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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김아타 사진작가의 이 말을 불교식으로 풀이하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혹은 제법무아(諸法無我)가 될 수도 있겠다.

5월 25일까지 로댕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아타의 개인전 ‘On-Air’. 장시간 노출방식으로 촬영된 그의 사진을 보는 순간 아!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어쩌면 한 장의 사진 속에 불교철학을 저토록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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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사물이 놓여있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한다. 그래서 바로 한 순간만 지나면 잃어버릴 지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카메라를 조정해 장시간 노출되는 방식으로 찍으면 움직이는 피사체는 사라지고 움직이지 않는 대상만 고스란히 남는다.

이 같은 방식으로 촬영된 김 작가의 작품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의 풍경 사진에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또한 사람을 대상으로 삼은 사진에서는 사람의 형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해온 사진의 개념, 피사체로 찍히는 나의 모습,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람과 자연, 사물들. 이들은 사라지고, 그의 사진 속에는 불투명한 포자들이 흩날리고 있다.

오랜 시간동안 렌즈를 노출시킴으로써 움직이는 것들은 모두 희미한 먼지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에 말없이 서있는 건물이나 가로등, 전기줄 만이 고스란히 남게 된다. 사람들의 모습 또한 여러 장면이 중첩되면서 그의 본래모습은 사라지고 그의 행위가 희미한 그림자처럼 사진에 남는다.

2시간 동안의 한일 축구경기장면, 모터쇼 전시장, 비무장지대(DMZ), 1시간 동안의 커플의 섹스, 마오쩌뚱을 형상화한 얼음조각이 녹아가는 과정, 베이징이나 뉴욕의 도심풍경 등을 이미지 중첩방식과 카메라 장노출 방식을 병행하면서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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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제작된 한국과 일본의 축구경기 장면에는 관중과 경기장 트랙, 그리고 텅빈 골대만 있을 뿐 경기장 안에는 선수가 한 명도 없다. 2시간 내내 잠시도 쉬지 않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공을 향해 질주한 선수들의 움직임은 장시간 노출된 렌즈를 통해 공기 중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섹스앤시티의 주인공들이 활보하는 뉴욕의 거리, 인도의 그 덜큰텁털한 냄새가 나는 뒷골목에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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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을 통해 김아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사진은 모든 이미지를 재현하고 기억하고 기록하려고 한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사라진다.

이 대조적인 명제 속에서 나는 존재의 실체를 탐구해 가고자 한다.”

작가는 굳이 자신의 사진을 불교라는 틀 속에 가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사진 속에는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와 공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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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이 아타(我他)인 이유도 나와 타인, 혹은 나와 우주 공간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사진 속에서, 자신의 이름 속에서 한시도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사물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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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가 8시간 동안 찍은 맨하탄의 거리 풍경을 본 한 뉴요커는 눈물을 터트렸다고 한다. 사람도 차도 없는 거리의 풍경은 그곳에서 수십여 년 간 살아온 한 인간에게 무한한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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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자신마저도 제3자로 만든다. 그 타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모습 속에서 타인을 이해한다.

사라지고 생성하는 수많은 대상들 중에 나 또한 하나라는 그 생각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사라지는 것들을 부정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바로 사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진을 통해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만다는 진리를 이야기하는 이 사진들은 지독한 파라독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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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타 작가는

세계적인 무대에서 큰 호응을 얻은 이후 현재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진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1956년 경남 출생으로 창원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독학으로 사진작업을 시작했다. 2003년 상파울로비엔날레 한국대표작가로 참가했으며, 2006년 뉴욕 국제사진센터 (ICP)에서 <온에어 프로젝트> 사진집이 전시와 동시에 발간되었다. 로댕갤러리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은 온에어 프로젝트의 사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