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시기에 이르면 불교는 철학이냐, 종교냐는 논쟁에 휘말리게 된다. 근대 이전까지 불교는 종교도, 철학도 다른 그 어느 것도 아닌 불교 자체였다. 불교의 세계관, 수행법, 교리가 있을 뿐 불교를 어디에다 끼워맞춰야 할 필요성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근대시기에 들어서면서 문제는 달라진다. 서구의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스펙트럼에 따라 불교를 바라보았고, 이에 동양의 불교인들은 불교가 얼마나 수승한 가르침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불교를 근대적 학문체계로 정립시키는데 혼심을 기울였다. 이것이 바로 ‘철학화한 불교’, 즉 불교철학이다.

이시기 불교의 ‘철학화’라는 구체적 문제의식과 이에 내재하고 있는 근대인식의 문제점을 드러낸 논문이 발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김영진 연구교수가 11월 8일 '근대불교의 자화상'을 주제로 열린 불교학연구회에서 발표한 ‘근대 한국불교의 형이상학 수용과 진여연기론의 역할’은 근대시기 불교의 철학화 과정을 고찰한 최초의 논문이다.

크게보기김 교수는 “근대시기 불교철학이 서구 형이상학과 독일 관념론을 철학적 기반으로 완성됐다”며 “현상과 실재라는 형이상학의 도식을 수용했고, 불교의 교리 전개를 관념론(유심론)의 발전사로 이해하는 경향도 나타났는데 그것은 연기론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몇몇 교리체계를 업감연기론, 아뢰야연기론, 진여연기론이라는 형식으로 분류하고 진여연기론을 연기론의 완성이라고 본 것은 다분히 진화론적 교리해석이지만 이런 것들은 반성 없이 수용됐다”며 “이러한 진여연기론은 불교 교리를 국가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계기가 되고 이 과정에서 헤겔의 절대관념론의 몇몇 개념들이 진입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를 통해 “불교이론이 이데올로기화 했고 불교의 철학화를 주도한 몇몇 식민지 지식인들은 여과 없이 그것을 수용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가 지적한 몇몇 식민지 지식인은 김철우, 백성욱, 김동화 등이다. 김 교수는 “이같은 불교이론의 이데올리기화가 해방이후까지 지속됐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의 문제제기는 근대불교 연구영역에서 처음으로 제기된 주장이라, 이날 참가 학자들로부터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반대의견 또한 만만치 않았다. 김 교수의 논평을 맡은 고려대 조성택 교수는 김 교수의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면서도 “논점을 지나치게 단순화 혹은 일반화 시켰다”고 비판했다.

조성택 교수는 “불교‘철학’의 등장이 근대의 한 징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서구의 형이상학 특히 독일 관념론의 수용’의 측면에서 보고 있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관점”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불교‘철학’의 등장은 서구에 있어 근대의 한 징표인 종교와 철학의 분리 문제와도 관련이 있으며, 특히 유일신관을 바탕으로 하는 기독교 문화권의 불교인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불교‘철학’의 문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불교 내적 그리고 바깥의 입장이 어떤 점에서 충돌되고 화해되고 있는가를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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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불교 내부에서도 불교가 철학이냐, 종교냐의 문제는 ‘하나’의 입장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며 “전통불교를 철학적으로 재해석하는 문제를 분석하는 입각점도 ‘세계의 성립과 근원’이라는 단순한 관점 하나로 일관하고 있어 전혀 설득력이 없으며 지극히 제한적 범위의 저술과 인물들의 분석을 통해 너무 큰 결론을 아주 대담하게 내리고 있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양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이날 참가 학자들은 “두 학자의 의견이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상보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고 코멘트를 던지며 흥미진진하게 논쟁을 지켜보았다.

김영진 교수가 제기한 ‘근대 불교의 철학화’는 불교의 근대성, 근대불교 담론을 풀어나갈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임에 분명하다는 것이 이날 학자들의 대체적인 반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