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프랑스인 신부이면서 불교를 전공한 학자이고, 교수이기도 한 서명원 교수가 종교간 대화가 원활하지 않은 한국의 현실에 불자들의 책임도 없지 않다는 비판의 글을 발표해 화제다. 이는 타종교, 특히 개신교의 배타성에 혀를 내둘러 온 불자들에게 조금은 불쾌하게 다가오는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서 교수의 지적대로 불교인들 중 개신교의 교리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공부를 하거나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서 교수의 글은 종교 간의 문제에 관해 불자들의 책임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비교적 격조를 갖춘 글로서 지식인 불자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는 중이다. 이 글은 최근에 출간된 <불교평론> 겨울호에 게재됐다. ‘종교간 화해의 실마리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이 글은 종교간 갈등에 관한한 불자들에 대한 의미 있는 비판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서강대에 재직 중인 서명원 교수는 교수이기에 앞서 1992년에 가톨릭 사제의 서품을 받은 프랑스인 신부다. 동시에 2004년 파리7대학에서 ‘성철 스님의 생애와 전서’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한국불교를 강의하는 불교학자이기도 하다.

“다종교를 인정하였던 고대 인도의 아쇼까 왕 시대에 나타난 종교 간 입장을 살펴보고, 한국 불교와 개신교 간의 관계가 헝클어진 실처럼 된 이유를 분석함과 아울러 해결의 실마리와 함께 양자 간의 화해방법을 모색해 보려 한다.”

서명원 교수는 <불교평론> 겨울호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이 펼치는 논지의 근거로 아쇼까 대왕의 칙령을 끌고 들어왔다. 그 칙령의 내용이 훌륭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불자들의 태도를 비판하는 전거로 전륜성왕으로 추앙받는 아쇼까 대왕을 내세우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쇼까 돌기둥(석주) 칙령은 사실 어느 정도 불교에 대해 공부를 한 불자들에겐 그리 낯설지 않다. 아쇼까 대왕은 인도 통일의 마지막 단계를 이루기 위해 작은 나라였던 카링카를 정복하고 나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 몸서리쳐서 평생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을 맹세하고 평화주의의 길을 시작했다. 서명원 교수가 밝힌 아쇼까 대왕의 칙령에 대한 언급은 이렇다.

“아쇼까 왕은 (자신의 불교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칙령을 통해 백성들에게 다른 종교의 가르침에도 귀를 기울일 것을 권고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각각각의 신조들이 세부적으로는 다르다 하더라도 중요한 점에서는 일치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는 효과를 가져 오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관심이 모든 종교의 본질적인 일치점들에 쏠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또 다른 집단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많은 것을 배우고 박식해지며,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자신의 종교 체계를 발전시켜 나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다른 신조들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면 다른 신조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게 될 것이며, 다양한 신조들 속에서 일치의 느낌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서 교수는 아쇼까 왕은 종교다원주의를 선호했고, 역사상 최초의 종교 간 대화 창시자일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서 교수는 그러나 전륜성왕으로 아쇼까 왕을 존경하는 한국 불자들은 정작 “다른 종교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한국 불자들이 갖고 있는 이웃종교에 대한 태도에 대해 7가지의 예리한 지적을 제시했다.

그 첫째는 한국불교가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와 이승만 정권하에서 계속 박해와 고통을 심하게 겪었기 때문에 1960년대부터 불교를 부흥시키느라고 정신없이 바빠서 기독교에 신경 쓸 시간이나 여력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근·현대에 들어 불교가 국내외에서 기독교로부터 너무 신랄하고 부당한 비판을 받아왔을 뿐만 아니라, 서구로부터 한반도에 들어온 그 외국종교에 대해서 상당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에 도저히 긍정적 관심이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불교의 세계가 워낙 넓은데다가 어떤 면으로는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워, 설사 기독교에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심도 있게 접근할 여유가 없었다는 점이다. 넷째는 기독교인들이 불자들에게 기독교를 흥미롭게 설명하는 데에 실패해 온 점, 다섯째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자기종교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대방을 개종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어서 불자들로 하여금 첫 순간부터 거부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여섯째는 선종(禪宗)의 영향으로 언어를 통한 종교간 만남의 가능성 자체가 어려웠고, 일곱째로는 이웃종교의 궁극적 가치까지는 인정하지 못함으로써 개신교 못지 않게 종교적 배타주의를 드러낸 점이다.

서 교수는 종교 간 대화를 위해 이웃종교의 가르침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결코 쉽지 않은 그 길을 가는 단계로, 첫째는 이웃종교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면서도 서로 비판한 것을 인정하는 죄의 고백, 둘째는 앞으로 이웃종교를 비판하지 않겠다고 다짐, 셋째는 이웃종교와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자신의 종교체계를 시대에 맞춰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이웃종교의 가르침에도 귀를 기울일 것을 권고하는 아쇼까 왕의 칙령이 많은 현대인에게는 귀에 거슬릴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들리지도 모르지만, 이를 외면한다면 조만간 모든 종교인들뿐만 아니라 인류가 다 같이 멸망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