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老七斤衫 含風兼掬月

冬溫夏亦寒 千秋功不絶

道를 즐기어 세상과 사귐 없고

가난을 편히 여겨 金을 줍지 않는다.

모든 부처 진수를 알려 하는가?

먼저 제 마음과 그 몸을 보라.

조주 늙은이의 일곱 근 적삼

바람을 머금고 또 달을 움켜잡는다.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도 차나니

그 공덕 천추에 끊어지지 않으리라.

크게보기

깨달음의 길 찾아 50여 대중 백양사에 운집하다

고불총림 방장 수산 대종사의 법어를 경청한 50여 명의 불자들이 하심(下心)의 무아행, 화안애어(和顔愛語)의 섭수행(攝受行)을 늘 염두(念頭)에 두는 보살행자로 야단법석을 펼치겠다는 다짐을 했다.

‘깨달음의 길을 찾는’이라는 전제가 달린 백양사 야단법석에는 전국에서 50여명의 불자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에는 대여섯 명의 스님도, 원불교의 교무도 포함돼 있었다. 휴식에도 꼿꼿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좌선에 드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이들이 보통의 내공을 가진 이들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저리도 열심히 수행한 이들이, 모르긴 몰라도 수년, 수십 년 깨달음의 길을 걸어왔을 이들이 어째서 또 ‘깨달음’이 아닌 ‘깨달음의 길’을 찾으러 이곳 전남 백암산 백양사까지 찾아왔을까. 그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깨달음의 길이, 깨달음의 길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일까. 적어도 이날 법석의 초점은 바로 깨달음이 아닌 깨달음의 길을 찾는데 있었다.

저마다 선사들에게 받은 화두를 운명처럼 들고 참구해왔을 이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답답했던 것이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진정 깨달음의 길인지 자못 의구심이 든 사람도 그중에는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무아, 윤회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고, 고우 선사가 언급한 부처님 당시 제자들의 ‘순간깨침’이 오늘날의 선(禪)과 연관성이 있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있었다. 팔만대장경을 한 글자로 줄이면 공(空)이며, 이 공을 잘 이해하면, 차별심이 사라지고, 자신의 일에 대해 가치와 의미를 알게 되며, 어디를 가든 주인의 삶을 살게 되고(隨處作主), 소통이 되며, 바로 이 길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선사의 말씀에 대해 일단 수긍을 하면서도 뭔가 확 트였다는 표정을 짓는 이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정작 이들의 눈이 확 뜨인 것은 각묵 스님(실상사 화엄학림 강사)의 ‘초기불교를 통한 깨달음의 길’ 강의를 들으면서부터였다. 대선사의, 또는 대승불교를 공부한 강백의 ‘깨달음의 길’에 대한 법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중의 반짝임이 각묵 스님의 강의를 들으며 밤하늘의 별처럼 발광(發光)을 시작한 것이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오온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갖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물음이 무엇입니까? 나는 누구인가?가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그동안 선법문 등에서 많이 들어본 질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는 불자님은 거의 없습니다. 수십 년 절에 다녀도 대답을 못해요. 왜 못하는가. 글쎄요. 가르쳐주질 않았으니까 못하는 것이겠지요. 또 뭔가 불교공부가 잘못됐기 때문에 대답을 못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초기 경전에서 이에 대해 명쾌한 대답을 제시해주고 계십니다. 그게 뭐냐? 오온, 즉 색수상행식이 그 답입니다. 나는 누구라고요? 오온이 바로 납니다. 여기서 참나니, 진아니, 대아니 등의 답을 하면 안 됩니다. 그건 불교가 아닙니다. 아시겠죠.”

나는 오온이다, 내가 오온, 즉 색수상행식임을 알면, 즉 나를 해체해서 보면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임을 알게 되고, 이것을 보아야 깨달음의 길이 나온다, 참나・진아・대아 따위를 찾으면 그건 불교가 아니라는 각묵 스님의 ‘위태위태’한 역설에 참석대중은 귀를 쫑긋 세우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애매모호함 없이 뭐든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각묵 스님의 강의 스타일에도 신선함을 느끼는 듯 보였다.

경전에 근거한 깨달음의 과정 제시에 참석자들 고개 '끄덕'

“궁극적인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념적인 존재[施設, 名言]를 해체해서 법(法, dhamma)으로 환원해서 보아야 하는데, 초기불전에서 부처님께서는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온․처․계의 무상․고․무아에 대한 철견(徹見), 사성제의 통찰, 팔정도의 완성, 12연기의 역관(逆觀) 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초기불전에서 보자면 행복을 바르게 추구하는 방법은 37보리분법이며 이것은 팔정도로 귀결이 됩니다. 이렇게 하여 금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과 궁극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자인 것입니다.” 각묵 스님이 제시하는 깨달음의 길은 경전적 근거를 통해 명쾌하게 정리된 것이었다.

각묵 스님은 초기불교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열반(涅槃, nibbāna)의 실현이요 깨달음의 성취이며, 이 둘은 ‘염오, 이욕, 소멸, 고요함, 최상의 지혜, 바른 깨달음, 열반’(「염오 경」(S46:20) §3 등)이라는 문맥에서도 많이 나타나는데, 이 열반이야말로 불교의 진리인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가운데 세 번째인 저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이며 사성제를 철견하는 것이 바로 바른 깨달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열반은 궁극적 행복이요 그 궁극적 행복은 바로 모든 괴로움이 소멸된 성스러운 경지요 이러한 것을 철견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깨달음은 어떻게 해서 실현되는가? 각묵 스님은 “깨달음은 당연히 수행을 통해서 실현된다”고 잘라 말한다. 초기불전의 도처에 나타나는 바와나(bhāvanā, 수행)는 팔정도를 근간으로 하는 ‘37가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37보리분법, 조도품)’로 정리된다는 것이다.

크게보기

그렇다면 무조건 팔정도를 위시한 37보리분법만 닦으면 깨달음을 실현하게 되는가? 각묵 스님은 “그렇지는 않다”고 말한다. 37보리분법을 닦기 위해서는 나와 세상과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緣起]와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세상과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는 도는 더 이상 도가 아니며 그런 수행은 더 이상 수행이 아니어서, 산에 가서 물고기를 찾는 형국이 되고 말거나 단지 용만 쓰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이해가 없이 37보리분법을 실천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요 말에 지나지 않지요. 그리고 나와 세상과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緣起], 진리에 대한 바르고도 완전한 이해가 바로 깨달음의 내용인 것입니다.”

나와 세상과 괴로움의 발생 및 소멸구조 알아야 깨달음의 길 열린다

각묵 스님은 ‘나와 세상과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와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르치고 있는 부처님 말씀을 우리는 부처님의 교학 혹은 교법이라 부르며 이런 체계를 법(法, dhamma)이라 부른다고 정의한다.

“부처님께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해 ‘오온(五蘊, panca-kkhandha)’이라 말씀하셨으며, ‘세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12처(혹은 6내처와 6외처)로 말씀하셨다. 나와 세상은 그냥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조물주니 절대자니 신이니 하는 어떤 힘센 존재가 만들어낸 것은 더군다나 아니다. 나와 세상은 조건발생이요 여러 조건[緣, paccaya]들이 얽히고설키어서 많은 종류의 괴로움을 일으킨다. 이러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구명(究明)하여 그 괴로움을 없애야 저 깨달음과 해탈․열반은 실현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나와 세상에서 진행되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철저하게 밝히시는데 이것이 바로 연기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나와 세상과 여기에 존재하는 괴로움의 발생구조과 소멸구조에 대한 연기적 관찰은 궁극적으로 진리[諦, sacca]라는 이름으로 체계화 되는데 그것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저 사성제라 부른다. 이처럼 교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37보리분법의 수행이 있어야 깨달음은 실현되는 것이다.”

각묵 스님은 깨달음의 핵심을 ‘해체해서 보기’로 정리할 수 있다고 단정해 말한다.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 영감이 가장 뛰어난 분으로 칭송되며 시작(詩作)에 능했던 왕기사 존자는『상윳따 니까야』「천 명이 넘음 경」(S8:8) {742}번 게송에서 부처님을 “부분들로 해체해서(bhāgaso pavibhajja) 설하시는 분”이라고 찬탄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깨닫고 싶은가? 해체하고 해체하고 해체해서 보라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명칭이나 말 즉 개념에 속게 되면 죽음의 굴레에 매이게 된다’고 부처님께서는 초기경의 도처에서 강조하신다‘고 밝힌 각묵 스님은 “나라는 개념적 존재는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고, 일체 존재는 12처로 해체해서 보고, 세계는 18계로 해체해서 보고, 생사문제는 12연기로 해체해서 보게 되면, 온․처․계․연 등으로 설해지는 모든 존재들[諸法, 有爲法, sabbe dhammā]의 무상․고․무아가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통찰함으로 해서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고 그래서 해탈․열반․깨달음을 실현한다는 것이 초기경전의 도처에서 강조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해체해서 보지 못하면 그는 불교적 수행을 하는 자가 아니라고 해야 한다. 왜? 그는 불교적 인생관, 불교적 세계관, 불교적 신념을 가진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비담마/아비달마와 유식처럼 분석을 강조하던, 반야․중관처럼 직관을 강조하던, 화엄처럼 종합을 강조하던, 그것은 불교적 방법론인 해체에 토대해야하기 때문이다. 나와 존재와 세상과 생사문제를 이처럼 온․처․계․연으로 해체해서 보지 못하면 염오-이욕-소멸을 통해서 깨달음을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는 각묵 스님. 그가 이번 특강에서 남긴 선사의 게송 같은 한 마디를 소개한다.

“어느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다. 그러나 뭉쳐두면 개념적 존재에 속고 해체하면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