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 2000권 매진, 재판 2000권 또 매진, 3판 3000권 곧 매진….

수녀 출신 비구니 일아 스님이 펴낸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민족사)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늘 우울한 기사들만 보다가 만나는 모처럼의 희소식이다. 안 팔리기로 정평이 난 불교 책이 잘 나간다니, 희소식도 보통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 책의 책값이 28,000원으로 만만치 않은 금액이어서 예삿일이 아니다.

지난 12월 3일 책이 나왔으니 보름 만에 무려 7천권 가까이 책이 팔린 셈이다. 오래 동안 불교 책을 펴내온 민족사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윤창화 사장을 비롯해 영업부 직원들도 요즘 즐거운 비명 속에 분주하게 살고 있다.

방송출연 등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몇몇 스님들의 산방한담류의 책을 빼고는, 좀처럼 팔리지 않는 불서가, 그것도 75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책이 경제가 어려워 모두가 움츠리고 있는 현 시점에서 잘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보기우선 책의 내용이 너무 좋고, 늘 멀게만 느껴졌던 팔리어대장경을 한 권으로 압축해 놓았으며, 뛰어난 번역과 미려한 문장이 뒷받침되어 있고, 부처님의 생애와 계율 가르침, 수행에 이르기까지 분류가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철저한 구상을 통해 만들어진 책이고, 그동안의 부처님 일대기나 부처님 관련 책들이 원전을 직접 보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1차 출간된 자료들을 보고 한 것이 대부분인데 비해 이 책은 팔리어-니까야만 18년을 연구해온 일아 스님이 직접 번역하고 그 엑기스를 선별해 확실한 차별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경쟁력을 높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리고 사성제, 또는 연기를 설해놓은 여러 부파에서 기록해놓은 여러 개의 팔리어 텍스트본 중에서 가장 완전한 것을 골라 제시함으로써 비슷한 텍스트의 반복을 피하면서도 요체를 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나, 수녀로 있다가 비구니가 된 이색적 이력 등이 일반인들에게 어필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 중의 하나다. 즉 입산의 동기가 매우 분명하고, 30년 가까이 공부한 것을 일반중생을 위해 회향한다는 목표의식이 철저한 저자의 원력이 이 책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힘의 원천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수행과 결부된 학문, 한문과 선 중심의 한국불교가 갖고 있는 한계나 문제점에 대한 통찰력, 사회와 중생에게 공헌하지 않는 공부나 종교는 무의미하다는 철저한 소신 등 저자의 뛰어난 캐릭터와 내공이 그동안 품격 있는 책의 출판을 고집해온 민족사 윤창화 사장과의 만남을 통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출간 즉시 교보문고 종교서적 베스트 20의 1위에 2주 동안 올랐을 만큼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종교서적 20위 안에 불교 책이 거의 끼지 못하는 현실에서 놀라운 일이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적어도 2만 권 이상의 판매부수를 예상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못내 아쉬운 것은 책을 사는 독자의 절대 다수가 불자가 아닌 친불교인이나 일반인, 또는 이웃종교인들이라는 점이다. 이런 책으로도 죽어라하고 책을 읽지 않는 ‘불교 고질병’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민족사 영업팀의 분석결과다.

“책을 읽지 않으면 의식에 변화가 있을 수 없고, 의식 변화 없는데 한국불교가 달라질 수 있겠느냐”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윤창화 사장. 출간한 책의 ‘대박’으로 마땅히 파안대소를 지어야할 윤 사장 한숨은, 한국불교의 일그러진 신행풍토의 깊이만큼이나 길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