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의 섹스는 철학인가, 윤리인가. 섹스란 소재가 철학이나 윤리의 틀 속에서 설명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일까.

일반적으로 불교는 금욕의 종교, 특히 출가자의 금욕을 첫 번째 계율로 삼을 정도로 욕망을 금기시하는 종교로 일컬어진다. 남녀 간의 사랑 내지 부부생활은 불교의 수행과는 병행할 수 없는 성격의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불교인들의 대체적인 견해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이 재가수행자의 길이 아닌 출가수행자의 길을 선택했다는 자체가 인간의 욕망과 불교가 양립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만일 성(性) 담론 속에서 불교가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 금욕일 수밖에 없다면 불교에서 섹스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논외의 대상이란 말인가.

4월 7일 청진동의 한 찻집에서 열린 월요포럼은 ‘불교의 성(性), 철학인가, 윤리인가’라는 상당히 도발적인 주제를 다뤄 조계사 주변 불교 논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날 토론은 “불교의 성은 윤리가 아닌 철학”이라는 쪽으로 견해를 모았다.

윤리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바람직한 도리로 ‘반드시 해야 한다’는 당위적 의미가 포함돼 있다면, 철학은 그 현상을 설명하는 것일 뿐이라는 측면에서 강제적 의미가 없다는 차이점에 주목한 것이다. 따라서 윤리적인 측면의 섹스는 의무, 규제, 강제성 내지 법칙을 요구하는 반면 철학으로서의 섹스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해방, 초월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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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발표를 맡은 조준호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초기불교 전공자로서, 주로 부처님이 직접 설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불교의 성 문제를 설명해 나갔다. 조 교수는 ‘단음(斷淫) 수행’이라는 표현으로 불교의 성을 해석하려 했다.

“경전의 많은 곳에서 성적 행위의 단절인 범행(梵行)의 실천으로 완전히 고(苦)를 멸한다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출가자와 재가자가 구분되는 결정적인 경계로서 성행(性行)을 차단할 수 있는 마음자세와 함께 환경을 가졌느냐 그렇지 않느냐고 구분할 수 있다. 율장의 여러 조항에 의하면 출가 비구는 이성 또는 동성 간의 직접적인 성행위는 물론 자위행위를 포함한 그 어떠한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도 성적 쾌락을 즐기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조 교수에 따르면 부처님은 출가자의 섹스를 철저하게 금지시켰지만, 재가자들에게까지 철저한 금욕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가 또한 기본적으로 출가와 같이 음욕을 줄여나가는 실천이 갖가지 방편으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불교는 기본적으로 출가지향의 종교라 할 수 있다는 것이 조 교수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왜 부처님은 수행자들의 금욕을 그토록 강조했던 것일까.

“특히 출가 비구에 있어 성행이 금지되는 이유는 수행 교단의 안정적인 유지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무엇보다도 붓다 자증의 중도적 체험 때문이다. 즉 성행과 같은 쾌락적인 낙행과 반대인 자학의 고행도 궁극적인 고멸을 담보할 수 없고 그렇기에 일체 고가 다한 열반 또한 성취할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불교에서의 성은 어떤 것일까. 철학일까, 아니면 윤리일까.

“초기불교에서는 출가자에게 철저한 금욕을 요구하고 있고, 재가자에게는 사음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윤리적인 차원으로서의 금기사항이 아니라, 율장의 대부분에서 음욕의 행함이 열반 해탈로 가는 데 장애의 길이라는 철학적 차원에서 설해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불교에서의 성은 윤리가 아닌 철학”이라는 것이 조 교수의 결론이다.

조 교수는 “성행위는 사람간의 가장 은밀한 인격적 교류이며 가장 원초적이고 자극적이며 끈질긴 욕망이다. 그렇기에 성은 끝없는 유혹으로 간주된다. 수행하는 출가자에게 강조하는 음계의 이러한 점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중생구제라는 이타적인 면에 있어 처자식과 가정이 있게 되면 항상 처자식과 자신의 것에 붙들려 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하면서도,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었는지 ‘욕망의 파라독스’라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욕망의 파라독스. 즉 욕망과 구도심이라는 인간의 양면적인 측면을 서로 상극인 동시에 상생의 역할로서 풀이한 것이다. 조 교수는 “인간 삶에 있어 성행위와 관련된 문제의식을 크게 가지게 될 때 이보다 차원이 한층 다른 발심의 계기가 되고 구도심도 강해질 수 있다”며 “초기경전을 검토해보면 불교의 출가는 본래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였고 이러한 수행을 통해 생명의 근본적인 질을 바꾸는 목표를 달성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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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조 교수의 발표가 끝난 이후 포럼에 참가한 이들은 여러 견해들을 쏟아냈다.

“출가자들에게는 금욕을 요구하고 재가자들에게는 성을 허용한 것은 이중적 잣대가 아닌가. 불교가 보편타당한 가치라면 욕망에 대해서 출가, 재가의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보편타당한 가치로서 성립될 수 없는 대상이 아닌가.”

“섹스라는 행위자체가 문제인가, 갈애가 문제인가.”

“섹스를 하는 행위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섹스를 할 때 나의 욕망을 위해서인지, 상대를 구하기 위해서인지에 따라 보살도인지 음욕인지가 갈린다고 한다면, 남자의 경우 발기를 한다는 자체가 음욕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 아닌가.”

“초기불교의 아라한들 중에서 상당수가 재가자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라한과를 얻는 것과 섹스는 별개의 문제인가.”

“만일, 인간들이 모두 음욕을 극복한다면 이는 인류의 멸종으로 이어지는데, 이를 불교적으로 해석한다면 무엇이 될 수 있는가.”

“닫으면 닫을수록 왕성해지는 것이 욕망의 파라독스가 아닌가. 그렇다면 금욕에 대한 강박관념이 강해질수록 이에 대한 반발 또한 격렬해지는 것이 당연한데,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주제가 주제인 만큼 이날 포럼에 참가한 청중들은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견해를 쏟아냈다.

하지만 이날 포럼에서는 더 이상의 문제제기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이나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았다. 포럼이라는 말 그대로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됐으며, 수많은 문제제기가 이루어졌을 뿐이다.

이날 사회를 본 홍사성 <불교평론> 편집위원은 “불교의 섹스는 수천 년 간 불교인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문제의식이었고, 따라서 이를 끄집어내어 현대인들에게 맞는 재해석의 필요성을 제기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포럼이었다”고 자평했다.

“불교의 섹스는 철학이다.” 이 말을 뒤집어서 말한다면 섹스 또한 인간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는 수단이며, 섹스라는 소재를 통해서 비추어본 불교 역시 통찰의 수단이자 대상임을 의미한다.

성, 철학, 윤리에 대한 보다 폭넓은 논의와 불교적 해석이 요구되는 시대임을 이날의 월요포럼은 다시 한 번 재인식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