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암울했던 시기에 오직 참선정진으로 대각(大覺)을 성취해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는 원력으로 안거에 들었던 선사들이 안거 기간 중에 사용했던 참선시간을 새긴 참선 시간표 ‘入禪出禪時間表(입선출선시간표)’가 공개됐다. 제작된 지 103년 만의 일이다.

24년 전 미황사에서 발견된 이 ‘입선출선시간표’는 구참 수행자들도 본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옛 스님들의 수행정진 일과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가로 39센티미터 세로 26센티미터 크기인 이 참선시간표는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이 미황사로 온 뒤 얼마 되지 않은 지난 1990년 허름한 요사채 창고에서 발견됐다. 금강 스님은 이 시간표를 수습해 지금까지 소중하게 보관해오다가 〈미디어붓다〉를 통해 지난 7월 9일, 처음 공개했다.

이 시간표가 제작된 시기는 ‘世尊降生二千九百三十九年壬子(세존강생2939년임자)’로 서기 1912년, 즉 일제에 의해 강제 합병된 1910년 직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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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제작되어 미황사 선방의 하안거 및 동안거 기간동안 사용했던 입선출선시간표.

금강 스님은 이 참선 시간표에 대해 “일제강점기, 즉 주권을 빼앗긴 암울했던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참선 가행정진으로 용맹 정진했던 옛 선배 스님들의 체취를 간직한 이 시간표를 보며 늘 마음을 다잡곤 했다”며 “세월호 참사 등으로 국가가 국민들 모두가 슬픔에 잠겨 있고, 정치권의 무능으로 인해 국민들의 한숨이 늘어가고 있는 시대를 살면서, 100여 년 전 선배 스님들의 치열한 구도의 삶을 엿볼 수 있고, 오늘을 사는 수행자들에게 정진원력을 새삼 다잡게 하는 매우 소중한 성보(聖寶)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시간표에 따르면, 당시 스님들은 농사도 지어야 하는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 동안거 때에는 하루 12시간, 하안거 때에는 하루 11시간 정진을 했다. 얇은 송판의 양면에 각각 동안거와 하안거 시간표를 직접 새겨 쓴 이 목제 시간표는 미황사 선방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근대 한국불교 수행의 일면을 알게 하는 귀중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간표에 따르면, 하안거 때에는 상오(새벽) 2시에 입선한 후 4시에 출선하고, 다시 6시에 입선하고 10시에 출선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오(오후)에는 오후 1시~4시, 오후 7시~9시까지가 정진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정진 시간 사이에는 아침 공양, 점심 공양, 저녁 공양 시간에 해당하고, 잠은 오후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5시간으로 추정된다. 하안거의 참선 시간은 총 11시간이다.

동안거 시간표를 보면 상오(새벽) 3시에 입선하고 6시에 출선하며, 8시에 입선하고11시에 출선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오(오후)에는 1시에 입선하고 4시에 출선, 8시에 입선하고 9시에 출선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역시 정진시간 사이 틈새 시간에 아침, 점심, 저녁공양을 했으며, 6시간 정도가 잠자는 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동안거의 참선정진 시간은 하안거보다 1시간 많은 12시간이다.

금강 스님은 “이런 정도의 정진시간이면 가행정진(加行精進)이라고 할 수 있다”며 “앞으로 미황사에서는 참사람의 향기 과정을 거친 구참 수행자들 대상의 정진 프로그램에서 이 시간표대로 정진을 해보는 수행 프로그램을 기획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