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평생을 돌아봐도 구속될 것 하나 없네 

내 곁에는 한 단지의 햇차와 한 줌의 향이로다.

한주먹 맑은 향에 한 권의 불경이요.

한 바퀴 외로운 달 저 개울의 물소릴세

단지 속의 단차가 황금도 천하게 여기고 

솔 아래 띠집은 붉은 관복을 가벼이 보네

한가하면 경전 두어 권 읽고

목마르면 일곱 사발 차를 마시네

등불 아래 차 끓는 소리 

솔바람처럼 들려오는데 

꽂꽂이 앉아 있으니 

한 그루 나무와 다를 바 없구나

하루 종일 누워서 잠을 탐하노라

게을러서 문밖에도 안 나갔네

책은 책상 위에 던져 버려서

권으로 질로 마구 흩어져 있네

질화로엔 향연기만 일어나고

돌솥에는 차가 부글거리는데

알지 못했구나 해당화가 천산에 내린 비로 모두 떨어져 버린 것을

만권의 책 가지고 이산에서 늙으려 하니 원컨대 그대여 돌아오라.

음식이 싱거워 나물이 안주되고

절이 가난하니 차가 그대로 술일세

내 그대를 기다리니 돌시냇가에서 언젠가 차 끓일 적에 옷소매로 우리 함께 청산의 연기를 떨쳐보세나

조선 전기의 기인이자 선비이며 뛰어난 시인이었던 매월당 김시습이 남긴 시 한 편이다.

그는 설잠이란 법명을 지닌 불가의 승려이기도 하다.

경주 남산 용장사에 머물 적에 그의 토굴생활과 차살림은 일본승려의 기록에 상세하게 전해진다. 김시습이 저술한 금오신화와 초암차도 그때 일본으로 전해진다.

김시습이 산중에 토굴을 마련하여 차를 즐기고 불경을 읽는 모습들이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선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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