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타폰의 달빛11

                                 깊은 대화4

                                 -해발 1600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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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 정윤경 작가)

 빌리 씨가 자신의 승용차에 일행을 태우고 운전했다. 10여 분 아스콘 포장이 된 산길을 내려가자 몬타폰 계곡을 빠져나가는 개울이 하나 나타났다. 개울물은 돌돌돌 소리가 날 만큼 빠르게 흘렀고 옥빛이었다. 승용차를 동네 주차장에 주차해 놓고 다리를 건너자 바로 오솔길이었다. 오솔길 건너편 산자락에는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박 여사는 회색 털 뭉치처럼 생긴 양들이 신기한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권 회장은 통역하기 위해 빌리 씨와 정 작가 반 발쯤 뒤에서 걸었다. 이윽고 빌리 씨가 입을 열었다.

 “몬타폰은 제 음악의 모태입니다. 대표적인 곡이 몬타폰 시리즈입니다. 네 개의 악기를 위한 오케스트라 협주곡이지요. 첫 번째는 트럼펫을 위한 협주곡이었고, 두 번째는 플루트와 오보에를 위한 협주곡이었으며, 세 번째는 클라리넷을 위한 협주곡이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호른을 위한 협주곡이었지요.”

 “몬타폰 시리즈를 작곡하신 것을 보면 빌리 선생이야말로 몬타폰 사람들 중에 몬타폰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으신 분 같습니다. 몬타폰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으신 분 같기도 하고요.”

 “몬타폰 자연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몬타폰이 제 음악의 시작이고 끝이 될 테니까요. 제가 잘츠부르크나 비엔나 같은 도시로 나가서 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트럼펫을 위한 협주곡은 어떤 내용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음악이 살아 있는 장소로 여행을 가서 한동안 머물다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내용입니다. 제목은 <게라움 차이트>인데 한정된 공간과 시간을 뜻하지요. 게라움 차이트라고 지은 사연이 있습니다. 우리 마을에 의사가 살고 있는데, 의사의 부인은 저의 음악을 매우 좋아하는 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의사가 저에게 전화로 부인이 며칠 밖에 살지 못할 것 같다며 자기 집으로 와줄 수 없겠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감이 들었지요. 저도 불치병을 앓으면서 거의 죽었다가 깨어났으니까요.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의사 부인도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 있겠구나 하고 직감한 것입니다. 삶의 여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음의 거기도 아닌 그런 공간과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죽기 직전에 머무는 공간과 시간이라고 해서 <게라움 차이트>라는 타이틀을 다셨군요.”

 “그렇습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 49일을 보낸다고 합니다. 그 공간과 시간을 중음(中陰)이라고 합니다. 죽은 뒤에 새로운 삶을 받기 위해 대기하는 간이역 같은 공간과 시간인 셈이지요. 저는 게라움 차이트를 이같이 이해하는데 맞습니까?”

 “좋은 해석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이 있다고 하지요. 연옥은 천국으로 가기 전에 영혼을 정화하는 공간입니다. 어느 곳으로 이동하기 전의 대기실 같은 공간과 시간이므로 불교의 중음을 연상케 하는군요.” 

 정 작가는 <게라움 차이트> 음악이 어느 산자락에 살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게라움 차이트> 음악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지금도 살고 있습니까?”

 “관광객들이 거기까지는 잘 가지 않기 때문에 살고 있을 겁니다. 저는 그 음악이 살고 있는 곳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포랄베르크 주의 산 가운데 가장 높은 해발 3312미터 피츠보인(Piz Buin)산입니다.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접경에 있는 알프스 산들 중에 하나지요. 저는 한때 산 정상의 그곳을 자주 갔어요. 그곳은 빙하를 건너야 도달할 수 있는 빙벽이었습니다. 얼음이 한여름에도 얼어 있었습니다. 정상에는 눈과 얼음밖에 보이지 않으므로 빙산 같았습니다. 어쨌든 몇 개의 산을 거쳐 가다가 마침내 정상에 올라가서 난생처음으로 거대한 빙벽을 보았는데 지금은 그때의 모습이 아닙니다. 눈과 얼음이 녹고 있기 때문입니다. 걱정입니다. 빙벽은 너무 깨끗했습니다. 그런데 빙벽 중간 부분은 짙은 감청색이었어요. 눈이 오거나 바람이 세차게 불면 보이지 않았지요. 그 부분은 어떤 형체를 띄고 있었는데 아주 클리어하게 보였습니다. 그 순간에 트럼펫 소리가 제가 있는 위로 올라왔고 얼마 후 끝났습니다. 빙벽 중간 부분은 무슨 창문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그 너머는 어마어마한 절벽이었지요. 거기에 음악이 살고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적막 속에서 살고 있는 음악을 저는 만난 것입니다.”

 정 작가는 빌리 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완전하게 공감했다. 처음에는 불교적으로 이해하면서 동의를 구했지만 지금은 빌리 씨 이야기가 머릿속이 아니라 가슴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 같았다.

 “빙벽에 살고 있던 음악의 처음 소리는 우리 인간이 귀로 들을 수 있는, 가장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음이었어요. 예를 들자면 물이 얼면 딱딱한 얼음이 되지만 끓이면 수증기가 되지요. 수증기는 위로 올라가면서 공기처럼 아주 맑아집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하나이지요. 수증기처럼 아주 맑아진 음악이 최상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이란 최상이지 밑이나 중간은 없어요.”

 빌리 씨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 정 작가와 박 여사를 보더니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자신이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것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는 듯했다. 정 작가는 권 회장에게 빌리 씨의 이야기를 흥미롭고 진지하게 듣고 있으니 계속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산길을 더 올라가자 널따란 풀밭이 나타났다. 풀밭 한쪽에서는 목에 주먹만 한 놋쇠 방울 단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빌리 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악기 중에서 클라리넷은 저에게 독특한 악기지요. 클라리넷 악기를 공부할 때는 가족이 다 연관돼 있었으니까요. 네댓 살부터 클라리넷을 불기 시작했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관심이 많았어요. 옛날에는 여기 몬타폰에는 집도 몇 채 없었고 학교도 없었지요. 당연히 음악학교도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동네 어른 집을 찾아가 클라리넷 부는 방법을 배웠는데, 노인 선생님은 엄하게 가르쳤어요. 음이 하나만 틀려도 귀를 잡아당기고는 의자나 책상 위로 올라가 손을 드는 벌을 주었지요. 그래서 노인 선생님에게 가기가 싫어서 아버지께 말씀드렸어요. 클라리넷을 불지 않겠다고. 노인 선생님은 옛날에 그런 식으로 배웠던 것 같습니다. 노인 선생님 댁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자 아버지는 그러라고 허락하신 뒤 당신이 가르쳐주겠다고 했지요. 아마도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다면 저는 음악을 거기서 끝냈을지도 모르지요. 목수 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클라리넷은 물론이고 피아노, 바이올린, 플룻, 아코디언 등 각종 악기를 다 다루실 줄 아는 분이었어요. 아버지는 작곡도 하셨는데 아무튼 몇 년 동안 클라리넷 부는 방법을 저에게 직접 가르쳐 주셨지요.”

 “그러니까 아버지에게서 음악성을 물려받은 거네요.”

 “네, 아버지 쪽은 굉장히 예술적이고 손재주도 많으신 다방면에 능하신 분이었습니다. 스키도 잘 타셨지요. 제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아버지께서는 저를 데리고 저 앞산 봉우리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스키를 가르쳐주셨으니까요. 제가 아프지 않았으면 스키 선수가 됐을지도 모르지요. 반면에 어머니 쪽은 깊이가 있으셨어요. 그래서 종교인도 많이 나오고 슈베르트가 살아 있을 무렵에 작곡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20년 전에 친척의 창고에서 악보를 찾아냈다고 해요. 어머니께서는 악기를 다룬 일이 없는데도 제 곡을 초연할 때마다 연주장에 오셔서 감상하시고는 반드시 한마디를 하셨지요. 이 곡은 지금부터 음악인들이 좋아할 것이다, 이 곡은 10년쯤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평을 꼭 하셨는데 그대로 맞아떨어졌지요. 대단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친가 외가 할 것 없이 모두 음악성이 뛰어난 집안이군요.”

 앞서 가던 빌리 씨가 걸음을 멈추었다. 산길이 좁아지고 산비탈까지 가팔라지는 곳이었다. 갑자기 숨이 조금 차는 지점이었다. 정 작가는 ‘더 올라가야 되나?’ 하고 산 정상 쪽을 쳐다보고 있을 즈음이었다. 빌리 씨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가 해발 1600미터입니다. 이곳은 여기서부터 음악이 살고 있지요.”

 “들리는 소리를 색연필로 받아 그린다는 지점이군요. 아, 이곳을 알려주기 위해 여기까지 왔군요.”

 “맞습니다. 오늘은 제가 얘기했던 음악이 살고 있는 곳을 직접 와서 보시라고 안내한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어떤 악기 소리가 살고 있습니까?”

 “장소에 따라 모든 악기의 음악이 독자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아코디언 연주자는 보통 중간 어디에 끼는데, 여기서는 오케스트라 앞에 있는 솔리스트처럼 독자적으로 존재합니다. 나무도, 인간도, 생쥐도 자연으로서 모두 똑같듯 말입니다. 어떤 악기의 음악도 평등하지요. 저는 이 자연 속에서 음악을 다 스케치하고 있는데 아직도 현실화시키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 작업은 끝이 없습니다. 몬타폰에 살면서 계속할 뿐이지요. 제가 몬타폰을 떠나지 않는, 아니 떠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면서 산길 한쪽에 있는 통나무집 휴게소로 갔다. 마침 점심때가 지났으므로 휴게소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빌리 씨와 권 회장은 빵과 샐러드를, 정 작가와 박 여사는 스파게티 봉골레를 주문했다. 스파게티 봉골레란 한국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조개가 들어간 수제비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