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타폰의 달빛13 

                                깊은 대화6

                                -마지막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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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정윤경 작가)

 정 작가 부부는 또 태국식당으로 갔다. 몬타폰에 왔을 때 첫날은 빌리 씨가 식사비를 지불했고, 이번에는 권 회장이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제의했다. 정 작가 부부는 미안하기도 했지만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른 시간인지 식당은 자리가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빌리 씨와 일행은 몬타폰 산들이 보이는 창가로 가서 앉았다.

 키가 크고 싹싹하게 생긴 여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왔다. 빌리 씨가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종업원에게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여종업원은 두 종류를 권장하면서 설명했다. 정 작가는 전번에 먹었던 족발덮밥을 또 먹을 생각이었다. 쌀은 한국 쌀처럼 찰진 맛은 없었지만 비계가 없는 족발의 살코기가 쫄깃쫄깃했던 것이다. 이윽고 여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서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말했다.

 “밥 종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쌀밥에 족발을 비벼 먹는 ‘카오카무’가 있고요, 새우와 오징어, 닭고기와 돼지고기, 달걀을 넣고 볶은 볶음밥 ‘카오팟’이 있습니다. 또 국수 종류 메뉴가 있는데요, 새우와 오징어를 넣고 매콤하게 볶은 라면인 ‘마마 팟키마오 꿍’이 있고요, 쌀국수를 새우와 닭, 두부를 볶고 땅콩가루가 뿌려진 국수음식 ‘팟다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샐러드는 당면에 새우와 오징어, 양상추를 넣고 매콤 새콤하게 무친 ‘얌운센’이 있는데 권하고 싶습니다.”

 돼지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박 여사는 팟다이를 시켰고, 정 작가는 또 족발덮밥인 카오카무를 주문했다. 빌리 씨와 권 회장은 얌운센이란 샐러드 하나에 팟다이와 마마 팟키마오 꿍을 각각 시켰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는 동안 일행은 탁자에 놓인 태국식 음료수인 코코넛 워터를 마시며 목을 축였다. 권 회장이 아쉬워하면서 먼저 말했다.

 “몬타폰에 온 지 3일밖에 안 됐는데 며칠이 지난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빌리 선생님과 헤어져야 하는군요. 그래서 오늘 저녁 식사비는 제가 내는 겁니다. 정 작가님, 박 여사님도 아쉽지요?”

 “빌리 선생께서 환대해 주셔서 저도 미리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권 회장님은 말할 것도 없고요. 여기 이 자리에는 안 계십니다만 베르너 박사님의 수고도 감사하고요.”

 “베르너는 친구들을 만나러 브레겐츠로 가서 내일 아침 일찍 올 거예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지금 이 자리에 오지 못했어요.”

 빌리 씨도 한마디 했다.

 “한국에서 온 정 작가님 부부를 만난 것은 저에게 행운입니다. 특히 제 음악 이야기를 이해해 주신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기회가 된다면 또 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빌리 씨의 소망을 권 회장이 거들었다.

 “정 작가님 부부께서 몬타폰에 한 번 오셨으니 두 번, 세 번 오실 겁니다. 그러지 않겠습니까?”

 “저희들도 그러기를 희망합니다.”

 “반드시 오실 겁니다. 오시지 않는다면 제가 한국으로 가서 모시고 오겠습니다.”

 권 회장의 말에 빌리 씨가 장난스럽게 눈을 흘기면서 웃었다.

 “소냐, 납치는 하지 마세요. 하하하.”

 “우리들 만나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군요. 빌리 선생님께서 정 작가님에게 묻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얼마든지 물으시지요.”

 “예, 절대고요, 절대적막을 불교에서는 어떻게 말합니까?”

 “적멸이라고 합니다. 모든 게 완벽하게 사라진 텅 빈 경지거든요. 그 경지에 들면 에고 즉 자아는 사라져 버리고 나는 전체로 존재하지요. 수행자들이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고행을 한다고 말씀드렸지요.”

 “적멸, 그걸 깨닫기 위해 수행자들이 고행하는 거군요. 아, 전체로 존재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제 경우도 어떤 곳의 자연 속에만 적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속에도 적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그 순간 자연과 나, 우주와 나는 전체가 되는 거군요.”

 “빌리 선생께서 음악적으로 전체가 된다는 것을 저는 100프로 이해합니다. 소음이 난무하는 도시 속에 살아도 마음은 고요한 청산에 가 있는 듯이 사는 사람이 있고, 고요한 청산 속에 살아도 마음은 소음이 난무하는 도시에 살고 있는 듯한 사람이 있지요. 빌리 선생은 고요한 청산을 품고 사는 작곡가 같군요.”

 “물론 제 마음속에 적멸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때는 병원을 퇴원하고 나서 수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제 인생이 성숙해졌을 때였지요. 그때까지 저는 수년 동안 몬타폰 산을 돌아다녔어요. 일이 없으니 수입도 없었지요. 작곡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요. 수년 동안 저는 작은 녹음기를 들고 다녔어요. 산속의 산짐승 소리, 물소리 심지어는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도 녹음을 하고 다녔어요. 45년쯤 흐른 뒤에 녹음한 소리를 들으니까 사운드도 좋지 않고 그랬지만 그와 똑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었지요. 새들은 높은 곳에서 아주 높은음을 내서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우리는 그보다 훨씬 낮은음으로 서로 의사를 소통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새소리는 낮게 만들고 물소리는 높게 만드니까 저와 소통할 수 있는 소리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나흐트슈발베(쑥독새)는 몇 초에 어마어마한 속도로 소리를 내지요. 그런데 그 소리의 속도를 느리게 하니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걸 작곡에 이용하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제가 가장 존경하고 많은 것을 알게 해 준 배운 메시앙 작곡가 선생님은 새소리를 그대로 오케스트라화 해가지고 연주를 바로 시키더군요.”

 “그렇다면 빌리 선생에게 새소리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습니까?”

 “제 관심은 도대체 이 자연 속의 소리들은 어떤 조화 속에서 기능하고 있는가, 그것이 저의 관심사였습니다.”

 “자연의 소리를 작곡가로서 바로 음악적으로 연결시키기보다는 자연의 질서나 섭리 등에 관심이 더 많으셨군요.”

 “제가 녹음한 새소리로 공부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저도 어쩌면 새일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해야 저 새소리를 흉내 낼 수 있을까? 그 비밀을 알아야만 저와 새가 소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녹음된 새소리를 느리게 하고 난 뒤 클라리넷을 불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새소리를 완벽하게 흉내 낼 수는 없었습니다. 어떤 음이 끝나고 나서는 더 이상 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녹음기 속도를 네 배로 가속시키면 클라리넷이 내지 못한 소리가 나지만 그러나 완벽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저는 자연의 절대고요와 똑같은 것을 제 마음속에서 찾아냈습니다. 이 세상에는 자연과 관계가 없는 음악들도 많습니다. 저는 가장 관심이 가고, 중요성을 띤 음악이라면 자연과 깊은 관계에서 만난 그런 음악이지요. 마음으로 돌린다면 마음에 가장 깊은 부분, 절대고요 속에서 듣는 그 소리가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절대고요, 즉 절대적막을 찾아다니다가 마음속에도 절대적막을 찾으셨군요.”

 “수십 년 전에 자연의 소리들을 콜렉터 하고 다닐 때는 어딘가 바깥을 헤매고 다녔다면 이제는 마음속의 적막이 소중해진 겁니다. 마음의 절대적막 속에도 자연의 소리들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자연에서 들었던 새소리와 마음 안의 절대적막에서 들었던 새소리는 같다고 깨달은 것입니다. 모든 거는 마음 안에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속의 절대적막, 절대고요가 소중할 뿐입니다.”

 “마음속에서 절대적막을 보았다는 빌리 선생 얘기를 들으니 옛 시가 떠오릅니다. 예전 중국의 어떤 비구니스님이 봄을 찾으러 암자를 나갔답니다. 비구니스님은 봄을 찾으러 언덕을 지나 산에 올라 구름을 밟고 다녔지만 봄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 봄을 못 찾고 암자로 돌아왔는데 뜰에 핀 매화꽃에 봄이 와 있더라는 옛 시를 생각나게 하는군요. 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모든 것을 그려낸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마음속에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정 작가의 말에 빌리 씨가 정말로 감동적인 시라고 좋아했다. 그때 저녁 식사가 나와 더 이상 이야기가 계속되지 못했지만 마지막 저녁 식사라는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한 시였다. 또한 정 작가에게 저녁 식사 족발덮밥은 처음 먹었을 때보다 더 맛있었다. 점심으로 먹은 국물이 짠 스파게티 봉골레와 달리 한국인의 입맛에 맞았다. 얌운센 샐러드 속의 새우 맛도 일품이었다.

 식사 후.

 마을 극장으로 이동하여 관람한 몬타폰 전통극은 정 작가 부부로서는 독일어를 모르니 감동이 크게 오지 않았다. 빌리 씨와 자유롭게 만난다는 프라다가 슬그머니 나타났지만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이성 간의 문제는 알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정 작가에게는 몬타폰 전통의상이 스위스와 비슷하여 정겨웠다. 남자들은 둥근 케이크 같은 모자를 쓰고서 반바지에 무릎까지 올라온 긴 양말을 신고 있었으며, 여자들은 격자무늬 블라우스와 나팔꽃처럼 밑으로 동그랗게 펴진 치마를 입은 것이 그랬다. 특히 그들 출연자 중에 정 작가를 놀라게 한 남자도 있었다. 대학선배이자 직장동료였던 정채봉 동화작가와 얼굴이 몹시 닮은 남자 출연배우가 있었던 것이다. 정 작가는 고인이 된 정채봉 작가를 다시 만난 듯하여 감개무량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