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생명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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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장명확)

점잖은 거동으로 모든 생명 사랑하여 이 내 목숨 버리어도 지성으로 보호하리

(嚴護威儀 蜎飛無損)

수행하는 이가 계율을 엄격히 지키고,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여 청정한 수행자의 모습을 갖추는 것은, 출가자의 자격은 물론 상가를 보전하는 필수조건에 해당한다. 계율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면 승단 일각의 부정적이거나 짜증 어린 반응도 없지 않지만, 지계(持戒)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없다면 수행자의 자격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일찍이 신라의 자장율사는 “내 차라리 하루 동안 계를 지키다 죽을지언정 계를 어기고 백 년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단호한 결기를 보이지 않았던가. 

운허스님이 ‘점잖은 거동으로’라고 옮긴 ‘엄호위의(嚴護威儀)’는 출가자가 계율을 엄격히 지키고 몸가짐과 행동을 단정하게 하여 청정한 수행자의 모습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문자적 의미로는 ‘엄격하게(嚴) 지키고(護), 위엄 있게(威) 행동한다(儀).’는 뜻으로, 승려의 수행과 일상에서 청정함과 절제, 단정함의 중요성을 강조한 표현이다. 한마디로 계율을 지키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수행자의 자세를 나타낸다. 

엄호위의는 또 단순한 외적 규범, 즉 거동만이 아니라, 내면의 청정함과 바른 마음을 유지하는 근본적인 수행 태도를 의미한다.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 즉 단순히 겉모습을 꾸미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수양을 바탕으로 걷고, 서고, 앉고, 눕는 모든 일상 동작[행주좌와, 行住坐臥]에서 절도와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수행자가 대중에게 신뢰를 주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계율과 법도를 엄격히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엄호위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엄호위의를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자신의 위치에 걸맞은 품격과 도덕적 자존감을 지키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법도에 어긋남 없이 행동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 모든 살아있는 무리를 불가에서는 중생이라고 부른다. 중생은 주로 많은 사람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나, 불교에서는 ‘윤회하는 존재’를 가리키는 용어로 널리 쓰인다. 산스크리트어 ‘사트바(sattva)’를 한역한 것으로, 윤회의 사슬에 묶인 모든 존재를 포함해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러니까 지옥·아귀·인간·아수라·천신 등 삼계육도를 오가는 존재를 말한다. 삼장법사로 널리 알려진 현장(玄奘) 스님은 사트바를 ‘유정(有情)’이라고 옮겼는데, 일반적으로는 ‘중생’이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무려나, 불교에서 중생(衆生)의 의미는 각별하기 짝이 없다. 열반을 얻지 못한 모든 윤회하는 존재들, 즉 인간뿐 아니라 동물, 천신 등 삼계육도(三界六道)를 오가는 모든 존재는 물론이고 무정물, 즉 식물까지도 중생의 범주에 포함한다. 그러므로 윤회하는 존재는 생로병사 등 고통의 사이클을 반복하는 모든 존재를 가리킨다. 삼계육도에서 삼계는 욕계·색계·무색계를, 육도는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등 여섯 가지 세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중생은 해탈의 대상, 또는 해탈로 이끌어야 할 존재들이다. 불보살의 원력은 모든 생명을 길고도 쓰라린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궁극적으로 해탈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생을 제도하는 주체가 반드시 부처님이나 보살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아직 불보살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고승 등 선지식(善知識), 나아가 출가 수행자는 모름지기 중생이 선업(善業)을 닦아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산혜연선사는 발원문에서 중생을 ‘연비(蜎飛)’라는 비교적 낯선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연비는 한자 뜻 그대로 풀면 ‘꿈틀거리는 벌레(蜎)와 날아다니는 새(飛)’라는 뜻인데, 그 의미는 단순히 축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물을 아울러 이르는 것이다. 문자적 의미를 조금 더 살펴보면, 연(蜎)은 장구벌레처럼 굽이치며 움직이거나 꿈틀거리는 작은 벌레를, 비(飛)는 하늘을 나는 새나 곤충을 뜻한다. 글자로는 미세한 벌레부터 하늘을 나는 새를 거론했지만, 그 참뜻은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를 통칭한다.

무손(無損)은 손해가 없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그 의미는 실로 심장하다. 보살이 행하는 자비와 헌신의 극치를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손은 불교의 상징이기도 한 자비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벌레처럼 미물인 작은 생명체도 함부로 해치지 않는다는 정신을 담고 있다. 따라서 무손은 모든 생명에는 불성(佛性)이 깃들어 있으므로 크고 작음을 떠나 그 자체로 존귀하다는 불교의 불살생(不殺生) 계율과 연결된다. 이는 곧 생명 평등을 의미하며, 인간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미물까지도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로 인식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수행자가 길을 걸을 때 발밑의 벌레가 밟히지 않도록 주의하거나, 물을 마실 때도 작은 생명이 있는지를 살피는 세심함도 무손의 의미와 상통한다고 할 것이다. 

또한 무손하다는 것은 곧 수행이나 공덕에 결함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완전하고 원만한 상태를 의미하며, 번뇌로 선한 마음이 깎이지 않는 상태를 지칭하기도 한다.

한편, 무손과 관련하여 ‘무손어세(無損於世)’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세상에 해로움이 없는 사람 또는 세상에 손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말인데, 선인(善人)과 악인(惡人)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사용된다. 무손어세는 중국의 고전 잠언집 『유몽영(幽夢影)』에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선과 악의 기준이 외부에 있지 않고, 자신의 행동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누구를 선인(善人)이라고 이르는가? 

세상에 해로움이 없는 자를, 선인(善人)이라고 이른다네. 

누구를 악인(惡人)이라고 이르는가? 

세상에 해로움이 있는 자를, 악인(惡人)이라고이른다네. 

何謂善人 

無損於世者 則謂之善人 

何謂惡人 

有害于世者 則謂之惡人 

                             - 幽夢影 제 094칙 無損於世 

결론적으로 운허스님이 ‘점잖은 거동으로 모든 생명 사랑하여 이 내 목숨 버리어도 지성으로 보호하리’라고 번역한 ‘엄호위의 연비무손’은 수행자가 엄격하고 단정하게 몸과 마음을 지키는 태도를 견지하며, 번뇌나 유혹, 세상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나비가 자유롭게 날 듯이 수행의 본질을 잃지 않음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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