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란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다. 그러므로 여래라고 말하느니라.”

이때 ‘말하느니라’고 해야할까, ‘말한다’라고 해야할까.

현재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는 조계종의 금강경 편찬 사업이 번역상의 미묘한 차이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조계종이 종단 표준본으로 만들고 있는 금강경 편찬을 위한 공청회가 불학연구소 주최로 6월 13일 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됐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20여명의 편찬 자문위원들이 참가해 금강경 표준본 번역본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가장 큰 의견 차이를 보인 부분은 번역문을 현대어로 할 것인가, 아니면 고어체로 할 것인가였다.

지난번에 나온 수정안의 경우 현대어로 번역됐던 것들이 이번 수정안에서는 다시 고어체로 바뀌었다. 교정 작업에서 어미들을 다시 옛 어투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현재 금강경의 교정, 교열을 맡고 있는 동국대 이유기 교수는 “높임법으로 번역하고, 문장체로 수정하되, 어미 부분은 고아(古雅)한 어법으로 번역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이 교수는 “이러한 표현은 일상대화에서는 쓰이지 않지만 글에서는 그 생명력을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러한 표현이 지닌 장중미와 호소력 때문”이라며 “‘-하느니라’처럼 청자를 깨우치려는 의도가 강한 고어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다른 토론자들은 지나치게 고어체를 살려 현대적 느낌을 죽였다는 반대의견을 펼쳤다.

동국대 김무봉 교수는 “번역문의 문체가 대체로 일반 구어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장중한 문어체로 되어 있다. 경전의 문자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고 해도 의고적인 표현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며 “시간이 모든 경전들이 다시 옮겨지듯이, 이번 금강경 또한 그 시대의 적확한 언어로 바꾸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 대표는 이 번역작업이 구마라즙 한문본을 소의경전으로 한다는 점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전 대표는 “구마라즙본을 저본으로 삼고 범어본 등을 참조해서 한글화한 결과 어떤 부분은 범본에 의존하고 어떤 부분은 한문에 의존하는 불일치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한문번역 자체가 정밀하지 않아 많은 번역문장에서 논리적 정합성이 결여돼 있다”고 비판했다.

복지TV 전영화 편성제작본부장도 비슷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글본에는 그동안 ‘항하(恒河)’로 표현해온 갠지스강을 인도식 발음 그대로 ‘강가강’이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수보리는 ‘수부띠’ 대신 그대로 수보리를 쓰고, 반야나 바라밀, 사위국, 보살, 열반, 석가모니도 그대로 한문식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전영화 본부장은 또 “번역상 너무 많은 문제점이 있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지만 특히 금강반야바라밀경을 확고한 지혜의 완성에 이르는 길로 옮긴 부분에 있어서 경(經)을 길(道)로 옮긴 것은 매우 코믹하다”고 비판했다.

또 대비구중(大比丘衆) 1250인을 ‘고귀한 비구 1250명’으로 옮긴 부분에 대해 “금강경을 설할 당시 고귀한 표현에 걸맞는 분은 붓다 한 분뿐일 텐데, 강의를 듣는 붓다의 제자들에게 구마라집 한역본에는 있지도 않은 ‘고귀한’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스님 스스로 자기를 높여 부르는 낯뜨거운 일이 된다”고 지적했다.

동국역경원 이미령 역경위원 또한 미묘한 번역상의 문제에 대해 자세히 지적했다. 이 위원은 “색성향미촉법의 번역에서 법을 ‘마음의 대상’이라고 번역했는데, 이럴 경우 형색의 대상, 소리의 대상 식으로 오해될 소지가 많으니 ‘마음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대상’ 혹은 ‘법’이라는 말로 쓰는 것이 낫다”고 지적했다. 또한 ‘주(住)’를 ‘집착’이라고 번역한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나친 한글화에 대한 우려의 의견도 제시됐다. 원광대 김영두 교수는 “4상의 경우 현재 윤문한 용어로 할 경우 자아와 개아의 개념과 영혼의 개념이 상통성이 있고, 또한 오랫동안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으로 써왔기 때문에 이러한 특수한 용어나 개념은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고 지적했다.

금강경 영문판을 발간하기도 했던 경북대 심리학과 조현춘 교수는 “단지 몇 번을 만나 여러 치명적인 오류를 다 잡을 수가 없으니 현재의 안을 가지고 수정 및 번역대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관련 학자 및 관계자들이 금강경 번역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쏟아냈다. 조계종 불학연구소는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들을 토대로 편집회의를 갖고, 보완된 수정본을 발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