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쯤 전에 당시 고마자와 대학 총장이었던 나라 야스아키 박사를 인터뷰했던 기억이 새롭다. 세계적인 인도불교문화사 학자인 야스아키 박사는 당시 인터뷰에서 한국의 종교상황에 대해 문화사적으로는 잘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언급을 했었다. 그의 이런 언급은 한국에 들어온 지 100년 남짓한 기독교(개신교+천주교) 세력이 1700년을 굳건히 이어온 불교를 제치고 가장 많은 신자를 확보한 것이 잘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의 종교상황에 대해 연구한 바가 없어 그 이유를 잘 알 수는 없지만, 혹시 한국에 불교가 들어와 정착한 후 일반 대중들에게 불교를 가르치지 않은 것은 아닌 지를 물었다. 불교가 아무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불교를 믿는 불자들이 정작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모르고 있으면 언제든지 변방으로 몰릴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불교를 믿는 것인지, 불상을 믿는 것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 한국불교의 현실에 대한 너무나 적확하고 아픈 지적이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불교가 그리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아 아쉽다.

그 야스아키 교수가 다시 한국에 왔다. 한국인도철학회(회장 이지수 교수)가 주관한 인도철학에서 본 나·자아·영혼’ 주제의 제35회 추계학술대회에 참석차 노구를 이끌고 방한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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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석학 나라 야스아키 도쿄대 및 고마자와대 명예교수.

야스아키 교수는 ‘인도철학에서 본 나, 자아, 영혼-무아와 비아, 무아와 자아적 자기, 무아와 영혼, 윤회·장제를 중심으로’라는 기조발표문을 통해 불교교리사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인 무아와 윤회 문제에 대한 고견을 밝혔다. 불교문화사의 세계적 석학인 야스아키 교수의 기조발제에는 국내 불교학자들의 눈길이 쏠린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야스아키 교수는 이 주제에 대해 석존과 고층의 원시불전 사상을 밝히고, 동시에 일본 조동종의 개조인 도겐의 사상을 필요에 따라 대비시키며 자신의 논지를 펼쳤다.

“석존이 비아(非我)를 말하고, 무아(無我), 즉 ‘내가 없다’라고 하지 않은 사실은 석존이 형이상학적 논의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석존의 실제적으로 종교인으로서, 인생이 지니는 고(苦)의 극복을 도모하는 삶의 방법을 말한 것으로, 철학자는 아니었다.”

야스아키 교수는 ‘석존은 스스로가 발견한 진실(sacca, satya)은 실천해야 하는 것이지, 논의해야 할 것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불교와 불교 교리학의 전통은 ‘an-attan’을 비아로만 계속해서 이해할 수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석존의 사상과 윤회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나 현실적인 문제로서 불교는 당시의 민속사상인 윤회를 인정하여 수용하였고, 교리차원에서도 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회설은 업을 짊어지고 윤회 전생하는 윤회의 주체가 없으면 안 되었고, 그것은 영혼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며, 무아설과 상반될 수밖에 없었다고 야스아키 교수는 설명했다. 이후 대승불교를 포함한 인도불교에 있어서의 사상적 영위는 어떤 의미에서는 무아설과 윤회 주체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의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됐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야스아키 교수는 불교에서 자기를 어떻게 파악하는가를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했다. 첫째는 무아인존재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며, 둘째는 무아인 자기를 어떻게 실현하는 것인가? 라고 하는 실천에 대한 것이 그것이다.

야스아키 교수는 도겐이 제시한 독특하고 알기 쉬운 설명을 통해 지금, 여기에 엄밀하게 존재하고 있는 인간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땔감은 [타서] 재가 된다. 그 재가 다시 한 번 땔감이 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재는 이후이며, 땔감은 이전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잘 이해해야 한다. 땔감은 땔감으로서 진실한 것으로서 있으며(=땔감의 법위法位에 머무르며). [나무로서] 그 이전도 있고, [재로서의] 이후도 있다. 이전도 이후도 있지만 이전도 이후도 완전히 다른 존재로서 있다.(前後裁斷) [재가 된 재도] 재로서 진실한 것으로서 있으며, 그 이후도 있고 이전도 있다. [그러나] 땔감이 재가 되어버린 후에 땔감이 되는 것은 없으며, 마찬가지로 사람이 죽으면 살아 돌아오는 것이란 없다. 그러므로 삶이 죽음이 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불법이 정한 표현방법인 것이다.”(<정법안장> 현성공안· 나라奈良 譯)

야스아키 교수는 이어 자기를 증득하는 길, 즉 자기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하는 것인가에 대해 설명했다. 야스아키 교수는 “우리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머리로 생각하고, 자아의식을 가지고 해석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평가를 내려 이것이 나다, 나의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며 “보는 나와 보이는 대상이 분리되어 있을 때, 대상물의 주위에 무수한 관점이 있고, 관점이 다르면 반응도 당연히 변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자아에 의해 만들어진 자기는 진정한 자기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야스아키 교수는 여기서 또 한 번 도겐의 <정법안장> 내용을 번역해 제시했다.

“불도를 배운다고 하는 것은 자기[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이다. 자기를 배운다고 하는 것은 [자아적] 자기를 관통하는 것이다. [자아적] 자기를 관통한다고 하는 것은 대자연[으로부터]의 성과를 심신에 작용하게 하는, 즉 ‘증証’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과 타인의 구별도 없이 진실하게 몸도 마음도 맡기어 사물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깨달음이지만, 특별히 깨달음이라고 하는 흔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흔적도 없는 깨달음을 생활을 통해서 작용을 지속하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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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야스아키 교수의 기조발표 장면. 그의 고마자와 대학 교수시절 제자인 위덕대 이태승 교수가 통역을 맡았다.

야스아키 교수는 “도겐은 명쾌하게 통상적으로 자기라고 하는 것은 자아적 자기인 것이며, 그것을 ‘잊으라’고 말한다”며 “잊는다고 하는 것은 심리적 망각의 의미가 아닌, 거기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가르친다”고 부연한다. 즉 진정한 자기라는 것은 스스로부터 만법, 즉 공이라든지 무상, 연기의 술어로 나타나는 진실, 다시 말해 법의 작용 내에 속해 있으며, 그것을 행동으로 작용시키라는 것이다. “도겐은 좌선 및 그 연장으로서의 승원 생활을 성실히 살아가는 과정 중에 진실한 자기는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강조한 야스아키 교수는 “진실, 법을 통해 사는 것, 즉 ‘수修’가 그대로 진실을 작용시키는(증証) 것, 즉 ‘수증일등(修証一等)’이라는 점에서 불교는 데카르트로 대변되는 서구의 인간관(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과 날카롭게 대비된다”고 도겐의 주장을 인용해 강조했다.

야스아키 교수는 불교교리사의 영원한 과제로 일컬어지는 ‘무아와 영혼’에 대한 이해의 방법에 대해서도 고견을 밝혀 관심을 집중시켰다. 불교의 진리관인 ‘무아’와 고대 인도의 보편신앙이었던 ‘윤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야스아키 교수의 설명은 어떤 것일까. 야스아키 교수는 “깨달음과 윤회가 종교적 차원이 다른 것은 원시불전에 있어서도 이미 알려져 있다”며 “재가자의 공덕-생천(功德生天)의 도식은 ‘세간의 선업’이며, 출가자의 ‘범행-깨달음’의 ‘출세간’의 수행과는 종교적 차원이 다르다”고 지적하며 “그러나 그럼에도 석존은 업·윤회설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작공덕 생천’의 도식은 속세의 재가자들의 사회생활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묵인되었다”는 데 주목했다. 만일 석존이, 그리고 그 당시의 불교 지도자들이 윤회의 주체인 영혼과 무아설의 모순을 의식하여 허락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 시점에서 윤회설을 거부해야 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야스아키 교수는 “석존은 당시의 사회에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윤리와 관행은 원칙적으로 도입하고 있지만, 동시에 아무리해도 수용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명쾌하게 거부하고 있다”며 그 예로 산 제물을 바치는 희생제의를 엄격히 부정한 것을 예로 들었다. 이런 면에서 실존적 깨달음의 실천과 민속은 공존·양립할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 불교도의 생활문화에 있어서 공존하고 있었다고 야스아키 교수는 설명했다.

야스아키 교수는 그러나 시대와 함께 윤회설은 교리화 되어 사상화 되는 과정을 거쳤다며 윤회설의 교리화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깨달으면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하는 관념은 힌두교의 해탈하면 윤회를 벗어난다는 사상을 수용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야스아키 교수는 확실히 이 시점 이후, 불교는 무아와 영혼의 조정을 도모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식(識)이 영혼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불전에서는 반복하여 ‘식(識)’을 중심으로서 윤회 주체를 찾았다는 사례를 들었다. 대중부의 근본식(根本識), 화지부의 궁생온(窮生蘊), 분별유부의 유분식(有分識), 독자부의 보특가라(補特伽羅), 경량부의 일미온(一味蘊), 정량부의 과보식(果報識) 등을, 그 예로 열거한 야스아키 교수는 “무아에 반하지 않는 윤회 주체의 추구는 결국 대승불교가 유식론의 아뢰야식에 도달하기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야스아키 교수는 교학적 차원에서 무아와 윤회의 모순 부분을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리·교학상의 해결이며, 불교도의 생활문화의 시점에서는 해결된 것이 아니라고 그 한계도 아울러 지적했다.

야스아키 교수는 “윤회설, 그리고 영혼은 어디까지나 민속적인 것이어서 무아설과 종교적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모순 없이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에 양자(무아설과 영혼설)는 공존할 수 있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