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타폰의 달빛7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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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 정윤경 작가)

 헤르베르트 빌리 씨의 자택은 몬타폰 분지의 상가와 호텔들이 있는 지역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었다. 몬타폰 계곡 초입에서 오르막 산길 도로를 타고 올라가자 빌리 씨 자택이 나타났다. 2층인데 조그만 정원이 하나 딸린 집이었다. 그리고 나와 아내가 묵을 숙소는 빌리 씨 자택이 내려다보이는 산길 도로 건너편 위쪽에 있었다. 두 집 모두 해발 700미터쯤 되는 듯했다. 권 회장이 말했다.

 “일부러 빌리 씨 집이 가까운 곳에 민박집을 잡았어요. 3박 4일 동안 묵을 집이에요. 정 작가님 부부만 묵으니까 편할 거예요.”

 “빌리 씨가 미리 잡아놓았군요.”

 “맞아요. 호텔도 있지만 가깝게 머무시는 것이 좋다고 그랬나 봐요.”

 “저도 빌리 씨 집 근처여서 좋습니다.”

 일행은 일단 빌리 씨 자택 앞에서 내렸다. 건너편 산자락 멀리 널따란 풀밭 사이사이에 붉은 지붕과 흰 벽의 집들이 보였다. 오스트리아 농촌이나 산촌의 민가들은 한결같이 단정하고 아담했다. 양 떼처럼 푸른 풀밭과 잘 어울렸다. 빨강과 초록이라는 보색(補色) 때문인지 풀밭과 집들이 도드라지면서도 조화를 이뤘다.

 권 회장의 전화를 받은 빌리 씨가 이층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서양인치고는 체구가 날씬하고 작은 키였다. 입고 있는 옷은 회색 점퍼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빌리 씨가 먼저 정 작가 부부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런 뒤 권 회장 부부와 가볍게 포옹했다. 빌리의 첫인상은 여성처럼 부드럽고 소년처럼 순수했다. 그러면서도 석양빛을 반사하고 있는 빌리 씨의 은발은 그의 영혼이 풍기는 아우라 같았다. 그런 영향인지 빌리 씨 전체적인 분위기는 투명한 크리스털 같은 느낌을 주었다. 권 회장이 빌리 씨의 말을 통역했다.

 “정 작가님, 오늘 저녁 식사는 빌리 선생님이 태국식 식당으로 모시겠답니다. 일단 숙소로 가시어 짐을 풀고 기다리시랍니다.”

 “고맙다고 빌리 씨에게 전해주십시오.”

 정 작가는 빌리 씨에게 한국말로 직접 한 번 더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빌리 씨는 환하게 웃으면서 불교식으로 합장했다. 빌리 씨 자택 위쪽에 있는 민박집으로 올라가면서 권 회장이 말했다.

 “정 작가님 부부를 배려해서 태국식 식당에 예약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빌리 씨의 첫인상이 아주 호감을 주는군요.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 같을 것이라고 상상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몬타폰 계곡을 흘러가는 개울물처럼 맑고 외모는 비엔나 사람들과 달리 이곳 산촌답게 아주 소박합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모습은 크리스털처럼 투명하고 그의 은발처럼 눈부십니다.”

 “역시 작가님이라 표현이 남다르시군요. 빌리 씨는 멋쟁이 비엔나 신사들과 달리 초라하지요. 하지만 빌리는 몬타폰의 보물이에요. 아직도 오스트리아는 물론 유럽 음악인들이 그를 잘 몰라요. 빌리 선생님이 몬타폰에 은둔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제가 한국의 남도산중 이불재에 살고 있는 것과 비슷하군요. 하하하.”

 “그렇군요. 산중에 살고 있다는 점이 같아요. 제가 이불재를 처음으로 찾아갔을 때 인상도 몬타폰처럼 깊은 산중이구나 하고 느꼈으니까요.”

 “그래도 빌리 씨는 고독할지언정 고립됐다고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으니까요.”

 옆에 있던 박 여사가 말했다.

 “예술가들은 고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권 회장님께 처음으로 드리는 말씀인데, 이불재를 찾아오는 서울 손님들 대부분이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산중에 사는 저를 보고 외롭지 않느냐, 고독하지 않느냐 하고 묻곤 합니다. 그러면 저는 손님들에게 말합니다. 외로움이 산중에서 살아가는 힘이라고. 산중에 고독이 없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고독에도 순도가 있다면 절대고독이겠지요. 당신들은 외로움을 두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시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고 말하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빌리 씨가 몬타폰 계곡을 떠나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 여사는 정 작가와 이 같은 이야기를 이불재에서 주고받은 적이 있으므로 이해하는 눈치를 보였다. 그러나 권 회장은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지 또 물었다.

 “빌리 선생님이 몬타폰을 떠나지 않는 이유가 정말로 절대고독 때문일까요?”

 “빌리 씨는 몬타폰의 절대고요, 절대적막에서 자신의 음악이 시작된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절대고요는 자연, 즉 알프스 몬타폰의 오래된 고요가 아닐까요? 원시 태곳적 절대고요 말입니다.”

 실제로 몬타폰 산자락의 원시림이나 알프스 산정의 빙하에는 인간의 소음이 끊긴 절대고요가 있을 터였다. 수 억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순도와 총량의 절대고요가 분명 있을 것이었다. 빌리는 그와 같은 고요를 만나기 위해 알프스 산정이나 몬타폰 산자락을 길게는 몇 달 동안 걷고 또 걷는다고 한국의 한 음악잡지 기자에게 인터뷰했던 것이다. 

 “빌리 선생님이 말한 절대고요란 말을 통역했지만 사실은 그 뜻을 잘 알지는 못해요.”

 “저도 절대고요가 있는 곳을 가보고 싶습니다. 빌리 씨의 음악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하니까요.”

 “빌리 선생님에게 부탁해 보겠습니다. 내일이라도 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민박집은 외관상 빌리의 자택보다 작아 보였다. 60대로 보이는 여주인이 문밖에서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다. 정 작가 부부가 3박 4일 동안 묵을 방은 식당이 가까운 1층에 있었다. 아마도 여주인은 손님을 배려해서 2층으로 올라간 듯했다. 여주인의 인상은 몬타폰 계곡에 사는 시골 사람답게 아주 선량했다. 정 작가 부부를 손님으로 맞이한 그녀는 주인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정 작가 부부 앞에서 수줍어했다. 권 회장에게 무슨 말을 하면서 거실을 이리저리 다녔다. 정 작가는 민박집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권 회장에게 물었다.

 “예약이 잘못됐습니까?”

 “빌리 선생님이 예약했는데 그건 아닙니다. 주인이 워낙 순수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여주인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예, 한국에서 오신 정 작가님 부부를 잘 모셔야 하는데, 자신은 한국말은 물론 영어도 할 줄 모른다며 큰일 났다고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정 작가는 순간 손님을 맞는 여주인의 태도에 감동했다. 물론 빌리의 부탁을 받고 세심하게 신경 쓰는지 모르겠지만, 여주인의 착한 심성에서 나온 행동이 틀림없었다. 권 회장이 정 작가에게 양해를 구하듯 말했다.

 “저희 부부는 빌리 씨 댁에서 자겠습니다. 몬타폰에 오면 빌리 선생님 댁 1층 방은 제 차지였습니다. 빌리 선생님 부모님이 생전에 쓰시던 방입니다.”

 여주인이 어느새 거실 테이블에 귀한 홍차를 내왔다. 평소에 마을 사람들끼리는 레몬차를 마셨던 것이다. 권 회장이 나가려고 하자, 손을 붙잡고는 차를 권했다. 권 회장 부부와 정 작가 부부는 회색 소파에 앉아 홍차를 마셨다. 유리잔 속에 담긴 홍차는 몬타폰 서쪽 하늘 노을처럼 유난히 붉었다. 베르너 박사가 노을의 위치를 보더니 정 작가에게 주변의 지형을 설명했다.

 “창밖으로 마주 보이는 북쪽 산들은 모두 해발 2천 미터가 넘습니다. 저 산맥 너머가 독일이지요. 그리고 노을이 보이는 곳이 서쪽인데 산을 넘어가면 바로 스위스입니다. 이 집 출입문 쪽으로 보이는 남쪽의 먼 산봉우리들도 모두 해발 2천 미터 이상인데 산 뒤쪽은 이탈리아입니다. 그러니까 몬타폰을 둘러싼 산 너머는 바로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입니다. 여기 호텔 식당을 가보면 이탈리아 집시들이 들어와 기타 반주에 노래하고 나서는 팁을 달라고 모자를 들고 다니지요. 지리적으로 가까우니까 오는 겁니다.”

 정 작가 부부는 권 회장 부부와 곧 헤어졌다. 창밖은 벌써 순식간에 캄캄해져 있었다. 맞은편 마을에 불빛들이 명멸했다. 지상의 불빛들이 곧 승천하여 몬타폰 하늘의 달과 별이 될 것만 같았다. 별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정 작가 부부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은 뒤 빌리 씨와 권 회장 부부를 기다렸다. 빌리 씨가 초대한 태국식 식당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