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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고려시대 제작설이 제기돼 한국 고대사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석가탑 출토 묵서지편에 대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의 논쟁점은 무구정광다라니경이 고려 때 제작됐느냐, 신라 때 제작됐느냐가 아니라, 두 개의 중수기가 모두 석가탑의 것이냐, 그 중 하나는 다보탑의 것이냐는 데 맞추어졌다.

불교중앙박물관 부설 (재)불교문화재연구소는 6월 20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불국사 석가탑 묵서지편의 기초적 검토-판독과 용어의 분석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석가탑 묵서지편의 연결 복원과 판독을 맡았던 서울대 노명호 교수와 이승재 교수를 비롯해 용인대 박지선 교수, 목포대 최연식 교수, 부경대 주경미 교수, 한국문화유산연구원 박상국 원장 등 관련학자들이 대거 참가해 묵서지편에 대한 학술적 논의를 전개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가한 덕성여대 남동신 교수와 통도사 성보박물관 신용철 학예사는 무구정광중수기가 다보탑의 중수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현재 학계에서는 석가탑에서 나온 묵서지편이 3종의 문서들이 섞인 것으로 그 중 하나는 1024년의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 다른 하나는 1038년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 그리고 '불국사탑중보시명공중승소명기'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1024년 무구정탑중수기와 1038년 서석탑중수형지기가 모두 석가탑의 중수기가 아니라 그 중 1024년 무구정탑중수기는 다보탑의 중수기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지난해 한국역사연구회 5월 웹진을 통해 1024년 무구정탑중수기의 ‘다보탑설’을 최초로 제기한 바 있는 남동신 교수는 “중수기 전체 문서가 다 공개되었을 때 확인한 결과 다보탑의 중수기라는 사실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남 교수는 “만일 1024년 중수기가 석가탑의 중수기라면 문서의 모든 내용은 지금은 남아있지도 않은 석가탑 상륜부를 지칭하는 것이 된다”며 “미술사 전공자들이 무구정광중수기를 정치하게 분석해보면 확실히 드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용철 학예사 또한 “무구정탑중수기에 언급된 앙련대, 화예는 석가탑의 조형과는 거리가 있으며 ‘앙련대, 화예, 통주에 사리를 두었다는 내용은 다보탑의 앙련부분과 8개의 화예, 그 내부의 팔각석(통주)에 사리가 안치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최연식 교수 또한 “서석탑형지기를 작성하며, 참고하기 위해 무구정광탑일괄문서를 필사하여 넣었다”고 주장해 서석탑과 무구정광탑이 다른 탑일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노명호 교수도 “지진으로 인해 석가탑 이상으로 손상을 입은 다보탑의 중수문서를 다시 필서해 넣었을 것”이라고 주장해 ‘다보탑설’에 무게를 두었다.

이같은 ‘다보탑설’에 대해 ‘묵서지편의 석탑 부재 및 사리장엄 관련 용어’를 발표한 부경대 주경미 교수는 강하게 반발했다. 주 교수는 “나로서는 석가탑에 다보탑의 중수기를 넣었다는 사실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며 “중국에서도 일부 탑에 다른 탑의 사리기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다른 탑이 폐탑될 경우이지 다보탑 사리기가 그대로 있는데 석가탑에다 중수기를 넣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주 교수는 이어 “무구정탑중수기가 반드시 석가탑의 중수기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무구정탑중수기에 언급된 조형들은 석가탑의 측면에서 봤을 때도 충분히 논지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오는 8월에 다보탑의 중수 공사가 이루어진다고 하니 그 내용을 확인한 후에 토론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며 단정적인 결론은 피했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그동안 여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아온 무구정광다라니경의 제작연대에 대해서는 진지한 토론이 그다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묵서지편 연결 복원과 판독작업을 한 노명호 교수가 “현종 15년 중수시에도 보협인다라니경만을 새로이 넣었는데 그보다 후대인 정종 4년에 무구정광다라니경을 새로 넣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79행의 무구정광다라니경1권은 현종 15년 무구정광탑을 해체할 때 나온 신라 때 넣은 다라니경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혀 무구정광다라니경의 신라제작설을 재확인했다.

이번 학술대회를 주최한 불교문화재연구소장 범하 스님은 “이번 학회는 묵서지편을 기초적으로 검토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빠른 시일 내에 제2회 학술대회를 개최해 보다 심도깊은 학술적 논의의 장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