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최근의 종교편향 사건들은) 실무자들의 실수일 뿐, 계획적이라거나 이 대통령의 편파적인 국정운영은 아닐 것이다.”

이 발언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 엄신형 목사가 7월 30일 낮 12시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대표의장 취임식 직후 밝힌 내용이다.

비슷한 시각 조계종에서는 총무원장 지관 스님 차량에 대한 검문과 최근 불교계에 대한 종교편향적 사건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며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었다.

같은 사건을 두고 한쪽에서는 실무자들의 단순 실수라고 판단하고, 한쪽에서는 정부의 계획적인 종교편향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엄 목사는 최근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실무자들의 실수일 뿐”이며 “종교간의 갈등이나 정부의 종교편향 정책은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엄 목사의 발언대로 불교계가 종교편향으로 규정한 사건들이 ‘실무자들의 실수일 뿐’이라면 이를 종교편향으로 바라보는 불교계가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긴 형국이다.

엄 목사는 이 발언에 이어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발전에는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종교 간에는 분쟁 없이 종교인으로서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엄 목사의 발언이 나온 직후 불교계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발전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지만, 한국의 종교지도자를 대표하는 인물의 발언으로서는 너무 경솔했다”는 지적이다.

종교평화위원회 손안식 위원장은 “공직자들은 모두 엄 목사처럼 말단 공무원들에게 책임 전가를 하고 있는데 이런 발상이 종교편향 문제를 더욱 꼬여가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손 위원장은 “그런 행위를 하게 된 원인을 봐야할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종교편향적 행위를) 안하면 밑에 사람들은 하고 싶어도 못한다. 고위공직자들의 종교편향적 사고가 바꿔지지 않는 한 종교편향은 계속 야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불교계 인사는 “종교간의 화합을 도모해야 할 대표의장이 다른 종교를 포옹하고 범종교인으로서의 입장을 취해도 모자랄 판에,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린답시고 불교인들의 불만을 무시하는 발언을 할 수가 있냐”며 “앞으로 수년간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가 친정부, 친기독교 단체로 전락해 대국민적 신망을 잃어버릴까 걱정된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번에 새 종지협 대표의장에 취임한 엄신형 목사는 7월 중순까지 뉴라이트기독교연합 대표회장을 역임했으며, 대표적인 보수 기독교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엄 목사가 최근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으로서 취임함에 따라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에 이어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대표의장직을 자연 수행하게 된 것이다.

종교지도자협의회 대표의장은 각 종교계 지도자가 순차적으로 맡는 다소 형식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자리이다. 하지만 각 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회의를 하고, 머리를 맞대고 우리 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이 모임은 한국 종교평화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동안 종지협은 상징적 의미에 지나지 않지만 국가적인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시국성명을 발표하고 수시로 각 종교단체들 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등 한국사회에서 종교의 바람직한 좌표를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의장에 선출된 엄신형 목사가 던진 발언을 통해 종지협에서 더 이상 종교를 넘어선 공감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우려를 느끼는 건 불교계 기자의 한갓 기우일 뿐일까.

서울시장 재직시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 장로 대통령에 대한 불교계의 우려감은 최근 현실을 넘어서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29일 발생한 총무원장 차량 수색 사건은 부분적으로 이루어지던 분노를 하나의 줄기로 모으는 도화선이 됐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엄 목사의 ‘실무자의 실수’라는 발언 직후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 당시) 서울시 봉헌 발언이나 부산에서 열린 부흥회에서 영상 응원 메시지를 보낸 것도 (실무자의) 단순한 실수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제기됐다. 그러자 엄 목사는 “지금은 정치적인 의견을 밝히는 자리가 아니니 종지협 대표의장 취임에 관한 물음만 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겠느냐”며 “기회를 마련해 정치적 입장이나 정책에 대해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며 답변을 회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