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인한 충격과 슬픔이 자본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과 도덕, 윤리, 삶의 본질을 찾는 움직임으로 치환되고 있다.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가르침 대신 어떤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함께 불교의 생명존중사상이 확대돼 삶 속에서 실현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이런 차제에 초·중·고 윤리교과서에서 불교사상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검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소장 법안 스님)와 불광연구원(이사장 지홍 스님)은 6월 14일 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초·중·고 윤리교과서의 불교서술 체재와 내용’을 주제로 한 공동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여한 현직 초·중·고 교사들은 불교 사상이 현행 교과서 안에서는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데 동의하며 불교 사상이 청소년의 윤리적 정서 함양에 적극적으로 개입되어야 한다는데 궤를 같이 했다.

이철주 초등교사 “눈높이 맞춰 호기심 이끌어야”

이철주 대전 중원초등학교 교사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불교내용을 서술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불교의 근본적인 사상과 교리 등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학생들에게 호기심과 관심을 이끌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과장되지 않은 현실적으로 있음직한 내용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도덕교과서의 학습단계 중 특히 ‘마음가꾸기’ 활동에 불교의 내용이나 방법이 반영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 교사는 “불교를 종교로 바라보는 인식이 강할 경우 오히려 도덕교과서에서 다루는 것이 제한적일 수 있다”며 “불교를 우리 삶의 전통과 문화 속에서 이해하려는 의식의 전향이 요구된다”고 했다.

이 교사는 또 현행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서 동양사상 및 철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아지고 있음에도 불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부족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도덕교과서의 집필진들은 대체로 서양 도덕교육을 전공한 사람이 많고 동양 도덕교육에 관심을 갖는 집필진이 있어도 유교나 성리학에 편중돼 있다”며 “불교관련 전공자들 내지는 불교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신희정 중등교사 “‘불교는 종교’라는 닫힌 관점 전환해야”

신희정 경남 진영중학교 교사는 “‘불교는 종교’라는 닫힌 관점을 타파하고 철학, 윤리학, 인문학 등 학(學)의 옷을 입을 수 있다면 여러 내용요소에서 붓다의 혜안을 내용으로 제시하고 도덕교육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신 교사는 “계율을 준수하고 경전을 공부하며 지관을 닦는 수행을 하는 불교는 교과서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본래적 공부 그 자체”라며 “그러나 ‘불교는 종교’라는 인식 탓에 불교 전공자가 현저히 적고 교과서 집필진 구성에도 배제되어 있는 등 참고자료나 활동하기 어느 곳에서도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교사는 2007 개정교육과정 이후 강조되고 있는 ‘제4영역’에 대한 불교의 접근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는 “교육 체계가 사회과학 접근법에서 벗어나 생활영역과 가치관계 확장법으로 바뀌면서 도덕적 주체로서의 나와 자연·초월전 존재와의 관계인 제4영역을 설정하게 됐다”며 “제4영역 설정을 특정 종교교육이 아니라 도덕과답게 가르치고 배우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볼 때 불교는 전통 도덕교육론으로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 교사는 또 “붓다의 가르침을 통해서 학생들의 도덕적 실천을 고무하기 위해서는 불교계와 불교학계의 합의된 내용마련과 이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려는 학제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크게보기

'초·중·고 윤리교과서의 불교서술 체재와 내용' 학술세미나 참가자들이 신희정 중등교사의 발표를 듣고 있다.

이철훈 고등교사 “‘역사적 사실’보다 ‘핵심 사상’ 중요”

이철훈 경기 상현고등학교 교사는 고등학교 윤리교과서에서 불교사상이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기술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교사는 “불교 윤리가 유교 윤리에 비해 양적으로 부족하지는 않지만, 유교 윤리는 공자, 맹자, 순자의 선진유학을 핵심 개념으로 자세히 다루고 조선후기의 위정척사운동과 개화사상 등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데 반해 불교 윤리는 절반가량이 단순한 역사적 전개 과정으로 기술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사는 “이는 윤리학이 추구하는 도덕의 본질과 근거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불교를 통해 알아보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불교의 핵심사상과 내용, 사상과와 종파들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이 기술되도록 구성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불교 윤리를 현행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깊이 있게 다루기 위해서는 오랜 불교 역사에서 초기불교의 깨달음 외에 어떤 내용을 더 중요하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선택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교사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유교와 불교의 문제 출제 비율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그는 “수능에서 유교 윤리의 경우 매년 전체 문항의 20%(4~5문항) 이상이 출제되는 반면 불교 윤리는 5%(1문항)만을 차지하는 수준”이라며 “이는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을 공부하는 학생과 교사들에게 상대적으로 유교 윤리를 집중적이고 깊이 있게 공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불교 윤리적 지혜가 그리스도교적 직업윤리와 함께 지혜롭게 서술되는 것도 바람직해보인다”고도 했다.

박병기 교수 “ 불교의 도덕교육학적 재구성 필요”

한편 박병기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는 “세월호 참사의 충격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이 도덕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인성교육의 절대적인 필요성 부각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절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불교는 우리가 직면한 현상 자체를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지혜와 더 나아가 절망 자체에 대한 자비의 눈길과 손길을 제공해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불교사상의 폭넓은 윤리교과서 반영을 위한 방법으로 ▲도덕교육학적 관점에서의 불교의 분석·해석·재구성 ▲도덕교육을 비롯한 교육문제 전반에 대한 불교계의 관심 ▲불교의 비중과 위상이 제자리를 찾기 위한 불교계의 정당한 목소리 내기 등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