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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을 막 지나보내고 불교계의 부산함이 잦아드는 5월의 중순, 그러나 서울 성북동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전등선림 전등사는 하안거 결제대중이 불편없이 정진에 들수 있도록 채비가 한창이다.

8년 전 중창불사를 새롭게 해 아직도 새로 지은 절의 느낌이 남아있지만 이곳은 근대 호남불교를 대표하는 선지식 해안 큰스님의 선맥(禪脈)이 이어지는 도량이다. 30년 넘게 이곳에서 참선정진과 전법교화로 스승의 뜻을 잇고 있는 동명(東明) 스님은 오늘도 재가불자들의 선 지도를 위해 불철주야 헌신 중이다.

전등선림(傳燈禪林), 역대조사로부터 이어지는 선의 맥이 등불처럼 이어져 내려오는 곳. 전등사는 전등사라는 명칭보다 어쩌면 전등선림이라는 이름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해안-동명으로 이어지는 생생한 선맥이 도도히 흐르고 있는 선 도량이기 때문이다.

동명 스님은 14살 어린 나이에 동진 출가해 은사 해안 스님에게 받은 은산철벽(銀山鐵壁) 화두를 받고 지금껏 참구하고 있는 선승이다. 그동안 수차례 개안의 경계를 경험한 드러나지 않은 선지식이라는 것이 스님을 아는 이들의 전언이다. 미소와 타고난 겸손, 스스로에게 무섭도록 엄격하지만 밖으로는 한 없이 자비한 모습은 스승 해안 스님을 그대로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명 스님이 저자거리에 오랫동안 살고 있으면서도 전혀 속진의 느낌이 나지 않는 것은 따라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느 산중의 선방에서도 스님만큼 철저하게 수행의 원칙을 고수하는 분을 만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좌부동이 조금이라도 비뚤어지게 놓여 있거나 벗어놓은 신발이 흐트러지면 그 당사자는 아예 선방에 들어올 자격이 사라진다. 무섭도록 철저한 원칙이 있기에 호기심에 선을 접하려는 이들은 이곳으로 발길을 않는 게 차라리 좋을 정도다.

동명 스님은 최근의 일그러진 선 수행 풍토에 대해 단호하게 그 원인을 설파한다. 수행에 있어 견성(見性)이라는 목표가 가장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수행과정과 개개인의 인격인데, 제대로 수행 과정도 밟지 않고 수행 쇼핑만 하다 아상(我相)만 높아져 병통으로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전등사 전등선림의 가장 큰 강점은 점검의 과정이 살아있다는 점이다. 이미 경계에 오른 동명 스님이 당신의 정진경험과 혜안을 바탕으로 우바이납자들을 제접하고 점검하고 있으니, 공부의 진척이 여타 선방의 그것과 다를 것은 정해진 이치다. 동명 스님은 “수행에 가장 요긴한 것이 규칙적인 점검이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해 줄 눈 밝은 스승을 모시고 있는 선방이 드물다”고 말한다.

새로 지은 전등사 중심도량의 옆으로 난 문을 통해 몇 걸음 나가면 고졸한 자태를 한 돌계단과 꽃나무군(群)을 거쳐 자그마한 전통 한옥 건물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전등선림(傳燈禪林)이다. 선림이라는 이름에서 보듯 참선을 하는 참선방이다. 이른 시일 내에 도량을 늘려 사부중이 함께 수행하는 도량으로 확대할 계획이지만 아직까지는 우바이(여성불자)들 중심으로 정진대중을 수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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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전등선림은 또 정통 간화선 전통에 입각한 선 수행법, 양명한 수행 공간, 그리고 만나기 어려운 참다운 선지식 등 여법한 선방에서 반드시 갖춰야할 조건들을 고루 갖추고 있는 도량이다. 당연히 치열한 정진의 가풍이 살아있을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알토란처럼 짬진 재가선방으로 그 명성을 높여가고 있다.

전등선림의 수행 일정도 재가자들에겐 용맹정진에 가깝다. 동안거, 하안거는 기본이고, 안거가 끝난 산철에도 선방의 문을 열어 개인별로 정진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일대사 인연을 해결하기 위한 전등선림 우바이 납자들의 열기는 스님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전 8시부터 시작되는 하루 일과는 저녁 9시까지 이어진다. 아예 상주하며 한철을 나는 우바이 납자들의 정진일정은 새벽 3시 30분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 15시간이다. 경책을 위해 죽비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을 만큼 수행에 대한 열정들이 대단하다고 동명스님은 칭찬한다. 동명 스님은 “대개 가정주부들이어서 스님이나 거사들에 비해 훨씬 어려운 여건 속에서 수행하고 있지만 마음가짐만은 단연 으뜸”이라고 소개한다.

전등선림의 가장 큰 강점은 매달 15일 주지 동명 스님의 독대아래 실시되는 입실지도다. 이 점검과정은 납자들에게 불퇴전의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전등선림에 방부를 들이려면, 화두에 대한 신념과 분심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화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부족하면 3일에서 7일까지 참회 기도를 해야 하고, 비로소 주지 스님의 점검을 거쳐 입실 자격을 받은 후 화두를 받는다. 02)762-0643

<인터뷰>도심에서 재가납자 제접 40년 동명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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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수레는 채찍 가해도 구르지 못하는 법

그러니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수행하세요

동명 스님은 서울 한복판인 성북동 전등사에 살고 있다. 불사를 마쳐 훌륭하게 사격을 갖췄지만 전등사는 본디 작은 절이었다. 그러나 절의 크기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이 도량은 근대 호남의 선지식 해안 큰스님의 법맥이 도도히 흐르고 있는 대찰인 것을.

스님은 이 곳에서 대중들-주로 재가불자-과 함께 부처님의 혜등을 밝히느라 3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눈코 뜰 새 없이 보내오고 있다. 참선 정진, 참선자 제접, 기도, 경전(금강경) 강의, 종무행정, 제사 등 모든 일이 스님의 몫이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여

동쪽 벽이 서쪽 벽을 침이로다.

불법은 본래 뜻이 없으니

물이 푸르면 산도 절로 밝도다.

祖師西來意 東壁打西壁 佛法本無意 水碧山自明

이 게송은 스승 해안 큰스님으로부터 받은 전법게다. 스승의 그림자조차 소홀히 여기지 않은 덕에 스님과 그의 주변은 언제나 밝다. 자비로운 미소와 타고난 겸손, 스스로에게 무섭도록 엄격한 것이나 후학 또는 재가불자들을 지도하는 열정 등은 스승을 그대로 닮았다는 평을 듣는다.

“우리 노스님은 종교인이라 하면 번잡함을 벗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설사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해도, 가슴으로 일반대중을 대해야 감화를 주는 것이라고 강조하셨지요. 수행의 과정도 중요하겠지만,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수행이 어느 정도 되었으면 마땅히 일반대중들의 곁으로 와서 회향해야지요. 산중에서 사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중생들에게 진리를 전하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겠습니까.”

스님은 해안 스님에게 은산철벽(銀山鐵壁)이라는 화두를 받았다. 그리고는 이 화두를 타파하기 위해 오늘까지 정진들 거듭하고 있다. 몇 차례 경계를 경험했고, 또 스승의 칭찬을 받기도 했지만 정진의 고삐는 날이 갈수록 팽팽하게 조여질 뿐이다. 어느덧 이 은산철벽은 동명 스님이 재가불자들에게 던져주는 화두가 되었다.

스님은 정진하는 불자들을 일일이 불러 의문 나는 것에 대해 답해주고 공부의 단계를 세밀하게 점검해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분심을 일으켜 더 정진을 잘할 수 있도록 채찍질을 한다. 한 달 중 일주일간은 의무적으로 정진해야 하는 전등사 우바이 납자들에게 스님은 등대와 같은 존재다.

‘미기추물(迷己追物)을 경계하고 축성여석(築城餘石)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은 동명 스님이 삶의 지침으로 삼고 있는 경구다. 자기를 잃지 않고 살되, 성을 쌓고 남은 돌덩이처럼 세상에 쓸 데 없는 사람이 되어 하심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마치자마자 다시 하안거 채비에 바쁜 스님은 올 하안거에는 더 많은 불자들이 이곳 전등선림 하안거 결제정진에 동참했으면 좋겠다며 환히 웃는다. 현재 20여 명의 재가불자들이 하안거 결제를 앞두고 있지만 30∼40명 정도는 충분히 수용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동명 스님의 그 환한 미소도 낡은 수레바퀴는 아무리 박차를 가해도 굴러가지 못하는 것처럼 한 살이라도 젊었을 적에 공부에 나서야 한다는 중생을 향한 애틋한 연민을 아주 다 가리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