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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 출신 한 비구니 스님이<br>전하는 붓다의 생생한 목소리

탁효정 | bellaide@naver.com | 2008-12-04 (목) 16:20

이 기사는 소재가 너무 풍부해서 쓰기 힘든 기사다. 기사 중에는 소재가 너무 빈약해서 쓰기가 힘든 기사와 소재가 아주 좋은 기사들이 있는데, 너무 소재가 풍부해 쓰기 힘든 기사라는 이야기는 기자들에게는 즐거운 비명이다.

수녀 출신의 비구니 스님이 빠알리 경전을 집대성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유명 정치인의 딸이 수녀가 되었다가 비구니가 되었다는 것만도 흥미진진한 소재다. 그런데, 책 내용도 너무 잘 나왔다. 혹시 앞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쓰다가 정작 책의 가치가 약해지지나 않을까, 이것이 고민이다. 행복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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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을 펴낸 일아 스님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원래 독신수행자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성경이나 기독교교리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다만 미션스쿨인 서울여대를 나와 자연스럽게 기독교에 가까워졌고,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는 수녀의 모습이 좋아보였다. “스님은 머리를 빡빡 깎아야 하니까 너무 낯설어서”,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후 수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유명 정치인이었던 아버지는 “왜 자연을 거스르고 살려고 하느냐”고 호통을 쳤고, 어머니는 몸져 누웠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톨릭신학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명동성당 옆 사르트르 바오로 수녀원의 수녀가 되었다.

수련생활이 끝난 후 그가 맡은 첫 번째 소임은 도서관 사서. 이곳에서 무수히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많은 책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어온 책은 동국대에서 나온 『불교성전』이었다.

‘와! 이런 세계가 있구나.’

처음으로 불교경전을 접해본 그에게 불교는 솜에 물이 스며들듯 그대로 스며들었다. 전혀 걸리는 게 없었다. 그동안 전혀 교리에는 관심이 없던 그는 이후 불교경전을 읽으면서 ‘여기에 내 길이 있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종신서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녀원장을 찾아가 이런 이유로 더 이상 수녀를 할 수 없겠다고, 그만두겠노라고 고백했다.

막상 수녀원을 나서니 앞이 막막했다. 불교를 공부하고 싶지만, 책에서 본 불교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길로 송광사 불일암을 찾아갔다. 법정 스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법정 스님은 원래 수녀들에게 아주 인기가 높은 분이라, 법정 스님의 책은 하나도 빠짐없이 읽은 터였지만, 정작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법정 스님은 수녀원에서 갓 나온 그의 이야기를 찬찬히 듣더니, 장문의 편지를 써서 쥐여 주며, 비구니 특별선원인 석남사로 가보라고 했다. 이곳에서 그는 행자생활을 시작했다.

일아 스님크게보기

행자 생활을 마치고 그는 운문사 승가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그런데 승가대학에서 부처님의 직설이 담긴 초기경전을 가르치지 않고 한역경전, 그리고 중국 선사들의 이야기만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그가 궁금한 것은 ‘붓다’였다. 붓다는 어떤 사람이었나.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어땠나. 그의 수행법은 무엇인가. 그걸 보고 싶었다.

스님은 그후 미얀마 마하시센터로 갔다. 그곳에서 2년간 목숨을 걸고 부처님 당시의 초기수행법으로 수행을 했다. 그때서야 절감한 것이 “불교는 정말 ‘수행의 종교’”라는 것이었다.

스님은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말했다. “나는 한다면 하거든요.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해야지 안 그러면 직성이 안 풀려요.”

정말 그랬다. 미얀마에서 초기불교 수행법을 접한 그는 제대로 초기경전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1991년 미국 스토니브룩 뉴욕 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웨스트대학 대학원에서 ‘빠알리 경전 속에 나타난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LA 로메리카 불교대학 교수, LA 갈릴리 신학대학원 불교학 강사로도 활동했다.

스님이 이번에 편찬한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은 미국 유학 초기부터 박사논문을 쓰기까지 자신이 번역한 글들을 주제로 선별해 묶어낸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책으로 묶어낸 시간은 꼬박 2년이 걸렸지만, 책이 나오기까지는 17년이 걸렸다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이 책의 구성은 아주 독특하다. 아주 방대한 빠알리 경전 가운데 중복되는 내용들을 하나로 출이고, 이를 여러 주제별로 다시 묶어낸 것이다.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은 빠알리 대장경 중 다섯 종류의 니까야와 율장의 내용들이다. 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들을 주로 묶어 주제별로 엮었다.

제1편은 부처님의 출가 이전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생애이고, 제2편은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내용이다. 붓다의 제자들과 추종자들에게 붓다란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해주는 내용들이다. 제3편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사성제와 계율, 평등사상, 현실직시, 마음챙김 수행(위빠사나)에 관한 내용들이다. 제4편은 붓다의 열반 후 제1차부터 제4차까지 결집이 이루어지면서 빠알리 대장경이 집대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 *

스님은 이 원고가 완성되자 한국에 편지를 보냈다. 민족사 윤창화 사장에게 원고와 함께 보낸 것이었다. 스님은 윤 사장에게 인세는 한 푼도 받지 않겠으니, 대신 인세를 갖고 이 책을 좀 더 좋은 책으로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원래 3만5000원 정도 책정될 책의 가격이 2만 8000원으로 줄어들었고, 종이 재질과 책 표지가 훨씬 더 좋아졌다.

스님은 앞으로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한권 갖기 운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불교신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관공서, 도서관, 민간단체, 교도소, 군부대, 병원의 병실, 호텔의 각방에 비치하여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게 하자는 것이다.

스님은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과 함께 『예경독송집』을 펴냈다. 이는 빠알리경전에서 예경에 필요한 경전, 간병과 효도와 관련된 경전, 우정에 관한 가르침, 바른 생각․바른 행동에 관한 가르침만을 선별해서 묶어낸 것이다. 불교를 잘 모르는 이들과 함께 예불을 드릴 때,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두꺼운 경전을 읽기가 힘든 이들을 위해 따로 엮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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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의견 2008-12-04 13:46:30
답변  
주류언론이 기존매체의 뉴스를 그대로 웹상에 옮긴것에 지나지 않아서 인터넷매체라는 특성이 살아있는 기사문이 되지 않았는데,순수 인터넷뉴스업체의 기사문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미디어붓다의 기사문이 갈수록 블로그뉴스들의 영향을 받아 변하는 것 같습니다.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인터넷매체를 이용하는 불교언론이라는 미디어붓다의 색깔이 베여있는 기사문을 만들어가는 좋은 출발이 되기를 바랍니다.
의견 2008-12-04 13:48:18
답변  
종신서원하신분도 아닌데 그냥 수녀출신이라는 표현은 빼는것이 어떻습니까? 만약 다른 종교에서 비구니 출신 전도사, 승려출신 신부라는 표현을 쓸일이 있다면 그다지 반갑지 않을듯한데...
애독자 2008-12-05 09:29:16
답변  
뭔가 다르네요. 글쓰기라든가, 지면 구성이라든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사람이 또 계셨네요.
겨우살이 2008-12-05 10:00:54
답변  
이렇게 소상하고 친절한 기사는 참으로 오랜만에 봅니다. 그저 특별한 책이 하나 나오고 스님에 이력이 특별하구나 생각하였는데 첫 멘트부터 기사를 끝까지 읽게하는 매력있는 기사군요. 성의있어 보여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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