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
urubella@naver.com 2008-05-11 (일) 00:00남과 북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늘 긴장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최전선 JSA(공동경비구역)경비대대. 이곳 대대 영내에 위치한 통일기원 호국도량 영수사(永守寺)에도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밝게 빛났다.
올 부처님오신날 하루 전날인 5월 11일 오전. 영수사는 매우 부산한, 특별한 아침을 맞았다. 오전 10시 반부터 봉행될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 준비를 위해 이곳을 관리하는 군종법사 진휴 스님과 군종병들의 손과 발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법당 청소도 하고, 연등도 걸고, 관욕을 모실 탄생불도 모시고, 오늘의 법요식을 위해 서울과 지방에서 찾아오는 영수사 창건주역과 도움을 주는 후원자들을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군종병과 법사스님의 이마엔 스치는 바람결에 찬 기운이 아주 가시지 않았는데도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JSA경비대대 대대장 정해일 중령 부부도 부대 장병들과 함께 미리 영수사를 둘러보며 준비상황을 체크하는 등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불자는 아니지만 절에 살며 고시공부를 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세심히 준비과정을 살피는 그의 눈길에 따뜻함이 배어 있었다.
9시 30분경 이재성 군불총 고문 등 10여명의 영수사 창건주역들이 절에 도착하자 영수사의 2평 남짓한 공양간은 더더욱 부산해졌다. 음식솜씨 일품이라고 소문난 이 고문이 직접 만든 카레가 끓는 동안 법당 안은 곧 인도풍 카레향으로 가득 찼다.
둘씩 셋씩, 또는 10여 명씩 단체로 장병들이 법당으로 모여들었다. 눈짐작으로 보아도 100명쯤은 돼 보인다. 전국에서 선발된 정예의 병사들이라서 그런지 키도 훤칠하고 하나같이 미남들이다.
10시 30분. 사회를 맡은 군종병이 법회의 시작을 알렸다. 우렁찬 목청으로 삼귀의와 찬불가, 반야심경이 끝나고, 차전문가 정정자 원장이 마련한 차를 불전에 올리는 헌다의식에 이어 헌화와 욕불의식이 차례로 진행됐다. 내빈들에 이어 대대장, 부대대장, 간부와 장병들이 모두 정성껏 꽃을 불전에 올린 후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의식을 진행했다. 헌화 및 욕불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영수사 도량에는 석가모니불 정근이 잔잔히 울려 퍼졌다.
이례적으로 정해일 JSA대대장이 이날 법요식의 봉축사를 맡았다. “호국불교의 정신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배우고 실천하여 우리 JSA경비대대 장병들이 호국과 통일의 초석이 되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 드린다”는 정 대대장의 봉축사에 참석한 대중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이재성 회장과 함께 영수사 창건의 주역이기도 한 김효율 교수가 영수사에 얽힌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영수사가 우리나라 최초로 평화통일의 결단을 내린 신라 경순왕의 민족사랑 정신이 얽힌 유서 깊은 사찰이며, 이곳 영수사는 그 평화통일의 정신을 잇는 도량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고승열전 작가 윤청광 선생은 축사를 통해 부처님의 정신과 가르침의 요체는 이타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촛불이 자신의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고, 향이 자신의 몸을 태워 세상을 향기롭게 하는 것처럼 불자는 자신보다 이웃을 위한 삶을 살아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실천하자고 당부했다.
법사 진휴 스님은 이날 설법을 통해 “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수행을 하고 주어진 역할을 다한다면 반드시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며 “부처님오신날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날이지만,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가 새로이 부처님이 된다면 그 날이 바로 부처님오신날이니, 앞으로 더 많은 부처님오신날이 생겨나도록 우리 모두 정진과 수행에 앞장서고, 지혜와 자비가 갖춰진 삶을 살아가자”고 말했다.
이날의 법요식은 불자가수 박희진씨의 찬불가요 공연과 호국의 주역, 통일의 초석이 되겠다는 JSA장병들의 발원문을 끝으로 여법히 회향됐다.
법요식에 이어 장병들은 정성껏 준비한 떡과 과일, 빵 등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장엄한 분위기의 법요식 동안에는 듬직한 표정으롤 일관했던 장병불자들의 얼굴엔 법요식이 공양시간이 시작되자 법당 안팎에 걸린 연등처럼 풋풋한 생기가 넘쳐흘렀다. 영수사 도량을 오고가는 장병들 하나하나가 그대로 세상을 밝히는 연등이었다. 그런 그들이 각각의 근무지로 돌아가면서 JSA경비대대 영내는 차례로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가득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