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찬주
2025-02-05 (수) 08:19정찬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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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정윤경 작가)
가르침은 강을 건너는 뗏목과 같은 것
마음에 망상과 분별을 일으키면,
내니 남이니 중생이니 목숨이니 하는 데 집착하게 된다.
법(진리)에도 집착하지 말고 법 아닌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
내 가르침은 강을 건너는 뗏목과 같은 것.
법도 오히려 버려야 할 텐데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
- 금강경
사족; <금강경>의 핵심은 그것이 무엇이든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닐까. 진리마저도 집착하지 말라는 것인데 하물며 진리가 아닌 것에 집착함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집착의 다른 말은 욕망일 것이다. 망상과 분별로 생긴 집착과 욕망은 본래 청정한 나를 더럽히는 얼룩이리라.
* * *
아라한은 자신을 아라한이라고 하지 않는다
아라한(성자)이 생각하기를,
자기가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존경받을 사람은
‘나는 존경받을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존경받을 사람은 아무 데도 없다.
존경받을 사람이라고 ‘말해지고 있을 뿐이다.
만일 아라한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자기가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는 ’나‘라는 집착에 사로잡힌 것이다.
-금강경
사족; 이 구절을 두고 법정스님께서 깨달았다고 자기를 드러내는 수행자를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비판하신 적이 있다.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열매가 익으면 저절로 향기를 발하는 법. 내 향기를 맡으라고 큰소리치는 열매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 * *
집착을 끊어야 진리를 본다
세상의 더러운 것들로부터 집착을 끊는 일은
분별 있고 볼 줄 아는 사람에게는 가능한 일이나,
무지하고 볼 수 없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해를 하고 식별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티끌 한 점 없는 깨끗한 진리를 보는 눈이 생긴다.
진리를 본다는 것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진리는 본다는 것은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지식이 생기고 통찰력이 생기고 빛이 생기는 것이다.
-잡아합경
사족; 집착을 끊을 수 있으려면 그것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할 것이다. 눈에는 네 가지가 있다고 한다. 불안(佛眼), 법안(法眼), 혜안(慧眼), 육안(肉眼)이 그것이다. 불안은 부처님의 눈이고, 법안은 아라한의 눈이다. 혜안은 수행자의 길에 들어선 이의 눈이고, 육안은 나 같은 중생의 눈일 것이다.
* * *
누구나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부처님께서 마가다국 남산의 바라문촌에 머물고 계셨다.
부처님께서 바라문 바라드바자 집으로 탁발 가셨을 때
그는 마침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음식을 받기 위해
한쪽에 서 있는 부처님을 보고 바라드바자가 말했다.
“사문이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습니다.
당신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다오.
갈고 뿌린 다음에 먹지요.”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당신의 멍에나 호미
그리고 작대기나 소를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다음에 먹는다고 하십니까?
당신이 밭을 간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아듣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믿음은 씨앗이요, 고행은 비며
지혜는 내 멍에와 호미요 부끄러움은 쟁기 자루며,
의지는 잡아매는 줄이고, 생각은 내 호미 날과 작대기라오.
몸을 근시하고 말을 조심하며 음식을 과식하지 않지요.
나는 진실을 김매는 일로 삼고 있다오.
온화한 성질은 내 멍에를 벗겨주지요.
노력은 내 황소이므로
나를 절대자유의 경지로 실어다 준다오.
물러남 없이 나아가 그곳에 이르면 근심걱정이 사라지지요.
내 밭갈이는 이렇게 이루어지고 단 이슬의 열매를 가져온다오.
이같이 농사를 지으면 온갖 고뇌에서 풀려나게 되지요.”
이에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커다란 청동 발우에
우유죽을 하나 가득 담아 부처님께 올렸다.
-숫따니빠다
사족; 나는 무슨 밭을 갈며 무슨 씨앗을 뿌리며 사는지 바라문 바라드바자에게 하신 부처님 말씀을 거울삼아 사유해 본다.
누구나 자기만의 밭이 있고 씨앗이 있을 터. 나의 밭은 원고지요, 써내려 가는 글은 씨앗이며, 사색은 씨앗을 싹 틔우게 하는 비와 햇볕이리라.
작가적 매의 눈으로 김매는 일(수정작업)을 하고, 노력과 인내는 나를 이끌어 주는 황소이므로 나의 생계를 해결해 주고 나를 그런대로 편안하게 해주지 않았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