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일본불교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술지가 창간됐다. 김호성 교수가 이끄는 일본불교사연구소에서 첫 간행물인 <일본불교사연구>를 11월 11일 발간한 것이다.

최근에는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일본불교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낮고, 일본불교학을 연구하는 풍토가 척박함을 감안할 때 일본불교 전문 학술지가 탄생했다는 사실은 매우 용감한, 혹은 상당히 모험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위험천만한 가능성을 뚫고 이같은 첫 성과물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한국과 일본 간의, 혹은 한국불교와 일본불교간의 커다란 간극을 넘어설 수 있는 매우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호성 교수는 '새로운 실험'이라는 제목의 권두언을 통해 불교학의 발전은 불교교단과 불교학이 서로를 증장시키면서 발전해 가는 불교상장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일본불교에 대한 이해와 함께 학문후속세대의 양성을 목표로 내세운 일본불교사연구소를 출범시키고, <일본불교사연구> 창간호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의 설명대로, 이 잡지의 발간을 통해 일본불교에 대한 척박한 인식이 나아지고, 나아가 일본불교학을 연구하는 후속세대들이 보다 비옥한 토양에서 배출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번호에는 가마쿠라 신불교 조사들의 사상과, 일본의 문화와 불교를 다룬 주옥같은 논문들이 총7편 수록됐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소 김호귀 교수의 「에이헤이 도겐(永平道元)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의 이해를 위한 시론」,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박사과정 수료생인 츠노다 레이코(角田玲子) 씨의 「‘肉食女犯’と 業緣_親鸞におる 惡の 直接性」, 김호성 교수의 「『겨울의 유산』에 나타난 한일불교」, 고승희의 「호류지 금당 금동석가삼존불상의 광배 문양 연구」, 정영희의 「『남방록(南方錄)』을 통해본 일본 초암차(草庵茶)의 수행 고찰」, 박광준 교수의 「붓다의 윤회업보관과 복지적 장애인관에의 시사」, 가와세 유키오(河瀬幸夫)의 「釋譜詳節の 刊行とその 背景」 등이다.

김호귀 교수의 「에헤도겐(永平道元)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의 이해를 위한 시론」은 일본 조동종의 개조인 도겐의 저술 『정법안장』에 담긴 선사상을 소개한 글이다. 정법안장이란 부처님의 깨침을 의미하는 말로, 도겐은 이 책에서 출가자의 본분과 순수한 선수행자가 성취시켜 나아가기 위한 목표를 제시하기 위한 지침서로 이 책을 저술했다.

김 교수는 “도겐 선의 특징은 좌선을 안락법문(安樂法門)으로 삼아 지관타좌(只管打坐)를 강조한 점”이라며 “좌선의 모습은 곧 깨침의 모습이면서 더불어 불불조조(佛佛祖祖)의 행위가 현성된 것으로, 좌선수행은 대오(待悟)도 아니고 작불(作佛)도 아니며, 수(修) 속에 증(証)이 본래 갖추어져 있고 증상(証上)에서 수(修)가 걸림없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츠노다 레이코(角田玲子)의 「‘肉食女犯’と 業緣_親鸞におる 惡の 直接性」은 일본 정토진종의 종조인 신란의 육식여범 문제를 재검토하고, 이를 통해 신란의 업연과 악의 관계에 대한 독자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신란은 현재 일본불교의 주요한 특징인 승려의 결혼문제를 처음으로 시도한 인물로 꼽힌다. 신란 스스로는 승려도 속인도 아닌 비승비속(非僧非俗)이라고 일컬었지만, 신란의 제자들은 모두 스승의 행보를 따라 공공연히 결혼을 했고,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대부분의 일본종파들이 신란을 근거로 결혼제도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츠노다 씨는 이 논문에서 “신란은 인간에서 있어서 가장 직접적인 행위이면서도 계율에서는 악이라고 일컬어지는 식과 성과 같은 행위일수록 구제의 실현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것은 밀교적인 즉신성불이나 종래의 정토불교와는 다른, 고도의 윤리적인 긴장감을 지닌 신란의 상이며 불도실천이었다”고 주장했다.

김호성 교수의 「『겨울의 유산』에 나타난 한일불교」는 재일교포 작가인 다치하라 마사키의 자전적 소설 『겨울의 유산』에 나타난 한국불교와 일본불교의 소통에 대해 살펴보았다.

겨울의 유산은 어린시절 안동 봉정사에서 임제선을 어렴풋이 배웠던 주인공이 청년이 된 후 일본 가마쿠라 지역의 서천사에서 다시 한번 임제선을 발견하는 스토리로 진행된다.

김호성 교수는 “소설 속의 주인공, 또 소설 밖의 작자는 일본불교 속에 깊숙이 숨어있는 한국불교의 풍토를 찾아냄으로써 한국불교와 일본불교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소통의 길을 뚫고 있다”며 “그 길 위를 걸어감으로써 마침내 그들은 ‘한국’이라거나 '일본'이라거나 하는, 불교적 입장에서 볼 때는 비본질적일 수밖에 없는 형용사를 벗어던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고승희의 「호류지 금당 금동석가삼존불상의 광배 문양 연구」는 한반도의 삼국시대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호류지의 7세기 금동석가삼존불상 중에서도 특히 광배에 새겨진 문양들을 살펴보았다.

고승희 선생은 “호류지 금동불의 광배를 검토해본 결과 백제의 불상 조각을 받아들여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또한 광배 뒷면에 있는 명문을 통하여 백제 출신으로 추정되는 도리불사가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 선생은 이어 “호류지가 창건된 아스카시대 불교미술을 살펴볼 때 이 시기에 중국 동서위 시대, 특히 우리나라의 삼국, 백제 불상의 6세기 후반기-7세기 초기양식과 거의 흡사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삼국의 불상전파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국대 박사수료생 정영희 씨의 「『남방록(南方錄)』을 통해본 일본 초암차(草庵茶)의 수행 고찰」은 일본의 다성(茶聖)으로 일컬어지는 센노 리큐의 저술 『남방록(南方錄)』을 통해 일본 선차의 정신을 고찰한 논문이다.

『남방록(南方錄)』은 센노 리큐의 제자인 난보 소케이가 센노 리큐를 모시며 보고 들은 것을 상세하게 기록한 일본 다도의 고전이다. 정영희 씨는 “일본의 다도문화는 선사상을 바탕으로 외적인 엄격한 형식과 격식을 통해 내면의 정신수양을 추구하면서 발전해 왔지만 지나친 형식과 격식으로 인해 오늘날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며 “그것은 다도의 수행적 측면을 간과하고 미적인 측면만을 부각시켜 온 결과”라고 지적했다.

정 씨는 이어 “일본 다도문화 속에 담겨있는 다도의 본질은 일본 초암차를 완성한 센노 리큐의 다도관에 담긴 수행적 정신”이라며 “리큐가 선문의 청규를 토대로 수행하면서 초암차에 대해 ‘한 잔의 차를 만들어 마시는 것일 뿐’이라고 한 것은 모든 것을 초월한 그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불교대학 박광준 교수의 「붓다의 윤회업보관과 복지적 장애인관에의 시사」는 윤회전생이나 업에 관한 붓다의 사상을 고찰하고, 그것이 현대적인 장애인관에 어떤 시사를 가지는가를 살펴본 논문이다.

박 교수는 이 논문에서 “붓다 제새시 바라문적인 윤회설이 지배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었고 붓다는 이같은 윤회설을 거부했다”며 “붓다의 윤회업보설의 본질은 현재의 삶의 수용과 자기책임주의에 있고, 이는 현재 중심의 사고”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이어 “붓다의 업론의 본질적인 가르침은 현재의 삶의 고통이 과거의 어떤 업의 결과로 발생한 것인가에 매달려서는 안된다느 가르침이었고, 또한 현재를 기준으로 해서 앞으로 고통을 발생시키지 않는 바른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가르침이었다”고 설명했다.

동국대 박사수료생 가와세 유키오(河瀬幸夫) 씨의 「釋譜詳節の 刊行とその 背景」는 필자가 출간을 계획하고 있는 일본어 역주완역 『석보상절』의 머리말이다. 가와세 씨는 지난 5년간 동국대에 유학하면서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고, 이를 일본인들에게 소개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가와세 씨는 이 논문에서 “아쉽게도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는 모두 권수가 남아있지 않지만, 석보상절과 월인석보, 월인천강지곡을 모두 번역해보면 어느정도 성보상절 전체상에 접근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또한 석보상절 전체의 80% 정도는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