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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두 시승(詩僧)이 80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을 넘어 비슬산 자락에서 역사적 해후를 했다. 지난 5월 3일, 고려 보조국사 일연 스님과 선시의 시조적 완성을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무산 오현 스님이 유가종 본찰 경북 달성군 소재 유가사에서 같은 날 시비(詩碑) 제막을 통해 문학적 만남을 가진 것이다.

이날 비슬산 유가사(주지 계성)에는 1천여 사부대중이 운집, 한국불교가 낳은 두 위대한 시승의 시비 제막을 축하하는 행사를 성대히 봉행했다.

비슬산은 보각국사 일연 스님이 35년간 주석하며 삼국유사 저술의 토대가 된 곳으로, 일연 선사가 삼국유사에 남긴 포산이성(包山二聖)에 관한 시 2편과 현재 신흥사 회주로 한국시단의 거목으로 평가받고 있는 무산 오현 선사의 ‘비슬산 가는 길’을 낳게 한 명산 중의 명산이다.

달성군과 유가사는 이번에 두 시승의 비슬산 주제 시비를 제막함으로써, 자칫 외형적인 형식에 치우치거나 유락시설로만 인식돼온 비슬산에 역사와 문화적인 뿌리를 심어 많은 사람들에게 심신의 위안처로 만들겠다는 계획 아래 그 첫 단추를 꿴 것이다.

이날 시비건립추진위원회 이상번 공동위원장은 “일연 스님과 오현 스님께서 노래한 불후의 명시를 비석으로 세우는 일에 동참해준 모든 분들게 감사드린다”며 “이 시비로 인하여 시민의 안식처인 비슬산이 더욱 밝아지고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살아 있는 명산으로 거듭나길 축원한다”고 말했다.

유가사 주지 계성 스님은 환영사를 통해 “오늘 시비가 세워지는 것도 기쁘지만, 더욱 기쁜 것은 비슬산 산신 정성천왕(靜聖天王)의 이름을 찾아서 기쁘고, 주봉의 명칭이 대견봉이 아니라 천왕봉이라는 것을 알게된 것이 기쁘고, 고려시대에 일연 보각국사가 주석하신 보당암이 바로 비슬산 정상에 위치한 대견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또 “이 산을 의지하고 사는 대구와 달성시민들이 행락이나 즐기는 산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민족의 영산이라는 것을 이번 시비 제막으로 알게 된 것이 더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이번에 제막된 일연 스님의 선시 ‘포산이성’은 문경현 박사가 새롭게 해석해 그 의의를 더했고, 근원 김양동 교수가 비문을 썼다.

일연 시 ‘포산이성’

산나물 풀뿌리로 배를 채우고

나뭇잎 옷으로 몸을 가리우니

누에 치고 베짠 것 아니네.

찬 솔 나무 돌너덜에 소슬바람 불어

해 저문 숲엔 나무꾼도 돌아가고

깊은 밤 달 아래 앉아 선정에 들어

이윽고 부는 바람 따라 반쯤 날았도다

해진 삿자리 가로누워 잠이 들어도

꿈속에서라도 혼은, 속세에 이르지 않았나니

구름이 놀다 간 두 암자 터에

산사슴 마구 뛰놀고 인적은 드물구나.

오현 시 ‘비슬산 가는 길’

비슬산 구비 길을 누가 돌아가는 걸까

나무들 세월 벗고 그름 비껴 섰는 골을

푸드득 하늘 가르며 까투리가 나는 걸까

거문고 줄 아니어도 밟고 가면 韻 들릴까

끊일 듯 이어진 길 이어질 듯 끊인 緣을

싸락눈 매운 향기가 옷자락에 지는 걸까

절은 또 먹물 입고 눈을 감고 앉았을까

萬첩첩 두루 寂寞 비워 둬도 좋을 것을

지금쯤 멧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