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계 박세당, 조선 후기 실학파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서계 박세당의 고택은 의정부에 위치해 있고, 지방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유학자의 풍모를 대변하듯 단아한 고택 앞에는 수령 5백년이 가까운 은행나무 한 그루가 당당하게 서 있다. 고택만 있고 이 은행나무가 없었다면, 또한 은행나무만 있고 서계 고택이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고택과 은행나무가 연출하는, 음악과 춤 그리고 시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열나흘 가을 달밤의 앙상블은 환희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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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서계고택에서 10월 마지막 밤(10월 30일) 가을 시 낭송회가 열렸다. 의정부문화원(원장 조수기)이 주최한 ‘문화재와 함께 하는 시 낭송회’라는 이름으로 펼쳐진 이날 행사장에는 의정부 사람들과 서울 등 각지에서 문인가객들이 100명 남짓 모여들었다.

원로시인 황금찬 선생을 비롯하여 함동선, 권용태, 한분순 시인 등 시단의 비중이 있는 시인은 물론, 임경자, 이도영, 허은주씨 등 의정부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시인들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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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삼성출판박물관장)은 축사를 통해 “실학의 태두 서계 선생의 고택에서, 이 아름다운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열리는 시낭송회는 공자의 행단(杏壇)을 연상시킨다”며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이끌고 학문을 닦았듯이 오늘 우리는 이곳 서계 행단에 모여 시를 이야기하고 문화재의 향수를 만끽하고 있으니, 공자의 행단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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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을 넘긴 노시인 황금찬 선생이 단상에 올라 시 낭송을 하자 참가자들은 뜨거운 박수로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했고, 은행나무 이파리들 또한 우수수 꽃잎처럼 몸을 날리며 노시인에게 공경을 표했다. 의정부문화원에서 기타공부를 하는 기타연주단의 식전행사에 이어 시낭송이 이어지는 동안, 민요와 한국무용, 색소폰 연주가 이어지면 가을밤 시축제의 열기를 더했다. 고택을 환히 비추는 가을달에 사람들의 얼굴과 은행나무 잎은 더욱 황금처럼 빛났다. 권용태 시인의 인생을 달관한 듯한 시가 낭송될 때에는 머리 한편이 희끗희끗해진 노신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두 눈을 지긋이 감았다. 함동선 시인이 ‘나의 형은 언제나 서른 넷’을 낭독할 때도 모두가 시인과 하나가 되었다. 눈시울을 훔치는 이들 또한 함 시인과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분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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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을 울린 색소폰 소리를 끝으로 시낭송회가 끝나자 조수기 문화원장이 제법 은행잎이 깔린 단상 위로 올랐다. 그는 인사말을 통해 “문화의 달에 지방문화재자료 제93호인 서계 박세당의 고택에서 문화가 산책의 일환으로 시낭송회를 개최하게 됐다”며 “전통문화와 현대문화를 접목하여 현대인의 문화욕구에 부응하는 찾아가는 문화행사를 더욱 확대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