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

상대는 어느 틈인가부터 나에게 애잔한 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가슴 시린 자신의 뒷모습을 포즈로 취해주기도 했다. 그들의 고요한 숨소리와 거의 인간의 체온에 가까운 온기(溫氣)가 그들로부터 느껴지는 순간에는 내 가슴에 후끈한 전율이 스며들었다.

사진작가 준초이가 여기에서 말하는 상대는 다름아닌 ‘백제’이다. 백제의 아름다움을 카메라 렌즈에 담은 ‘준초이 사진전- 百濟의 美’가 7월 17일부터 8월 14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린다. ‘百濟의 美’는 1000년 전 백제시대의 유물 속에 깃든 한국의 정신과 한국인의 영혼을 사진이라는 현대적 매체를 통해 전달하는 전시이다.

2005년 가을 부여박물관은 새롭고 참신한 유물 도록 제작을 사진가 최명준 씨에게 의뢰했다. 준초이는 최 씨가 미국에서 활동할 때 쓴 이름이다.

작가는 10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백제인의 예술과 그들의 영혼을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재의 시간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4~5개월간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유물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고 준비했다. 또한 유물 한점 한점에 담긴 백제인들의 마음과 교감하고 감춰진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1년이라는 길고 고된 시간을 보낸 후 2007년 마침내 두 권의 서적과 전시로서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크게보기

이번 전시에 선보이게 될 작품 중 특히 운무가 피어오르는 산을 배경으로 백제금동대향로가 서쪽 햇살을 받으며 위용있게 서 있는 작품을 비롯하여, 시간이 지나 자연의 풍화작용의 영향으로 예술적 가치가 더해진 반가사유상의 얼굴을 클로즈업 한 작품, 소조 불상머리 등을 통해 백제의 유려한 아름다움이 다시 빛을 발하게 됐다.

작가는 “백제와의 만남이 긴 시간의 축적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는 숙성의 미를 만나는 과정이었다”고 술회했다.

크게보기“백제와 나의 첫만남은 내가 청년의 뜨거움을 품고 있을 때였다. 그 청년은 반짝이는 광택, 곧게 뻗은 선, 그리고 채도 높은 색깔들에만 관심을 쏟고 있었다. 그때 처음 만난 백제.아름답다는 칭송이 대단한 그들이 당시의 내 눈에는 단지 흙덩이, 쇳덩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중략)

긴 시간이 흘러 백제와는 무슨 인연인지 20년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재회(再會)하는 천 년의 유산을 나는 한참을, 몇 날을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상대는 어느 틈인가부터 나에게 애잔한 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가슴 시린 자신의 뒷모습을 포즈로 취해주기도 했다.

그들의 고요한 숨소리와 거의 인간의 체온에 가까운 온기(溫氣)가 그들로부터 느껴지는 순간에는 내 가슴에 후끈한 전율이 스며들었다. 이 아름다움에, 저 아름다움에도 만족하지 못하던 나날들의 기억이 스르르 풀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뜨거워진 내 가슴을 조용히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뇌었다.

여기 과거, 현재, 미래가 몇 번이고 거듭되었을 긴 시간의 축적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는 <숙성된 미(美) >,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내 또 다시 이들을 만나보리라! 그때는 백제와 내가 또 어떤 다른 대화를 할지….” - <작가 노트 중에서 >

‘준초이 사진전- 百濟의 美’는 2007년 인사동 학고재, 부산시립미술관, 2008년 북경 한국문화원 등의 전시회를 통해 호평 받은 바 있으며 2009년 일본의 큐슈박물관, 독일 등지에서 전시 예정이다.

준초이 최명준 작가는크게보기

1978년 중앙대 사진과를 졸업하고 1982년 일본 니혼대학교 예술학부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 패션작가 올몬드 기글리(Ormond Gigly)에게 사사를 받았으며, 미국 폴라로이드사의 사진대회 대상을 수상했다. 1983년 정물 사진작가 제랄드 자네티(Gerald Zanetti)의 스튜디오에서 스태프 사진작가로 근무했으며, 1984년에 맨하탄에 준초이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1990년 한국 그래픽 디자이너 협회에서 수상했고, 2006년 삼성생명 광고로 대한민국 광고대상, 2007년 SK텔레콤 광고로 대한민국 광고페스티벌 작품상을 수상했다. 2003년부터 경원대 디자인문화정보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울시 공공미술위원회 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