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섭(統攝)이라는 말이 신드롬처럼 쓰이고 있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Consilience』(1998)를 『통섭』이라는 타이틀로 번역하면서 통섭이라는 말이 뜨기 시작한 이후 이후 학계, 언론, 문화계 등 각 방면에서 통섭이 유행어처럼 번졌다. 심지어 ‘한국 지식사회의 최고 화두는 통섭’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대학들은 앞다투어 통섭을 표방한 학과를 석학하고, 석학들은 지식의 통합을 외친다.

Consilience라는 말은 19세기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이 처음 만들어낸 용어로, ‘con’은 ‘함께’라는 뜻을, ‘silience’의 어원인 ‘salire’는 ‘뛰어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를 어떻게 번역할까 고심하던 최재천 교수는 ‘통섭’이라고 번역하면서, 이 용어가 원효대사의 화엄 사상에 대한 해설에 자주 등장한다고 그의 책 서문에서 설명했다.

그런데 12월 3일 삼성출판박물관 뮤지엄아카데미에서 ‘원효의 화쟁사상과 통섭적 세계관’을 강의한 동국대 김상현 교수는 “정작 원효의 저술에서는 통섭이라는 말을 단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으며, 통섭은 원효의 사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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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은 우리말로는 ‘도맡아 다스린다’, ‘총괄해서 관리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統이라는 말 자체가 통치적, 지배적 개념으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원효는 이같은 통치적, 지배적 사상을 펼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왜 최재천 교수는 통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원효사상에서 이를 가져온 것처럼 설명한 것일까.

이 해답은 원효 전공자인 전 동국대 교수 조명기 박사의 저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 박사는 ‘불교의 총화성과 원효의 근본 사상’이라는 논문에서 원효 사상의 특징의 하나로 통섭 모책을 꼽고 있다.

이 논문의 2장 6절 ‘통섭 모책(統攝謀策)’에서 조명기 박사는 “이와 같이 하여 종파색이 없어지는 동시에 일시원내(一時院內)에 있어서도 각자가 자의대로 간경(看經) 참선(參禪) 염불(念佛) 밀행(密行) 무엇을 하나 조금도 반목함이 없을 뿐 아니라 서로 화합하는 것은 한국불교의 특색인 동시에 효사상의 유통”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김상현 교수는 “최재천 교수가 강조하는 통섭이 원효의 사상과 통하는 바 없지는 않다”며 “원효의 화쟁방법은 전개와 통합이 자유로워 총체적으로 말하거나 개별적으로 논하는 방법을 자유롭게 구사하곤 했는데, 이는 ‘통섭은 분석과 종합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라는 최 교수의 설명과 매우 닮아있다”고 설명했다.

김상현 교수는 “원효의 사상으로 굳이 통섭으로 표현한다면 다스린다는 의미의 통(統) 이 아니라 통한다는 통(通)으로 표현돼야 한다”며 원효가 『금강삼매경』 종요에서 ‘통합해서 논하면 일관(一觀)이요, 열어서 말한다면 열 개의 문’이라고 한 것은 숲을 보는 통합적인 안목도 필요하고 나무를 보는 분석적인 논의도 또한 중요한 것임을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최재천 교수가 펼치는 ‘지식의 대통합’의 논리에도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근대화 이후 서양의 학문방법에 크게 영향 받고 있는 우리 학계 또한 크게 세분화됨으로서 전체를 아우르는 안목을 잃어가는 형편이기 때문에 ‘지식의 대통합’을 선창하며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일관된 이론의 실로 꿰는 범학문적 접근을 할 때가 됐다고 외치는 최교수의 주장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며 그의 의견이 일부분 동조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그것이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이론과 같이 모든 학문이 자연과학에 포섭되고 궁극적으로 환원된다는 논리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윌슨의 통섭(統攝)이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종속적 환원주의 관계라면, 원효의 무애는 ‘안과 밖’이라는 자성의 울타리가 제거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학문의 경계를 엄격하게 지킬 필요야 없겠지만 여전히 전공은 필요한 것이고, 통합적이고 종합적인 안목은 가져야 하겠지만 정밀한 분석적 사고 또한 필요한 것”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문에도 개폐(開閉)와 (出入)의 의미가 있다는 원효의 설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문을 여닫으며 자유롭게 드나들듯이 학문도, 지식도, 일상의 상식도 막히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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