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부르는 메아리가 소나무 겨우살이의 안개에 떨어지고/ 차 달이는 향기는 돌길 위로 부는 바람에 실려 오네. 백운산 아랫길로 들어서는 순간/ 이미 암자 안 노스승의 알았도다

이 멋진 시의 작가는 고려 진감국사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노스승은 바로 그의 스승인 보조국사 지눌. 보조 스님을 찾아뵈러 가는 길에 산 밑에서 쉬는 도중, 깊은 산중에서 차 달이는 향기가 바람에 실려와 보조 스님의 뜻을 알았다는 내용이다.

이 시 한 편에는 고려시대 스님들의 생활 속에서 차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고, 차 한 잔이 단순한 음료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한국 차의 역사는 불교와 떼놓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중국에서 들여온 차는 사찰을 중심으로 재배되었고, 어느덧 선방의 필수 용품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불교수행뿐만 아니라 왕실, 문인, 일반 민중에 이르기까지 고려인들은 차 문화를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문화의 백미로 꼽히는 고려청자 또한 차를 담기 위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그릇이다.

고려시대는 불교가 국교였던 만큼 스님들이 지은 차시가 유난히 많이 전해지고 있다. 문인들 또한 스님들과 차와 차시를 주고받으며 차 문화를 형성해나갔다. 고려시대 스님들과 문인들의 차시는 당대에는 서로를 이어주는 매개체였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고려의 문화와 역사를 읽는 사료가 되었다.

크게보기고려시대 차시들을 엮어낸 책 『고려 차시와 그 문화』가 출간됐다. 이 책의 저자 정서경 초당대 국제어학원 교수는 대각국사로부터 진각, 진정, 원감, 백운, 태고, 나옹 등 고려의 고승들의 차시와 함께 이제현, 이곡, 이색, 정몽주, 권근, 길재 등이 남긴 차시들을 번역해 엮어냈다. 또한 고려의 차명, 찻일과 찻잎, 차의 포장, 보관에 이르기까지 고려시대 차 문화 전반에 대한 내용까지 함께 수록하고 있다.

차시에는 스님들의 저술이나 어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인간적인 회한들이 물씬 묻어나온다. 고려말 대표적인 선승인 나옹 스님은 주옥같은 차시들을 많이 남겼다. 자신의 하늘같은 스승 지공화상이 입적하자 그 날에도 나옹 스님은 차 향기를 담은 시를 지어 스승을 추모했다.

떠날 때가 되어 법을 보였으나 아는 이 없어/ 종지를 모른다고 문도들을 호되게 꾸짖었네/ 엄연히 돌아가시매 모습은 여전했으나/ 몸의 온기는 세상과 달랐다/ 이 불효자는 가진 물건이 없거니/ 여기 차 한 잔과 향 한 조각 드립니다

지공을 위해 다린 차 한 잔, 그 속에 어찌 차 한 숟가락만이 담겨졌을까.

조선 건국의 주체 중 한 명인 권근은 한양으로 온 다음 차 한 잔에 회한을 담은 시를 전했다.

새 도읍지엔 집이 없어 셋집에 살면서/ 눈을 보고 시 읊으며 차를 마시네/ 병 중에 한가롭게 베개 베고 누웠으니/ 고용한 문 앞에 골목 아침 햇살 비춘다네/ 흰 눈은 집집마다 새하얗게 내렸는데/ 새벽에 아이 불러 차 끓여오라 하네/ 요컨대 시상에 맑은 기운 들게 하여/ 종이 가득 붓을 놀리니 고운 석양 이르렀네

한국의 차는 우리 역사의 주체들과 더불어 최고의 문화, 최고의 사상, 최고의 예술을 꽃피워냈다. 그중에서도 고려 차시에는 불교와 더불어 살아가던 그들의 모습과 사상, 그네들의 인간적 회한이 고스란히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