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기자
urubella@naver.com 2011-10-22 (토) 00:57‘동아일보’를 세운 인촌 김성수(1891~1955·사진)가 일제 통치기구의 주요 외곽단체 간부로서 조선인의 징병·징용 참여를 촉구하는 등 일제 식민통치에 협력하는 ‘친일행위’를 한 사실이 법원에서 인정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조일영)는 인촌의 증손자인 김재호(47) 동아일보 사장 등이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취소 청구소송에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의 친일 행위 판정 조항에 비춰, 인촌에게 적용된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친일 행위임이 인정된다고 10월 20일 판결했다.
재판부는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동원된 것일 뿐, 인촌이 친일 행위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다’는 김 사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인촌은 1938년부터 1944년까지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과 ‘국민총력조선연맹’의 발기인, 이사, 참사 및 평의원 등으로 활동하며 일제의 침략전쟁 승리를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을 강조하는 글들을 <매일신보>에 기고했다”며 “이는 일본제국주의의 강압으로 이름만 올린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그 활동내역도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등은 중일전쟁 이후 침략전쟁이 확대되어 가자 조선의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하기 위해 만든 전시 최대의 관변기구다. 인촌은 이 연맹의 간부를 지내며 <매일신보>에 ‘조선을 사랑하는 총리의 지도에 따라 2600만은 더 한층 지성봉공해야 한다’는 글 등을 기고했다.
인촌이 ‘징병제도실시 감사축하대회’에 참석해 징병·학병을 찬양하고 선전·선동한 사실도 인정됐다.
김 사장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위원회)의 판단 근거가 된 <매일신보> 등의 자료가 과장·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 사장 쪽이 제출한 자료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다만 1941년 인촌이 친일단체 위원으로 선정돼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와 황민화 운동을 적극 주도했다는 부분은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며 “사회·문화 기관이나 단체를 통해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했다는 진상규명위의 결정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위원회는 2009년 인촌이 친일행위에 가담했다고 판단해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지정했으며, 김 사장은 이에 반발해 지난해 1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인촌 김성수의 친일행위가 맞다는 판결이 내려짐에 따라, 김성수의 호인 ‘인촌’을 딴 성북구 안암동 간선도로 ‘인촌로’ 도로명 폐지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