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사적 대전환, 불교가 대안인가를 모색하는 학술행사가 열렸다.

<불교평론> 창간 10주년을 기념해, ‘문명사적 대전환, 불교가 대안인가’를 주제로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각 분야의 학자들이 지난 9월 12일 오후 1시 한국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 모여 뜨거운 열기 속에 불교의 역할과 그 가능성, 서양인문학과의 대화 가능성을 집중 모색했다.

불교사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대중화하는 일을 선도해 온 계간 <불교평론>과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주최한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한국불교가 정작 대중들이 마주친 문제의 직시와 그 대안 마련에 소홀히 하였다는 점을 성찰하여, 전 지구 차원의 환경위기, 소외의 심화와 갈등의 보편화, 공동체의 파괴, 억압과 폭력의 구조화, 인간성의 상실, 이성의 도구화 등 지금 인류가 맞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이를 극복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불교가 그 작업에 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불교만이 대안이 아니라면 서양의 인문학과 대화가 가능한지를 4시간에 걸친 발제와 토론을 통해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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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과 연기의 원리에 따르는 과학의 길을 걸어야

이도흠 교수(한양대)는 ‘문명사적 전환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불교와 서양의 대화를 통하여’라는 주제의 기조발표를 통해 전 지구차원의 환경 위기,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과학의 도구화 등의 문제에 대해 불교와 서양의 인문학을 종합한 대안을 제시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홍수에 대해 둑을 쌓아 강물을 오염시키는 것이 서양의 대안이라면, 신라 시대의 최치원이 인공의 숲(상림)을 조성하여 천여 년 동안 홍수를 막으면서도 물을 맑게 유지한 경상도 함양의 상림이 새로운 대안이다, 이처럼 전 지구차원의 환경위기의 경우 이를 낳은 근본 동인인 인간중심주의와 이분법 자체가 불일불이(不一不二)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여기에 서양의 생태론적 대안도 종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도흠 교수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불교와 마르크스 사상을 종합하여 각자가 존엄성을 가지고 세계에 대응하는 주체로 기능하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부처가 되고 상대방의 부처스러움을 드러내주는 ‘눈부처 공동체’를 대안의 체제로 내세우면서 자연을 지배하는 과학이 아니라 업과 연기의 원리에 따른 과학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개인의 자유 억압해온 공동체 극복대안은 연기적 독존주의

이어 박병기 교수(한국교원대)는 ‘연기적 독존주의와 열린 공동체-우리 시대의 공동체에 대한 불교적 대안’이라는 발표를 통해 자유주의와 공동체 논쟁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연기성을 자각하면서도 ‘존재함’ 자체의 존귀함을 함께 인식할 수 있는 열린 공동체론인 연기적 독존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개인이 중심이 되는 시민사회는 기본적으로 서구적 뿌리를 갖는다. 고립성과 이기성을 기반으로 삼아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계산하고자 하는 의도와 능력을 지니고 있는 개인이 바로 이 사회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 주는 사회 또는 공동체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하는 실존적 과제가 부여된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서 이 땅에 태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생활 속에서 타인에게 온전히 의존하지 않는 현대인을 상상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과제는 서양의 정치학계와 윤리학계에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논쟁이라는 비교적 길고 지루한 논쟁으로 이어졌고, 우리 학계에서도 이미 그 담론을 수입하여 반복하면서 우리의 상황에 더 깊게 천착해야 한다는 과업을 공유할 수 있는 과정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자유주의자들은 공동체에 대해 그토록 반감을 갖는가, 박 교수는 그 원인은 가족공동체, 종교적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극복할 대안으로 불교의 핵심 사상인 연기적 독존주의라고 거듭 부연했다.

서양 철학자들의 동양에 대한 일시적 관심에 일희일비해서야

박치완 교수(한국외대)는 ‘탈현대철학의 동일성과 차이의 늪에서 벗어나기’라는 발표에서 데리다나 들뢰즈 등의 탈현대 철학을 불교와 비교하는 가운데 이를 언어기호를 통한 지적 유희라고 비판했다. 동일성에 대한 집착과 이로 인한 지적 폭력, 동일성에 대해 저항이라는 분별망상이 빚어낸 차이와 타자성은 비유비무(非有非無), 불일불이, 불상부단(不常不斷)을 핵으로 하는 불교적 입장에서 보면 전적으로 언어․기호에만 의탁해 희론(戱論)으로 축성된 지식의 성(城)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동일성이나 차이 또는 타자성은 실체․실상의 세계와는 아주 거리가 먼, 다분히 흑백논리적으로 작동되는 하나의 ‘개념화된 세계’의 논쟁에 그친다고 밝혔다. “희론은 공(空)에서 멸(滅)해진다”고 강조한 『중론(中論)』의 의의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특히 “서양의 철학자들이 학문적 자기반성에서 간취된 몇몇 개념들 중심의 동양사상에 대한 일시적인 관심에 불교를 포함한 우리 학계 일희일비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우리가 중심을 잡고 지피지기의 입장에서 성찰적 수용을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연기와 공의 철학을 통해 문명사적 문제점 대안 모색 가능하다

조은수 교수(서울대)는 ‘자아중심의 세계’에서 연기와 공의 불교의 세계로‘라는 주제로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으로 서양의 불교 수용과정을 살펴보고, 현금의 미국의 불교운동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불교사상이 현대사회와 문명에 어떠한 새로운 삶의 방식과 대안적 세계관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살폈다. 조 교수는 지난 30년간 합리성 우위주의와 자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서구학계에서 과정 철학, 해체주의, 탈중심주의 담론들이 등장했는데, 자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윤리적인 측면에서 인류는 자기를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함으로써 환경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타자로 이해하고 그것을 정복하고 조종하며 이용할 대상으로 여겼다고 지적했다. 흔히 이런 타자 정복적 태도를 주관과 객관의 세계간의 분리를 선언한 서양철학과 사상에서 근원을 찾는데, 이러한 비판은 이제 한국사회에서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은 동양의 물질주의를 대표하는 국가가 되었으며 사회 곳곳에서 가치와 이념 대신 권력과 경제가 지배 담론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한 조은수 교수는 “불교가 문명사적 대전환에서 불교는 충분히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연기와 공의 철학을 통해 문명사적 문제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차별없는 사회는 붓다와 마르크스가 함께 꿈꾸었던 세상

유승무 교수(중앙승가대)는 ‘불교의 마르크시즘의 동몽이상(同夢異床)’이라는 발제의 제목처럼 붓다와 마르크시즘이 함께 꾼 꿈인 ‘차별 없는 사회’의 이상과 이에 이르는 방편의 차이를 대조했다. 유 교수는 특정한 인종, 특정한 신분, 특정한 계급, 특정한 정파 등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차별 없는 사회’야말로 인류의 원대한 이상인데, 붓다와 마르크스는 이러한 이상을 궁극적 목적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실현시키려는 실천적 노력을 전개한 대표적인 분들이며, 그러한 점에서 위대하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그러나 그들의 살았던 시대와 사회가 달랐던 것만큼이나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동원한 수단과 방법도 달랐다”고 지적하고 “불교는 수행자의 의한 인정투쟁을 통해서 이상사회에 도달하려고 한 반면에 마르크시즘은 노동자 계급의 계급투쟁에 의해 이상사회를 건설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이상과 같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동몽이상이라고 표현하면서 출가자의 공동체를 이상사회의 패러다임으로 간주하고 있는 불교적 이상사회의 모델과 사적 소유를 인정하지 않고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추구하는 마르크시즘의 이상사회 모델 사이의 ‘창조적인 이종교배’가 21세기 문화혼융시대의 인류문명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교는 반 동물적인 가르침으로 평화와 안락의 오아시시를 구축했다

김성철 교수(동국대)는 ‘진화론과 뇌과학으로 조명한 불교’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현대과학의 진화론과 뇌과학을 불교의 교리와 비교 검토했다. 시종 단정적인 화법으로 논제를 펼친 김 교수는 “생명의 세계를 우승열패의 법칙이 지배하는 비정한 곳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불교는 생물학과 일치하지만, 반(反) 동물적인 가르침을 통해 ‘평화와 안락의 오아시스’를 구축했다는 점에 불교의 종교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뇌과학에서는 인간을 기계론적으로 해석한다”며 “최신 연구에 의하면 주의력의 이동에 수반하여 활성화 되는 뇌의 부위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자유의지가 있다면 윤회는 가능하다’는 가언명제가 도출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또 “공(空)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뇌를 제거하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4성제와 현대정신분석학의 고통치유법 조화로운 통합 모색을

이창재 프로이드정신분석연구소 소장은 ‘고통의 유형, 기원, 치료법, 의미에 대한 불교와 정신분석 관점 비교’라는 생소한 분야의 논문발표를 통해 “고통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방법으로 부처님이 제시한 4성제와 정신분석학이 제시하는 고통 치유법이 상당히 통하는 부분이 있다”며 4성제와 정신분석학에서 제시하는 고통치유법을 조화롭게 통합하는 대안을 모색했다. “4성제의 메시지는 지난 2천6백년 동안 동양인의 정신을 치유하고 구원해온 신령스런 약이었다”고 전제한 이 소장은 “그러나 부처 시대와 현대의 인간 정신성은 그 특성과 유형이 특히 19세기 말부터 매우 달라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가령, 삶은 고통의 연속이 아니라 쾌락과 고통이 공존하는 장이고, 번뇌를 일으키는 원인인 탐욕가 분노, 어리석음은 인간의 본질조건이 아니라, 정신이 최초 형성되고 발달하는 유년기에 고착되어 반복되는 유아적(병리적) 감정”이라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이어 “정신의 치유법은 고통의 원인들을 온전히 해소(보충)해주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지난 100여 년간 정신분석가들이 대결해 발견해온 현대인의 무의식적 고통원인들을 심층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소장은 “한국의 불교계 학자와 스님들이 현대 한국인의 고통을 생생히 이해하고 치유하려면 부처님이 제시한 4성제와 정신분석학이 제시하는 고통치유법을 조화롭게 통합해야 한다”고 결론을 맺었다.

불교와 마르크시즘이 동몽일 수 있나? 청중들의 예리한 질문 쇄도

이어 토론 시간에는 마르크시즘과 불교가 어떻게 동몽(同夢)일 수 있는가에 대한 반론과 뇌과학에서의 윤회 가능성 문제, 생명에 대한 다윈과 부처님의 시각 등에 대한 질문이 쇄도했다.

김성철 교수는 답변에서 “12연기는 생명체 탄생과정의 과정”이라며, “행은 번뇌를 의미하고 윤회하게 되는 원인이며, 번뇌를 제거해야 윤회에서 벗어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번뇌는 한 맺힘이다. 번뇌와 행은 무명, 즉 근본무명 때문에 생긴다. 따라서 12연기는 철저히 생물학적 체계”라고 주장한 김성철 교수는 “진화론적 생명에 대한 조망은 부처님도 사실 똑같이 보았으며, 부처님은 생명의 세계에 대한 조망을 통해 출가를 하고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서양은 진화론이 나온 다음부터 약육강식의 논리로 제국주의를 열었으나, 석가모니는 약육강식의 비정함을 보며 출가해서 승가를 건설했다”며 “불교는 동물과 다르게 살라는 가르침이며, 즉 살생하지 말라, 음행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불교의 핵심적 가르침”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따라서 진화와 불교를 비교한다면 생명의 진상은 같이 보았지만, 그 전개과정은 상반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김 교수는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마지막 죽은 식이 다른 곳으로 건너 뛸 수 있으므로 윤회는 가능하다고 본다”며 “다만 자유의지의 유무 문제는 아직 논증이 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유승무 교수는 “마르크시즘은 존재가 의식을 지배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불교와 동몽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부처님과 마르크스가 추구했던 이상사회에는 큰 틀에서 상통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으며, 오늘의 세미나는 문명사적 전환으로서 불교의 대안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이며, 이런 자리에서 마르크스를 빼고 문명사적 대전환을 논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답변했다. 그는 또 “신자유주의가 화폐시장의 자유화를 절대화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면에서 21세기에도 마르크스는 여전히 필요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이어 “붓다의 고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현재의 세계에서 마르크시즘만 가지고 신자유주의 힘을 대응하기 어렵다. 이 부분에 붓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도흠 교수도 보조 답변에 나서 “서양은 실체중심의 사고, 동양은 관계 중심의 사고를 한다. 실체론적 사고와 관계론적 사고는 서로 차이가 있다. 개인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관계속의 개인이란 뜻이고, 하나하나의 개인이 사회관계속에서 개인임을 인식하고 사회의 고통을 어떻게 하나하나 줄어들 수 있을 까라는 점에서 마르크시즘은 불교의 연기론과 무관하지 않다. 또 연기론에 늘 존재론적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고 답변했다.

깨달음은 뇌속에서의 화학적 변화가 아니라 뇌에서 벗어나는 것

“절대 진리의 세계는 인간의 의식이나 인식으로 알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청중의 질문에 대해 김성철 교수는 “서구 뇌과학자들의 잘못 중의 하나가 불교의 깨달음을 체험으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만일 체험이라면 조건에 의해 나온 것이므로 연기된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에는 원인이 없다. 뇌 속에서의 화학적 변화가 깨달음이 아니고 뇌에서 벗어나는 것이 깨달음이다. 뇌 바깥의 차원으로 나가는 것이다. 깨달음은 삼독심을 제거하는 것이지 어떤 오묘한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에서 착각들을 많이 한다”고 강조했다.

“식의 세포간 이동이 가능하다면 동일한 생명체 내에 두 가지 이상의 식이 가능한가?”라는 청중의 질문에 대해서도 김성철 교수는 “식의 정체가 논문대로 정확하다면, 거기에 근거해서 빙의라든가 구병시식이 불교의 정당한 수행의 하나로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며 식의 존재가 뭔지, 유물론을 넘는 어떤 존재가 있는지가 해결되면 사실 모든 것이 새롭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답변했다.

홍사성 <불교평론> 편집인 불교학 발전의 견인차 멈추지 않을 것

한편 심포지엄 개막에 앞서 홍사성 <불교평론> 편집인은 인사말을 통해 지난 10년 많은 우여곡절 속에 <불교평론>은 불교계는 물론 종교계 전반의 지식인들에게 꼭 필요한 학술전문지로 발돋움했다며 이번 10주년 기념세미나를 계기로 발행부수 증가 및 내용의 보다 충실한 보강을 통해 불교학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불교평론> 창간 1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날의 심포지엄은 근래에 보기 드물게 6시간 동안 시종일관 높은 참석율과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