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한국 불교가 이렇게 된 원인을 진단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지도층의 타락과 무능력 그리고 무책임을 꼽는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지도층이란 출가승단을 두고 하는 말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그 출가 승단이란 조계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에서 불교 퇴보의 원인을 출가승단에 돌리는 데 있어 그래도 원인의 중심에 서있는 출가승단은 그나마 존재가치라도 인정되어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비난받을 축에도 끼지 못하는 출가 승단이 난립되어 한국불교를 이끌어 간다는 데 있다.

불교의 현실을 보자. 물론 불교가 쇠락하게 된 원인을 출가승단이 종권 다툼을 하고 포교를 하지 않는 것에 두는 것은 이론이 없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눈으로 보아야 할 대상들은 위에서처럼 비난의 축에도 들지 못할 무자격 종단, 무자격 사찰, 무자격 스님들이 한국 불교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과연 수많은 종단, 수많은 사찰, 수많은 스님들 중 부처님의 정법에 바탕을 두고 수행하며 포교하는 숫자가 몇이나 되는가? 극히 일부의 종단, 그 일부의 종단 안에서도 다시 일부의 사찰, 일부의 스님들만이 정법을 표방하면서 재가자들을 이끌고 있을 뿐 대부분은 미신과 기복과 의례만으로 재가신도들을 이끌고 있다. 부처님의 진리를 깨우쳐 주고 정법을 수호해야 할 종단과 사찰과 스님은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 목탁이나 치면서 공양이나 내려먹는 수준이다.

심지어는 무당도 머리를 깎고 스님 행세를 하는 등 한 마디로 한국불교는 정법(正法)보다 사법(邪法)과 마도(魔道)들이 판을 치는 곳이다. 방편이라는 구실아래 버젓이 부처님을 모셔 놓은 채 부적을 팔고 사주를 보고 액땜하는 의식을 행하면서 재가신도들의 시주 돈이나 바라고 기이한 기도법과 수행법으로 재가자들의 마음을 혹란케 한다. 재가 신도들이란 거의 소속 사찰의 스님에 의존해 그 신앙적 형태가 만들어지는지라 스님의 수준이 이와 같으면 재가 신도의 수준도 똑같아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재가 신도들은 불교의 기본 교리는 그만 두고라도 부처님이란 이름의 의미조차도 모른 채 미신과 불교를 동일시하고 어떤 계기를 만나게 되면 다른 종교로 개종을 해 버리게 된다. 참으로 애석한 일은 불행하게도 한국의 불자들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이 이러한 종단과 사찰과 스님에 소속되어 신행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현실은 너무도 걱정스러워 말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므로 일단 이쯤해서 덮어두기로 하고 이 같은 부류의 종단 외에 그나마 불교의 정수가 살아 있는 조계종의 재가신도의 신앙적 수준과 역할에 대해 살펴보자.

재가신도들의 신앙적 수준은 낮고 역할은 없어

알다시피 조계종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정통 종단으로 신도의 수도 가장 많고 그 수준도 높아 모든 불교조직과 단체가 이곳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지금 한국불교에 있어 재가불자의 역할 문제를 논하는 것도 앞에서 언급된 무자격 종단에 소속된 재가신도가 아닌 그나마 조계종을 중심으로 형성된 재가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논의하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렇다면 과연 조계종을 중심으로 하는 재가신도들의 신앙적 수준과 역할은 어떠할까? 결론은 역시 낮고 약하기 그지없다고 답할 수 있다. 조계종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은 수효의 신도를 거느린 대형 종단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불교를 이해하는 수준과 조직력은 기독교 신자의 신앙 수준에 훨씬 못 미치고 대형교회 몇 개 합한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 종교의 교세는 신도의 숫자보다는 신도의 신앙적 수준과 조직력 그리고 역할 범위에 따라 정해진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신앙적 수준이 낮고 조직력과 역할이 없다면 그 종교는 교세가 약해질 수밖에 없고 아울러 사회에 그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조계종이 천육백 년 불교사를 대변하고 나라 종교인구 중 가장 많은 신자 수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도의 신앙적 수준과 조직 그리고 역할이 낮고 부족하기 때문에 타 종교에 비해 교세가 밀린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은 곧 불교의 퇴보를 가리키는 것으로 불교가 퇴보를 하였는지 발전을 하였는지를 알려면 불과 이십여 년 전의 상황과 대비해 보면 된다. 이십여 년 전 1980년대 재가 불자들의 불교 활동은 상당히 높았다. 학생조직, 청년조직도 나름대로 견고했고 신도조직도 꽤 건실했으며 특히 수많은 신행단체가 생겨 활발한 역할과 함께 사회참여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보다시피 이제 지금은 그와 같은 조직과 활동은 이미 찾아보기 힘들어 발전은 고사하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어도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변해 버렸다.

이는 참으로 모든 불자가 안타까워해야 할 일로 일말의 책임 의식이라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특히 한국불교를 대표하고 있는 조계종단의 책임은 더욱 크다. 물론 조계종이 그동안 재가불자를 위해 신앙적 수준을 높이는 데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고 재가신도의 조직과 역할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말은 아니다. 나름대로 조계종이 구태를 청산하고 불교 발전을 위해 다방면에 걸쳐 갖가지로 고심하고 노력한 흔적은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다른 면은 몰라도 재가불자를 향한 조계종단의 배려는 매우 빈약하다는 시각을 갖게 한다. 조계종단은 모든 제도가 출가 스님 쪽만을 향하여 구성되어 있다. 종단 속에 재가불자의 위치는 하나의 예배자, 하나의 공양자, 하나의 외호자일뿐 아무것도 아니다. 심한 표현일지 몰라도 대체로 불교 속에서 재가신도들의 위치란 그저 절이나 하고 기도나 하고 보시나 하고 재나 잘 지내면 되는 존재이다. 재가신도는 종단이나 스님이 하는 일에 왈가왈부해서도 안 되고 어떤 법을 설하고 어떤 방편을 써도 이의를 제기하면 안 된다고 보는 것이 조계종단의 시각이요 대다수의 스님들이 지닌 견해이다. 종단이나 스님들은 재가자의 신앙적 성장과 역할을 크게 반기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

재가신도들이 정법을 수행하고 펴는 사람이 되어야

따라서 한국불교에서 재가신도의 역할이 증대되기 위해서는 바로 이 같은 조계종단의 의식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힘들다고 보아야 하고 그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비난받을 말이지만 필자는 이미 다른 종단은 언급 언급하고 싶지도 않고 조계종단에 대해서도 재가 신도의 발전을 가져오리라는 기대를 저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는 것일까? 불교가 발전한다는 것은 출가승단만이 아니라 재가신도도 함께 발전한다는 뜻이다. 이 중에 재가신도의 발전이 있기 위해서는 이제 재가신도가 종단이나 사찰을 중심으로 한 활동으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힘들게 되었다. 그러려면 재가 신도 스스로 발전을 도모하는 재가불교로 한층 발돋움할 필요가 있다. 즉 하나의 수동적 신도의 입장에서 불교를 할 것이 아니라 능동적 주체자의 입장에서 불교를 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이 같은 재가불교가 한국불교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먼저 재가신도들 스스로가 정법을 수행하고 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국 불교는 너무도 많이 정법으로부터 멀어져 있다. 무속적 불교, 미신적 불교, 도교적 불교가 정법을 잠식한 지 오래되었다. 종교가 본래의 이념을 잃게 되면 망해 버린다. 한국 불교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부처님의 정법을 회복하는 일이다. 정법도량이 아니면 귀의하거나 보시를 해서는 안 되고 법답지 않은 스님들을 멀리하여 불교를 바로 세우는 데 힘서야 한다. 다음으로 재가불교가 발전하려면 올바른 재가 지도자들을 양성해야 한다. 중생을 제도하고 정토를 구현하는 데는 승속이 있을 수 없다. 스님을 대신할 수 있는 실력과 인격을 갖춘 재가 지도자를 양성하여 미래의 불교를 짊어지게 해야 한다. 다음으로 뜻있는 재가 불교인들이 서로 교류하고 규합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종단 안에서는 재가 신도의 조직과 역할이 마음대로 만들어지거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종단에 의존하지 않는 재가신도들에 의한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제 불교는 동양권을 벗어나 서구 쪽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 필자의 지나친 예상인지는 몰라도 단기적으로 보면 기독교가 불교를 압도할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불교가 서구 쪽에서 꽃을 피워 다시 동쪽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미 서양의 불교는 출가한 스님들에 의해 불교가 전해졌지만 재가자들을 중심으로 한 단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은 수행하는 자의 것이며 실천하는 자의 것이다. 출가 스님에게 귀의하는 것과 의존하는 것은 다르다. 아무리 재가신도가 위대해도 스님을 향한 존경심은 잃지 말아야 한다. 어디까지나 마음으로는 종단을 소중히 생각하고 공경․귀의해야 하는 것은 불자의 기본임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불교의 모든 것까지 스님들에게 의지하여 맡겨 두기만 할 수는 없다. 여러 가지 난관은 있겠으나 원을 세우고 불교의 한축을 재가불교가 담당할 수 있다면 그래도 불교에 앞날은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적연 이제열 법사는?

시민선방 유마선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금강경 대강좌』,『수행으로 가는 길』이 있고, 역서에『원각경』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