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언제나 장롱 속을 깊이 꿈꾸고 있다

배냇저고리, 엄마를 품어 안고 산다

봉숭아 꽃물 번지는 아득한 그리움에

자장자장 젖내음 피어오르는 솜옷

꽃답게 자라나거라! 여장부로 크거라!

아롱아롱 스며나는 어머니의 숨결 아려온다

<구이람 시 ‘배내옷’ 전문>

시인 구이람이 시집을 냈다. 등단한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근년에 접어들어 새로이 시 창작에 전념하고 있는 시인이다. 다소 늦게 대학 강단에 자리를 잡았고, 그로 인해 강의 및 학내외 사회봉사활동에 열중해 왔기에 시작활동에 뜸했지만, 그의 인생에 변화를 가져다 준 어떤 인연으로 본격적인 창작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문학평론가 김재홍 교수는 이를 일러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되어 제2의 인생이 시작되고, 시인으로서도 새로운 열정을 불사르는 형국”이라고 표현한다.

시 ‘배내옷’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구이람의 시는 순수와 소박, 동심과 천진, 그리고 소녀적 동경이 수채화처럼 펼쳐진 느낌을 준다. 그런 그의 시정은 고향같고 추억같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이국 만리, 낯선 땅에서

자장자장 자장가 소리

꿈길 밟고 다가오는 엄마의 숨결

한 땀 한 땀 소망을 꿰매 넣은

올올이 여문 세월, 색동저고리

세상을 고운 눈으로 보게 하고

아이의 엄마 되게 하였지

(어머님, 치마폭은 안온한 세상)

<구이람 시 ‘색동저고리’ 전문>

구이람의 시어선택은 소녀적이다. 소녀가 엄마를 그리워하며 떠올리는 단어들, 꿈, 꽃물, 젖내음, 솜옷, 숨결, 치마폭 등은 곧 구이람의 시어로 채택된다. 그의 소녀적 취향은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도 변함이 없다. 그의 시심은 곧 소녀의 감성을 견지한 동심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동심은 천진심이고 천진심은 곧 불심이다. 어느 것이 부처의 마음이냐는 질문에 천진한 마음, 아이의 마음, 즉 동심을 떠올리는 것은 우리 불가에서는 낯선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구이람의 시는 곧 불교적 정서를 품은 시이기도 하다. 동심 불심을 오롯이 가슴에 묻고 교감하며 사는 그에게 마음은 어떤 것일까.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마음을 비웠다 하네

비웠다는 말 한마디

무슨 의미를 담고 있기에

재벌 회장도, 정치가도, 예술가도

지체 높으신 어르신들 모두

“나 이제 마음을 비웠어”

툭하면 던지기 일쑤라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지하철 노선 실꾸리 같은 마음길을

갑자기 비울 수 있을까

마음이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모두들 없는 마음을 비웠다 하네

<구이람 시 ‘마음 비우기’ 전문>

동심을 간직한 시인에게 세태에 젖은 이들이 마음을 함부로 끌어다 쓰는 것이 못내 걸렸을 것이다.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면서 마음을 비웠다고 하니, 시인의 눈엔 군상들의 모습이 참 딱해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딱해 보이기만 했다면 시의 깊이에는 아쉬움이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원숙한 정신세계를 가진 구이람 시인의 마음공부의 경지는 다르다. 마지막 싯구 ‘모두들 없는 마음을 비웠다 하네’는 마음마저도 연기적 존재임을, 즉 우리의 육신처럼 정신인 마음도 상의상관에 의해 일어나고 스러지는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은 대상임을 통찰한 고고한 경계가 묻어나 있는 것이다.

가장 평화롭고 나직한 시어로, 표현으로 큰 울림을 주는 구이람의 시는 불교를 드러내지 않지만 그 자체로 빼어난 불교 시로 읽힌다.

지난 겨울, 동국대 정각원 법회에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고 막 출간한 시집 『그 여자 몇 가마의 쌀 씻어 밥을 지어 왔을까』(시학 펴냄)을 건네받은 인연이 그의 시를 읽어갈수록 점점 소중하게 다가온다. 참 따뜻한 시, 참 따뜻한 시인을 만나보시기를 미디어붓다 독자들에게 권한다.

*시인 구이람은?

본명은 구명숙. 숙명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빌레펠트대학 문학박사,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고, 지난 1999년 <시문학>으로 등단했고, 2009년 9월 <시와 시학>으로 재등단했다. 현재 숙명여대 인문학부 교수, 박물관장, 문화원장, 한국어문화연구소장, 사단법인 글로컬여성네트워크 회장,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이사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