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성리학은 도쿠가와 막부가 고민하던 역성혁명을 합리화시키는 이론을 정립해 주었고, 동시에 통치이데올로기를 제공해 주었다. 막부는 이러한 질서체제의 확고한 틀을 정립하기 위해 불교를 조직화시켜 체계적인 지배를 실현시켰다. 이 상황하에 최종적으로 정립된 것이 정직과 실용을 근본으로 하는 자본윤리의식이었다. 이렇게 해서 일본의 근대화가 이루어진 반면 이를 자신과 시대변화에 맞도록 변형시켜 내재화시키지 못한 우리의 역사는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해야만 했다.”

‘선종사를 다시 읽는다’를 주제로 7월 19일 동국대 문화관 2층 제3세미나실에서 개최된 2008 하계 법화학 천태학 학술강연회에서 ‘한국 유교가 일본불교에 미친 영향’을 발표한 국민대 김승일 연구교수는 ‘조선성리학이 에도막부의 불교생활정책에 미친 영향’을 발표했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에 성리학이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조선 성리학자 강항에 의해서였다. 퇴계의 학맥을 잇고 있던 강항이 일본에 끌려갔을 때 일본의 많은 사상가들이 그를 찾아가 성리학을 배웠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쇼오코구지(相國寺) 승려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였다. 강항의 영향으로 환속한 후지와라는 후일 도쿠가와 막부의 정치체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후지와라에게 정관정요를 강의 듣기도 했다.

도쿠가와 막부는 독자적인 일본의 중세적 질서를 근세적으로 재편성하기 위해 학문을 권장했고, 그 중에서도 조선에서 들어온 성리학을 관학(官學)으로 수용하여 이를 크게 융성토록 했다. 이 영향으로 성리학은 도쿠가와 막부 초기부터 말기까지 제일의 학문으로서 막부근세의 근간이 될 수 있었다.

성리학이 막부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근간이 된 것은 불교조직이었다는 것이 김승일 교수의 설명이다. 에도막부가 주도했던 불교정책은 제종사원법제였고, 이를 통해 막부는 민중들까지 이어지는 확고한 지배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에도막부 개창기에 불교계는 세속적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게 됐고, 조선성리학의 수용에 따른 중앙집권화 체제와 조직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퇴계의 이기일원론은 일본의 스즈키 쇼산과 같은 선승들에 의해 선종사회논리로 변형됐다. 선종사회논리에 등장하는 형태=마음이라는 공식은 형태를 따르려는 마음이 자연이며 이를 좇는 것이 도이므로 그 이치를 알고자 연마하여 깨달은 자가 성인이라는 논리로 이어졌다.

이처럼 선종사회논리에 바탕을 둔 세속내적인 가치관과 이를 계승한 자본의 논리는 조선성리학에서 배태된 것이었다. 여기에서 형성된 자본론이 일본 근대화의 커다란 동력으로 이어진 반면 조선성리학을 내제화시키지 못한 조선의 경우 일제 식민지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처럼 조선성리학을 자신과 시대변화에 맞도록 변형시켜 조직화, 이론화, 내재화 시킨 힘이 일본의 근대화를 이룩하게 한 근간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