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사찰에서 쓰이는 종이는 대부분 절에서 직접 만들었다. 절에서 만드는 종이의 질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돌자 지역 유생들, 지방 관청, 중앙 정부에서까지 종이를 진상하라고 요청했다. 그 요구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중국에 공물로 보내는 종이까지 제작하게 되자 더 이상 참다못한 스님들이 조정에 종이를 만드는 역을 감해달라는 상소까지 올려야 할 지경이 되었다. 이것은 조선시대 불교의 피폐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에피소드이지만, 한편으로는 종이 만드는 고급 기술이 사찰에서 전수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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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불교와 종이는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사찰에서는 더 이상 종이를 제작하지 않게 되었고, 불경 또한 한지가 아닌 미색모조지에 대량 인쇄돼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스님이 있으니, 청도 영담한지미술관 관장 영담 스님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30여년간 전통한지공예를 해온 영담 스님이 11월 18일까지 갤러리 라메르 제 1특별전시실에서 ‘영담 스님의 닥종이 사랑 30년’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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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꽃잎이며 진달래 꽃물을 들이고 가을이면 나무 열매를 따다 그 즙을 입히면 종이는 더 이상 종이가 아닌 하나의 그림으로 재탄생한다. 이른바 ‘한지화’이다.

종이 만들면서 그림이나 연출한다는 소리 들을까봐 부끄러워 숨겨놓았던, 그래서 20여년간 다락방에 꽁꽁 숨겨두었던 한지화들이 이제야 빛을 보고 있다.

한지화들은 최근에서야 소개되고 있지만, 그동안 스님의 종이들은 100여년뒤 국보가 될 책, 1000여년뒤 불법의 맥을 이어나갈 경전이 되었고, 서구에 ‘한국’ 브랜드를 알리는 대표적인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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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손을 백번 거쳐서 탄생한 종이들은 1986년 ‘동국대 개교 80주년 기념’으로 <신수화엄경>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영인지로 쓰여졌으며, 1988년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간행한 <직지심체요절><왕오천축국전><월인친강지곡>등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90년대 들어서는 유럽, 미국, 프랑스, 일본으로 스님의 종이가 한국의 문화아이콘으로 소개됐다.

“종이는 법(法)을 담는 그릇이자 불법(佛法)의 곳간”이라는 영담 스님. 그가 종이 위에 아로새긴 불화(佛畵)의 세계가 인사동 한복판에서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