, 여자들은 소복을 입는 절충형이었지만 부지불식간 여자들도 검정옷을 입는 것이 대세가 됐다.

민속학자 주강현 선생에 따르면 백의문화가 결정적으로 무너진 것은 해방 이후 미군 진주와 더불어 원색문화가 대대적으로 몰려오면서부터다. 이 당시 몰려온 원색문화의 홍수는 우리의 복식생활에 일대 충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후 전쟁을 겪으며 카키색 군복 문화가 득세했고 양복과 양장이 퍼져나가면서 흰 옷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가장 완고하게 전통적인 풍습이 살아있는 곳이 상례인데, 이제는 상례에서도 백의는 설 땅을 잃게 된 것이다.

흰 소복, 삼베옷과 같은 천연섬유를 중심으로 한 장례문화가 서구식 양복 문화에 그 색깔마저 점령당하고, 검은 상복, 검은 조화, 검은 리본, 검은 글씨, 검은 리무진 등의 온통 검은 세상이 되었다. 우리가 언제 백의민족이었던가를 의심케 하는 광경이 우리들의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흰 옷은 단순함도 있지만, 그 단순함 속에 오히려 드넓은 세계를 포용하고 있다’는 이이화 역사연구소 소장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자기 것을 천대하는 우리의 천박한 정신풍토가 부끄러워진다.

성법스님, 대통령 장례서 ‘검은 옷 영부인’보고 충격

크게보기장례식 때 검은 상복을 입는 국적불명의 풍토를 개탄하면서, 우리민족 고유의 흰 상복으로 다시 바꾸자는 운동을 발원한 한 원로 비구니 스님이 계시다. 이 스님은 남한산성 망월사에 주석하고 계시는 성법(性法) 스님이다. 스님은 최근 잇따라 서거한 두 전 대통령의 국장과 국민장에서 영부인들이 우리 민족의 고유 상례전통인 흰 상복을 입지 않고 검은 색 치마저고리와 검정 계통의 블라우스를 착용한 것을 보면서 우리문화의 뿌리를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성법 스님의 고민을 함께 해결하라는 불보살님의 뜻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졌는지, 우연한 기회에 성법 스님의 고민과 원력을 전해 듣고, 그 뜻을 받들겠다는 일단의 여성 불자들이 나타났고, 이들은 스님의 간곡한 원력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김경란 불자 등 고려대 출신 여성불자들이 중심이 된 이 모임은 남한산성 망월사 노스님 성법(性法) 스님의 우리 민족의 뿌리 찾기 운동의 원력을 받들어 가칭 ‘한민족 뿌리찾기 운동’을 결성해 우선 1차 사업으로 ‘흰 상복 되찾기’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아직은 몇몇에 불과하지만 작은 출발이 씨앗이 되어 더 많은 불자와, 국민이 참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 11월 23일 남한산성 망월사에서 첫 모임을 갖고 성법 스님으로부터 한민족 뿌리찾기 운동의 취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취지문을 작성하는 등 내년 초부터 구체적인 실천운동에 나서는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검은색은 악․불행 상징…불자부터 흰 상복 입자”

이날 성법 스님은 “우리 불자들만이라도 우리 민족문화의 뿌리를 지키고 되살리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운동을 주창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성법 스님은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장례의식이 변질되어 이제는 부모나 남편의 장례식에서조차 물들인 옷을 입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되고 말았다”며 “더구나 국장, 국민장에서조차 검은 상복이 등장하기에 이르러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 장례문화 전통마저 잃어버린 품격이 없는 나라가 됐다”고 개탄했다.

성법 스님은 주역에 검은 옷은 북쪽을 상징하고, 북쪽은 귀신을 부르는 방위이므로 절대로 상례에서 검은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검은 옷은 망자는 물론 망자의 유족에게도 결코 이롭지 못하다는 말씀이다. 검정색은 부정의 색이며, 악함과 불행을 상징하고, 귀신을 불러들이는 색이므로 가능한 피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스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이런 취지를 알게 되면 어렵지 않게 잘못된 상례 복식풍토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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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인들 “우리사회 어머니 역할 통해 도덕적 번영 추구”

이들은 이날 작성한 ‘한민족 뿌리찾기 운동’ 발기취지문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가 성장을 위주로 하는 경제발전, 포플리즘, 물질만능주의, 무질서주의에 빠져 우리의 뿌리를 도외시(度外視)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며 “이런 현실의 근원을 따져보면 이 모두가 도덕관의 부재(不在)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그 사회의 윤리관이 확립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우리는 우리 뜻에 동참하려는 사람들과 같이 이 사회에서의 어머니의 역할을 다할 것을 맹서하며, 이 역할을 다함으로써 이 사회의 도덕적인 번영을 꿈꾸어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