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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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정윤경 작가)

 깨달음은 공평하다

 수부띠가 부처님께 물었다.

 “스승님께서 도달한 가장 높은 깨달음의 경지는 

 우리가 얻을 수 없는 어떤 것입니까?”

 “그렇다, 수부띠여. 가장 높은 깨달음의 경지를 

 말로 하자면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깨달음의 경지는 모든 곳에 공평하게 존재한다. 

 그런 경지는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아진다. 

 자아라는 주체도 없고 자아가 보는 대상인 객체도 없는 

 마음으로 선한 행위를 함으로써 깨달아진다.”

                        -대반야경

  실체가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라

 수부띠가 물었다.

 “붓다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했다.

 “붓다는 실체다. 모든 존재 요소를 

 철저히 깨달아 이해하는 사람이 붓다이다.”

 그러자 수부띠가 물었다.

 “견성이란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했다.

 ”견성이란 만상 속에 내재한 공(空)한 특성,

 그러한 것, 이해할 수 없는 것 속에서 

 보인다고 말하는 그것이다.

 이름이나 단어는 단지 우연이며

 구분이나 이중성이 사라진 상태가 견성이다.“

 수부띠가 물었다.

 ”공을 알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을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실체를 사모하고

 세상 속에서 사는 방편을 알아야 하며

 뜻이 맞는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그러한 방편은 실체 안에서 알아야 하며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한 방편을 얻은 사람은 

 준다는 생각 없이 줄 뿐이며

 모든 것에 실체가 없다는 깨달음으로 산다.“

                      -대반야경

 사족; <금강경>은 부처님께서 수부띠 같은 아라한을 위해 설한 경전이고, <반야심경>은 보살을 위해 설한 경전이라고 한다. 보살은커녕 아라한도 요원한 내가 <반야심경>을 가까이 놓고 틈틈이 보아왔다는 자체가 어쩌면 행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도의 유마거사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은 자유인의 열쇠를 <반야심경>의 공(空)과 무(無)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집착하지 않기’와 ‘놓아버리기’를 깨달았으니 말이다. 위에 부처님 말씀은 오래전에 내가 <대반야경>을 읽으며 메모해 두었던 구절들이다. 의미는 <반야심경>과 대동소이하다. 

 먼지는 진정 먼지가 아니다

 하나의 이름이란 한 사물이나 상태로 

 생각되어지는 것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나의 이름은 그것을 다른 사물이나 

 상태와 구분하게 한다. 

 그러나 이름 뒤에 숨겨진 것을 추구한다면 

 분별이 사라진 더욱 크고 깊은 이치를 보리라. 

 먼지는 진정 먼지가 아니라 

 단지 그렇게 불릴 뿐이다. 

 마찬가지로 세상도 진정 세상이 아니며 

 단지 그렇게 불릴 뿐이다.

                        -청정도론

 네 것이 아니거든 버리라

 네 것이 아닌 것을 버리거라.

 버리는 것이 선과 행복을 위한 일이다.

 네 것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

 육신도 네 것이 아니다. 버리거라.

 감정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

 감정은 지니지 말고 버리거라.

 지각과 네가 지각하는 사물은 

 네 것이 아니다. 버리거라.

 두뇌가 작용하여 일어나는 생각은

 네 것이 아니다. 흘러가게 내버려 두라.

 의식은 인식된 상태이지 네 것이 아니다.

 지니지 마라. 흘러가게 내버려 두고,

 버리고, 소유하지 않는 것이

 너를 위하고 행복하게 하는 일이다.

                      -잡아함경

  사려는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땅 위를 지나는 어떤 짐승의 발자국도

 짐승들 가운데 가장 큰 코끼리 발자국 안에

 들어갈 수 있듯 세심한 사려(思慮)는

 언제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특성이 있다.

 세심한 사려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좋은 생각을 일으킨다.

 세심한 사려는 이미 일어난 

 나쁜 생각을 사라지게 한다.

 사려 깊은 사람에게는 마땅히 받아야 할

 행복이 찾아온다.

             -증일아함경

 사족; 음력으로 초사흗날 초저녁이다. 소쩍새가 쌍봉사 뒷산 활엽수림에서 저녁예불 시간을 알리듯 소리치고 있다. 쌍봉사 하늘에는 관자재보살님의 눈썹 같은 초승달이 떠 있다. 이윽고 목탁소리가 초저녁의 적막을 뚫고 내가 사는 이불재까지 들려온다. 이불재는 협곡에 자리하고 있어 조그만 소리도 크게 공명하여 들리는 내 처소이다.

시간과 공간 속의 존재들이 서로가 무연한 것 같지 않다. 소쩍새가 저녁예불을 알렸고, 관자재보살님의 눈썹 같은 초승달이 잠시 떠 있었고, 법당으로 들어간 스님이 목탁을 치며 독경했을 것이다. 초저녁은 내밀한 밤의 문을 열어주는 것 같다.

초저녁의 상념을 접고 초승달이 아직도 떠 있을까 하고 현관 너머로 나가보니 초승달이 진 자리 옆에 별이 하나 눈을 크게 뜨고 있다. 쌍봉사는 적막 속에 잠기고, 더욱 절다워진 것 같고, 연못 위에 달아놓은 초파일 연등들의 불빛이 이불재 소나무 사이로 부처님의 침묵처럼 언뜻언뜻 비친다.

위의 부처님 말씀 가운데 ‘소유하지 않는 것이 너를 위하고 행복하게 하는 일이다.’라는 구절과 ‘세심한 사려(思慮)는 언제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특성이 있다.’라는 구절이 오늘 맞이하는 초저녁에 나를 충만케 하고 있다. <청정도론>의 ‘이름 뒤에 숨겨진 것을 추구한다면 분별이 사라진 더욱 크고 깊은 이치를 보리라.’라는 구절도 다시 한번 이름들 뒤에 숨겨진 인연법을 절감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