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효정
bellaide@naver.com 2010-05-18 (화) 18:30일본 최초의 불교사서(佛敎史書) 『원형석서(元亨釋書)(상)』가 처음으로 국역됐다.
부산대 한문학과 강사인 정천구 박사가 번역하고 역주를 단 이 책은 (사)불교학연구지원사업회의 불교소장학자 지원사업의 성과물로 편찬된 다섯 번째 저술이다. 이번에 나온 상권의 원서의 절반 분량으로 하권은 올해 말에 출간될 예정이다.
크게보기원형석서는 일본 중세의 임제종 승려인 코칸 시렌(虎關師鍊, 1278∼1346)이 일본과 중국, 한국의 승려들에 관해 기록한 편년체의 고승전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코쿠 시렌은 1299년 송나라의 승려 일산 일녕(一山一寧)이 일본에 건너와 일본 고승의 행적을 물었으나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 데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일본 고승들을 소개하는 책을 만들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고승전>, <속고승전>, <송고승전> 등을 전거로, 사마천의 <사기>와 구양수의 <당서>를 참조하여 10여 년의 노력 끝에 이 책을 완성하였다. 책을 완성한 해가 일본 연호로 원형(元亨 2년)인 1322년에 지어졌다 하여 <원형석서>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석서(釋書)’는 이 책이 불교사를 다룬 것임을 의미한다.
이 책은 일본불교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기초가 되는 고전으로 꼽힌다. 이 책에는 백제의 의각, 도녕, 도장 등 우리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에서 활동한 한반도 승려들의 행장도 간간이 등장하며, 당송시대 중국의 승려들도 다수 서술돼 있다. 이 책이 쓰여질 때와 비슷한 시기에 서구에서는 단테의 『신곡』이 완성됐고, 고려에서는 『삼국유사』가 편찬됐다.
특히 이 책에는 민간신앙과 불교가 결합된 양상들이 잘 드러나 있어 『삼국유사』와 비교 연구되기도 했다.
정천구 박사는 “『원형석서』는 일본불교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긴요한 자료임에도 아직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며 “원형석서에는 14세기까지 일본의 불교사 및 불교 문화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일본의 토착신앙인 신도와 불교가 결합한 양상들이 잘 드러나 있어 우리나라의 <삼국유사>(1289)와 유사한 면이 매우 많으면서도 뚜렷한 차이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책의 번역자인 정천구 박사는 원형석서와 비슷한 시기에 편찬된 일본의 불교설화집 『샤세키슈(沙石集)』을 2008년에 출간한 바 있다.
이 책의 저자 : 코칸 시렌(虎關師鍊; 1278-1346)
일본 중세의 임제종 승려. 시호는 혼가쿠국사(本覺國師)다. 어려서부터 제가(諸家)의 서적에서 일본의 신서(神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적들을 읽고 배워, 유교와 불교를 아울렀다. 역사서에 남다른 안목이 있었고, 특히 문장에서는 한유(韓愈)를 모범으로 삼아 그 고갱이를 얻었다. 그리하여 일본 한문학사에서 우뚝 선 고잔(五山)의 학승들 가운데 가장 해박하고 지조 있는 선승이면서 빼어난 작품들을 여럿 남겼다. 1299년, 송나라에서 건너 온 일산일녕(一山一寧)을 만나서 자극을 받고 자국의 불교사 내지는 불교문화사를 편찬하려는 뜻을 세웠다. 그 결과 45세 때인 1322년에 <원형석서>를 완성하였다. 또 운서(韻書)인 <취문운략(聚文韻略)> 5권을 저술하였고, 시문집인 <제북집(濟北集)> 20권도 남겼다.
역자 : 정천구(丁天求)
1967년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부산대학교 한문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삼국유사를 연구의 축으로 삼아서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학과 사상을 비교하다가 유교와 불교, 도교, 일본의 신토(神道) 등을 두루 섭렵하였다. 동아시아의 문화 전반을 이해함으로써 한국의 문학과 사상의 특성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고 또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여겨서, 월남의 불교사서인 <선원집영(禪苑集英)>을 번역한 <베트남 선사들의 이야기>, 일본의 중세불교설화집인 <사석집(沙石集)>을 번역한 <모래와 돌>을 내놓았고, 서구에 동양문화를 알리기 위해 영문으로 쓰인 <차의 책>을 번역하였다. 또 동양의 고전들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하고 새롭게 주석할 필요를 느껴 <논어, 그 일상의 정치>를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