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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동화사. 이곳은 예로부터 많은 선지식들이 정진하며 깨달음의 경지를 이뤄냈던 수행성지이다. 금당선원을 비롯하여, 내원암, 양진암, 부도암 등 산내 암자에도 선방이 개설되어 100여명이 넘는 선승들이 화두를 타파해 본래면목을 찾고 있는 한국 간화선의 중심도량이다.

무자년 하안거 결제일을 맞아 만공-혜월-운봉-향곡의 이어지는 선맥을 이은 동화사 조실 진제 스님을 만나 결제에 임하는 납자(衲子·참선 수행승)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스님이 일생을 통해 경영해온 수행과 정진의 족적에 대한 말씀, 오늘날 한국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등에 대한 고견을 들었다.

“안거에 임하는 납자들은 모름지기 화두를 타파하겠다는 사생결단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나 역시 이곳에서 납자들과 함께 정진하며 언제든지 경계를 본 납자들을 만나 점검과 지도를 하게 됩니다. 선방이 어떤 곳입니까. 부처님의 심인법을 찾아 선양하는 곳이 아닙니까. 결제에 임하는 대중들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화두를 타파하여 명안종사가 되리라는 각오로 오늘 결제에 들어야 하고, 또 모두 그런 각오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제 스님은 결제에 드는 납자의 자세를 강조하는 것으로부터 인터뷰를 시작했다. 부처님께서 우안거를 행하신 이래 우리나라에서 하안거의 형태로 면면히 계승돼온 안거의 중요성을 찰나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대종사의 간절한 당부였다. 스님의 다음 말씀 역시 참선공부를 통해 참된 자신을 찾으라는 것으로 이어졌다.

멋진 삶을 사는 길은 밝은 지혜의 눈을 갖추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참나'를 찾는 데 있습니다. 참나를 찾으면 모든 허상이 사라져 너와 내가 따로 없고 시비와 허세, 사리사욕이 사라집니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다 참나 가운데 있습니다. 법안(진리의 눈)을 갖추어 참나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안거(夏安居)가 시작된 5월 19일 대구 동화사 조실 진제 스님(74·조계종 원로)은 산사를 찾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하안거는 선 수행자들이 4월 보름부터 석달간 한 곳에 모여 참선수행을 하는 부처님 당시부터 내려온 불가의 제도이다. 이번 하안거에도 조계종 산하 전국선원 100여 곳에서 2200여명의 납자들이 더 큰 자유(깨달음)를 얻기 위해 스스로를 산문에 가뒀다.

동화사의 경우 금당선원에 든 28명을 비롯해 산내암자인 양진암·내원암·부도암 등에서 모두 120여명의 스님이 안거에 참여했고, 이날 오전 경내 통일기원대전에서 열린 결제(結制·안거의 시작)법회에는 500여명의 스님과 신도가 참석했다.

이곳 금당선원은 천하의 명당인 데다 예로부터 선지식이 주석하며 지도해온 터라 공부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입니다.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석우 스님을 비롯해 효봉·향곡·전강 선사 등 선문의 눈 밝은 개안종사들이 여기서 후학을 지도하셨거든요.

14년 전부터 동화사 조실을 맡아 후학을 제접해 온 진제 스님은 진리의 눈, 바른 안목을 갖추기 위해서는 선지식의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광대무변한 진리의 세계는 선각자가 아니면 인도할 수 없으니 바른 스승 없이 혼자서 깨닫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라 사도(邪道)라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동화사는 물론 부산 해운정사 조실까지 맡아 거처인 염화실의 문을 항상 열어놓고 있다. 누구든 의문이 나거나 나름의 견처(見處·깨달음)가 생겼을 때는 찾아와 점검을 받도록 하는 배려다. 실제로 진제 스님은 특히 초발심자의 제접(수행자의 지도 및 점검을 이름)에 탁월한 혜안을 가진 어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선 수행자에게 참선의 정로(正路)를 열어주는 한국선문의 어른 중의 어른이라는 것이 동화사 주지 허운 스님의 설명이기도 하다.

진제 스님은 제방의 선객들을 제접하며 겪고 있는 애환과 보람의 일단을 살짝 드러내 보인다.

경향각지에서 많은 선객들이 찾아와 점검을 받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깨달음을 인가해주지 않는다고 행패를 부리는 이도 있고, 별별 사람들이 많지요. 그러나 참으로 깨달음에 이른 이는 많지 않습니다. 진리의 경계를 보았지만 아직 죽이고 살리고(殺活自在) 잡고 펴는(把住放行)의 수완에는 미치지 못한 이가 한두 명 있습니다. 아직은 큰 산을 한 자락 더 넘어야 됩니다.

개안의 경계를 이뤄 스승으로부터 인가받은 지 40여년. 깨닫고 나니 세상이 어떻더냐는 질문에 진제 스님은 깨닫고 보니 처처(處處)가 불국토요 화장(華藏)세계요 반야(般若·지혜)더라고 답했다.

일각에서 회자되는 '남진제 북송담'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형상과 말에 떨어진 사람들이 하는 소리라며 내 살림살이는 성철·향곡 스님만 알 뿐 누가 알겠느냐고 되물으며, 거침없는 기개를 드러내기도 했다.

진제 스님은 번뇌와 망상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일체분별과 시비(是非)·장단(長短)을 다 놓아버리고 뼛골에 사무치도록 화두를 들라고 거듭 강조했다. 강물이 쉼 없이 흐르듯 자나깨나 가나오나 일여(一如)하게 화두가 흐르면 홀연히 어떤 찰나에 화두가 박살나고 뚜렷한 지혜가 드러난다는 설명이다. 스님은 일념삼매에 들면 화두는 타파되는 것이며, 숙면일여 몽중일여와 같은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일념이 가장 근본이고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지혜를 들려달라는 요청에 대해 진제 스님은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모두 용심(用心·마음쓰기)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선 전에 찾아왔을 때에도 ‘만약 큰 자리에 오르면 취사심(取捨心)을 버리고 평등하게 대하며 포용하면 모든 사람이 따를 것’이라고 말해 준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미운 사람이든 고운 사람이든 모두 끌어안으려는 마음이 필요하고, 마음을 그렇게 쓰면 덕이 쌓이고 쌓여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제 스님은 최근 미얀마와 중국에 닥친 자연재해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데 대해 만유의 형형색색이 둘이 아니요 유정·무정이 한 몸이니 대자대비심으로 온 인류를 감싸고 동고동락하는 게 불교의 원리라며 성심껏 온정의 손길을 보내 아픔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논란을 빚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해선 배움에 열중해야 할 학생들을 거리로 뛰쳐나가게 만든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라며 어른들이 모범을 보이지 못한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정부는 국민들과의 의사소통이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외교적으로 좋은 절충안을 이끌어 내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진제 대선사 약력

1934년 경남 남해에서 출생 /1954년 해인사 출가, 석우 선사 은사로 사미계 /1954∼5년 해인사 강원 입방 치문 사집 수료 /1956∼7년 동화사 강원 입방 사교 대교 수료 및 졸업 /1957년 통도사에서 구족계 수지. 이후 제방선원에서 수선안거 /1967년 향곡 선사로부터 전법 인가 /1971년 해운정사 창건 /1979년 해운정사 금모선원 조실 /1991년 선학원 이사장, 중앙선원 조실 역임 /1994년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현) /1996년 대한불교 조계종 기본선원 조실(현) /1998년 백양사 1차 무차선대법회 초청법주 /2000년 백양사 2차 무차선대법회 초청법주 /2002년 해운정사 국제무차선대법회 법주 /2003년 대한불교 조계종 원로의원(현) /2004년 대한불교 조계종 대종사(현)

진제스님은 강원 졸업 이후 각화사 동암, 선산 도리사, 해인사, 선암사, 장안사, 동화사, 오대산 상원사, 묘관음사 등 제방선원에서 50년 안거를 성만했고, 법어집 ‘돌사람 크게 웃네’ ‘선 백문백답’ ‘고담녹월’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