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바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도 사바세계를 등지고 살 수 없어요. 사바세계는 현실적 상황입니다. 이 현실적 상황을 어떻게 불교적으로 선향(善向)하는가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세계가 불교적으로 전회(轉廻)하여 불교 그것으로 귀일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내가 주창하는 세제불교(世諦佛敎)이고, 세제불교가 지향하는 길입니다.”

노 교수의 병중설법(病中說法)의 현장은 감동과 안타까움의 기운이 교차했다. 어쩌면 마지막 강연일지도 될지도 모른다는 아쉬움, 훌훌 병마를 털어내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와 감로의 설법을 바른 길을 제시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함, 병마의 고통을 오로지 정신력으로 이겨내고 한 시간 넘는 시간을 시종일관 특유의 해학과 일갈로 끌어나가는 믿기지 않는 내공….

2013년 2월 21일 오후 6시, 강남구 신사동 <불교평론>과 경희대비폭력연구소 주관의 ‘열린논단’ 자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숙연한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이날 초청 발제자는 동국대불교대학에서 평생 교편을 잡았던 목정배 교수(77). 학자의 길과 함께, 드물게 재가불교운동을 함께 펼쳐온 목 교수는 이날 ‘재가불교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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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도 열린논단에 참석, 재가불교운동의 방향에 대해 발제를 하고 있는 목정배 교수.


이날의 자리가 더욱 감동을 준 것은 발제를 할 수 있는 그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신경내분비종양’이라는 희귀병과 싸우고 있는 목정배 교수는 도저히 이날 열린논단에 참석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열린논단 발제일 나흘 전인 2월 17일 오후, 항암치료 전 이뤄진 수액주사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감염이 돼 갑자기 의식불명 상태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사경을 헤매던 목 교수의 돌발적인 상태에 상계 백병원 의료진들은 긴장했다.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 목 교수는 평생을 함께 해온 아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긴박한 시간이 3일간 이어졌다. 가족들이나 의료진 등 누구도 목 교수가 21일 열리는 열린논단 발제에 참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목 교수는 발제 하루 전날 기적처럼 의식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첫 마디가 열린논단에 참석해 발제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단호한 목 교수의 의지를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의료진은 특별외출을 허가했다.

목 교수는 열린논단이 열린 세미나실에 걸려 있는 신흥사 무산 조실의 ‘낙초지담(落草之談)’를 소재를 말문을 연다.

“떨어지는 낙엽의 대화를 듣는가? 언제나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낙초의 마음, 그것이 유심(唯心)입니다. 부처님의 마음이 얼마나 우리에게 유지되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유심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요즘 교단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한심합니다. 오직 조계불교만 주장합니다. 큰 종단이 자기주장만 하면 자기가 파괴되는 줄 모릅니다. 천태종이나 진각종이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데, 하지만 거기가 더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병중이지만 목 교수의 지적은 날카로움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재가자들의 불교를 신행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머리를 깎았든 깎지 않았든 우리 모두가 불교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올바로 믿고 올바로 행해야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이라도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 되고 스스로 헤아려보고 따져봐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확신이 들었다면 곧바로 실천해야 합니다. 진리대로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떤 지식을 갖추고 어떤 모습으로 있던 삶의 중개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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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정배 교수의 병중설법을 경청하고 있는 열린논단 참석자들. 이 자리에는 동국대에서 목정배 교수에게 배웠던 제자들도 함께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학문과 함께 재가불자로서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목 교수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1988년 대한불교법사회를 창립해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는 열정과 원력, 1965년부터 3년간 불교신문 기자를 하며 겪었던 숱한 에피소드, 당시 불교신문 사장이었던 덕산 이한상 거사가 청담 스님의 추천서를 보고 자신을 기자로 채용했던 뒷이야기, <아사달>이라는 포교 팜플릿을 만들며 문서포교를 했던 기억, 진리는 잡스러운 것 속에 있다는 특유의 통찰, 자신이 지은 업의 결과는 쓰나미보다 더 무섭게 덮쳐온다는 등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충고 등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목 교수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회고하며 “현재에 와서 생각하니 ‘잘 했다’고 생각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교수가 법당을 내고, 법사를 기르고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소신을 갖고 그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만족감의 표시였다. 참석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목 교수의 말에 동의의 뜻을 보냈다.

자신이 주창하는 세제불교의 계맥은 용성→동산→성철로 이어지는 맥이라고 정리한 목 교수는 불자들이 세상에 살면서 지켜야 할 계율을 현대적 의미로 표현한다면, 동산스님의 가르침이기도 한 ‘감·인·대(堪忍待)’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견디고 참고 기다리라’는 세 글자에 불교의 계율이나 생활지침이 다 포함되어 있고, 불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용어라는 것이다.

목 교수는 후학들에게 남기고 싶은 교훈이 있다면 들려달라는 말에 대해 불자라면 먼저 자기의 문이 어떤 문인지를 알아야 하고(知門), 자기 문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의 근본 교리는 자기의 길(自道)를 정립하는 것인데, 이 자도를 모르는 사람이 불자들의 대부분이라고 개탄한 목 교수는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정도이고 내가 하는 있는 모습이 정행(正行)이라고 밝혔다. 이런 바탕 아래 내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내가 어디쯤 오고 있을까? 라는 방향계를 늘 갖고 살아야 한다고 지적한 목 교수는 이것이 화두이고, 이 화두를 늘 들고 사는 것이 진정한 참선이라며 자도정심(自道定心)을 강조했다.

목 교수는 이어 눈을 고춧가루를 보는데 그쳐야지 고춧가루를 (눈에) 넣으면 안 되고, 코는 냄새를 맡는 데 그쳐야지 코 안에 빙초산을 들이 부으면 안 되는 것이라며 “안이비설신의 라는 감각기관이 각각 그대로 느끼게 해야 하고, 불교는 바로 이 여섯 기관이 바르게 가도록 가르치는 것인데, 선불교가 그것을 더 어렵게 만들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목 교수는 자신이 주창한 세제불교의 실천원리는 앞으로도 부처님의 교설을 바탕으로 여러 차원에서 검토되고 연구되어야 할 것이라며 “부처님의 진리 속에서 세제에 수용될 수 있는 것을 부지런히 밝혀내어 불교를 현실의 불교시대를, 역사를 창의적으로 정화하는 세제불교로 만들어내어야 한다”고 후학들에게 간곡히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