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일제강점기의 식민지불교는 대한민국 수립까지 이어졌고, 이처럼 권력에 의존한 형태의 비자주적인 종단운영이 통합종단 50년을 맞은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이 안고 있는 병폐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병헌 서울대 전 교수는 12월 4일 오후 7시 만해NGO교육센터에서 열린 참여불교재가연대 12월 리더스포럼 강단에서 “통합종단인 조계종이 출범한지 벌써 반세기가 지났으나 정화운동의 개혁이념은 아직 구현되지 못했고 오히려 종단분규 과정에서 남겨진 불행한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라며 일제강점기 식민지 불교에서부터 이어져온 한국불교의 근현대 역사를 조목조목 살폈다.

1911년 조선총독부 사찰령 반포…불교계 자발적 협조

최 교수는 ‘식민지불교의 성격과 청산과제’를 주제로 강연하며 “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 억압을 받아 쇠퇴됐던 불교가 근대에 들어오면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불교라는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일제는 ‘조선왕조 초기 불교전통의 계승과 발전’을 표방함으로써 선교양종(禪敎兩宗)이라는 종명을 부활시키고 식민통치에 대한 불계의 자발적인 협조를 얻어냈다. 이와 함께 일제의 조선총독부는 본말사를 분할통치하고 인사권과 사찰재산관리권을 장악해 본사 주지에게 특권을 주는 식으로 식민지불교를 만들어갔으며 이에 따라 한국불교는 대처화(帶妻化)되고 교학과 신앙보다는 세속적인 이해로 움직이게 됐다는 것이다.

1941년 전시총동원체제에 따른 통합종단 설립

최 교수는 “그 중 일부 선승들은 불교계 문제의 근원이 분할통치 방식에 있음을 인식하고 불교계의 통일과 총본산 설립 운동을 전개했다”며 “조선총독부와 본사 주지들의 방해와 비협조로 좌절됐던 총본산 설립 움직임은 일제가 전시총동원체제로 전환하며 분할통치 방식에서 통일기관 설립으로 불교정책을 변경함에 따라 본격적으로 추진됐다”고 말했다.

그는 “일제의 이해에 따라 1941년 마침내 통합종단으로서의 ‘조선불교조계종(朝鮮佛敎曹溪宗)’이 발족됐으며 그 과정에서 본사주지 계열의 실세뿐만 아니라 청정비구라는 명분이 있는 선원수좌들이 포함됐다”며 “이렇게 만들어진 총본산은 당시 한국불교계의 여망에 부응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실제적으로는 조선총독부의 필요성에 의해 새로 창립된 신흥 종단이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조계종의 창립은 한국불교의 발전과는 무관하게 친일적이고 어용적인 식민지불교의 완성이었고, 중앙의 통합 관리기구와 지방 본사 사이의 교단행정체제상의 구조적 모순을 갖고 출발해 해방 뒤에도 식민지불교의 잔재로 이어져옴으로써 오늘날 불교 발전의 심각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게 됐다는 것이다.

1962년 군사쿠데타 권력에 편승한 불교정화운동…통합종단 설립

“1945년 해방 이후 불교계는 식민지 불교의 청산과 교단의 개혁이라는 과제를 안고 새로운 출발했지만 미군정의 기독교 편향적 태도로 제동이 걸렸다”고 설명한 최 교수는 “이후 이어진 교단 개혁 과정은 승려들의 이념싸움과 파벌싸움으로 내분을 겪다가 남북의 각기 다른 단독정부 수립 이후 유야무야 소멸됐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해방 후 저질화된 불교를 회복하자는 불교정화운동도 권력에 편승해 일어났다고 진단했다. 불교계의 자주적인 자정노력보다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여덟 차례 유시로 대표되는 공권력의 힘을 빌려 파행적인 해결책을 추구하게 됐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1954년에 시작된 불교정화운동은 1961년 군사쿠데타를 계기로 군정부의 강경한 수습지시와 문교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1962년 비구·대처승 통합종단 대한불교조계종 성립으로 일단락됐다”면서도 “실질적으로 1970년 대처승단이 태고종이라는 별개의 종단을 창립해 조계종과 분리를 선언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은 싸움과 분규로 얼룩져 불교를 개혁한다는 시대적인 과제에는 손도 못 댄 채 외부세력에 의해 마무리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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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성 상실한 통합종단의 역사…식민지불교 청산하고 시대적 과제에 부응해야”

최 교수는 이러한 근현대 흐름의 결과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은 교단의 자주성 상실과 유사정치집단화, 승려자질의 하락과 파벌싸움의 고질화, 간화선 지상주의 풍토 고착과 교학연구 경시 풍조 등의 불행한 후유증을 남기게 됐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자기성찰과 반성, 근본적인 개혁의식을 이룬 후에야 역사의 뿌리에 남아 있는 문제점을 개선하고 한국불교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그 방안으로 ▲일제 식민지불교 잔재의 청산 ▲교단운영차계상의 구조적 모순 개혁 ▲정치권력으로부터의 교단의 자주성 확보와 어용적 체질 극복 ▲세속화의 극복과 청정승가의 구현 ▲파벌싸움 지양과 화합승가의 구성 ▲현대의 교학체계와 수행방법의 계발 등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불교의 힘은 시대적 과제에 제대로 부응할 때 나오는 것이지 스님 수나 사찰 수가 많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며 “과거와 현재를 기반으로 바라본 미래의 전망은 밝지 않지만, 역사적 과정을 진단하고 시대를 인식한 후 현 상황을 해결할 지혜를 가진 스님이 소수라도 나온다면 불교에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