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금기를 깨고 불교 섹슈얼리티로 재탄생한 붓다와 여성들의 이야기!

염정우 기자 | bind1206@naver.com | 2025-01-13 (월) 15:35

2,600여 년 동안 붓다에게 금지됐던 성과 사랑 그리고 여성들….

“아내와 아들을 두고 출가한 붓다는 정말 무책임한 가장이었을까?”

“여성들의 출가를 반대했던 붓다는 반(反)페미니스트였을까?”

“마녀, 악마, 왕비, 관음, 여신은 어떻게 불교 속에 들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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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학자, 여신 연구자, 상담가, 페미니스트, 스님, 경전이야기꾼 등 9명의 필자가 솔직한 고백, 역사, 전설, 문학, 미술 속에서 『붓다, 성과 사랑을 말하다』(불광출판사)라는 책을 내놓았다.


‘마녀’라고 손가락질받다 영성을 찾은 기독교 신학자, 32가지 몸짓으로 유혹하던 악마의 세 딸, 정치적 입지를 위해 붓다를 택한 왕비, 목욕물로 수행자를 깨닫게 만든 관음, 붓다의 깨달음을 증명한 땅의 여신, 생리혈이 더럽다는 분위기를 견뎌야 했던 여성들, 온갖 역경에도 붓다에게 향한 티베트 여성들, 그리고 수행 공동체로 받아들여졌던 성소수자들…. 붓다와 늘 함께였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들이 전설로, 역사로, 문학으로, 미술로 그리고 솔직한 고백으로 드디어 우리 앞에 등장했다.


숭산 스님이 얘기를 들으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는 불교의 자비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모든 걸 받아주고 참아주는 게 불교의 자비가 아니다. 문수보살이 진리의 칼을 들어서 이 망상을 딱 깨버리는 그것도 자비다. 남편의 망상을 끊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가장 큰 자비일 수 있다.”

그동안 만났던 종교 지도자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냉정하게 끊는 게 가장 큰 자비일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숭산 스님의 가르침은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힌 나를 일깨웠다.

- 〈영성으로 만나는 ‘내 안의 나’〉 중에서


붓다가 깨닫기 전의 인생, 즉 싯다르타는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뤘으며 아내 야소다라의 연인이자 남편이며 아들 라훌라의 아버지였다. 그렇다면 아내와 아들을 두고 출가한 싯다르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붙잡지 못했던 아내 야소다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붓다가 된 후는 달랐을까? 모든 존재는 하늘 아래 존엄하고 평등하다고 가르친 붓다가 어머니 대신 자신을 키운 이모의 출가를 거절한 이유는 무엇일까? 붓다는 신체 구조와 성적 취향이 다른 사람을 수행 공동체로 받아들였을까?


사랑에 빠질 때면 사람들은 말한다.

“그 사람이 없으면 나는 못 삽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 말은 이렇게 변하곤 한다.

“그 사람 때문에 못 살겠습니다.”

연인에서 원수가 되고, 원수도 ‘웬수’가 되어서 눈을 흘기며 인생을 살 것인지, 그렇지 않고 왜 상대방을 ‘웬수’로 여기게 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이런 관계를 통해 내 자신이 성숙해질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어쩌면 사랑과 결혼이 우리에게는 수행도량이요, 연인(혹은 배우자)은 평생 나를 정서적으로 성숙시켜줄 도반일지도 모른다.

- 〈붓다에게 사랑과 결혼을 묻다〉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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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불교 내 다양한 젠더 이슈를 불교페미니즘이라는 렌즈를 통해 재해석하고자 2024년에 진행된 ‘불교와 젠더강좌’ 내용을 선별해 묶었다. ‘붓다의 성과 사랑 이야기’라는 강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현대인의 삶 속에 나타나는 성, 사랑, 구원 등 실존적 고민을 극복하기 위한 지혜를 붓다의 가르침 속에서 찾는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붓다와 여성들을 재발견한다. ▲1부에서 성과 사랑에 관한 붓다의 가르침을 만나보고, ▲2부에서는 한국 불교에서 여성의 역할을 살펴보며, ▲3부에서는 불교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경전이나 자서전, 미술 안에서 찾는다.


부정과 신성은 절대불변의 영역이 아닌 상호보완적인 관계로서, 도깨비굿에서는 여성의 피묻은 속곳이 병액을 쫓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벽사(辟邪) 능력’을 지니고 있다. 도깨비가 여성의 생리혈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피 묻은 속곳을 장대에 걸고 여성들만 참여하는 굿을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그 피의 힘을 인식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부정과 신성의 양면성을 가진 여성의 피는 일상적 세계에서는 금기였으나, 여성 주도의 비일상적 세계가 열렸을 때 신성을 획득한다. 역병이라는 재난을 극복하려는 제의의 현장에서 신성한 힘과 금기된 오염은 상호간 가치의 전복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 〈동아시아의 『혈분경』 사상을 통해 보는 여성관〉 중에셔


이 책은 붓다의 깨달음에만 몰입했던 우리에게 낯설지만 흥미로운 재미로 다가온다. 깨달음을 증명한 존재가 땅의 여신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었다. 왕과 사대부 남성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왕비와 여성들이 정치적 입지 등을 위해 붓다를 선택한 사실도 우리는 몰랐다. 생명 잉태를 상징하는 생리혈이 부정하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고, 남성이던 관음이 어느 순간 여신으로 받아들여지는 흐름이 생겼다는 것도 우리는 알지 못했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가 남성 중심적 사고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짜릿한 경험을 선사한다. 『삼국유사』의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 조에 등장하는 관음 이야기에서 우리는 참신한 해석을 마주한다. 계율에 집착하는 달달박박과 대승적 자비를 베푼 노힐부득 이야기에는 숨겨진 이면이 존재했던 것. 이 설화에서 깨달음은 출산의 신성한 피가 섞인 목욕물로 목욕을 하느냐 마느냐에 달렸고, 해산한 낭자(관음)이 씻은 물로 목욕한 부득이 성불하자 뒤늦게 그 물에 들어간 박박도 부득처럼 성불한다. 그 낭자는 관음이었으며, 목욕통은 자궁의 상징이었고, 부득과 박박은 자궁에 들어가 붓다로 재탄생한 셈이다.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의 아시아계 최초 여성 종신교수이자 해방신학자 현경을 비롯해 북칼럼니스트이자 경전이야기꾼 이미령, 종교와젠더연구소 소장 옥복연, 여신학 개척자 김신명숙, 성소수자 법회 지도법사 효록 스님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글쓰기는 새롭고 신선하다.


붓다는 태생에 따라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음부, 즉 성기나 성적 교섭의 방식에서도 차별하지 않았다. 인간에게 있어서 구별은 단지 ‘명칭’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팔리어 경전에 등장하는 성소수자에 대해 연구하면서 놀랐던 점 중 하나는 붓다는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인간의 섹슈얼리티를 존중했다는 점이다.

- 〈붓다. LGBTQ+(성소수자)를 말하다〉 중에서


현경은 ‘마녀’, ‘이단’이라는 비난 속에도 자신의 진정한 영성을 불교에서 찾았고, 이미령은 경전 속 이야기에서 붓다에게 결혼과 사랑을 질문하고 답을 유추한다. 불교페미니스트 개척 중인 옥복연은 불교의 서사에서 불교페미니스트 관점의 새로운 가능성을 말하며, ‘국내 1호 여신학 박사’ 김신명숙은 여신으로 변모하는 관음의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냈고, 효록 스님은 성적 취향이나 신체적 구조가 다른 사람들을 수용한 붓다의 견해를 자세히 고찰한다. 이처럼 각 분야의 9명의 필자는 낯설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친근하게 풀어가며 새로운 불교로 안내한다.


사실 우리는 수많은 불보살과 붓다에게 기도하고 수행하면서 불교를 ‘자비의 종교’, ‘깨달음의 종교’로만 알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어쩌면 외면해왔을지도 모르는 불교 섹슈얼리티를 재발견하고, 우리를 불교의 본질로 이끈다.

맞다. 『붓다, 성과 사랑을 말하다』는 붓다의 역사 속에 감춰진 색다른 여성들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놓치지 말아야 할 기회다.


현경·이미령 옥복연 외 6명 지음 / 불광출판사

148 * 224 * 31 mm / 384쪽

정기 23,000원



 

   <작가정보>


 현경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의 아시아계 최초 여성 종신교수. 기독교 신학자이면서 동시에 불교 신학자이다. 신학적 예술가, 여성해방신학자, 환경운동가, 평화운동가, 문화통역사 등 다양한 수식어로 불린다. 저서로는 8개 국어로 번역된 『다시 태양이 되기 위하여』,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1, 2』, 『미래에서 온 편지』 등이 있다.


 이미령

북칼럼니스트이자 경전이야기꾼. BBS불교방송 〈경전의 숲을 거닐다〉,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와 YTN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을 진행했다. 현재 다양한 불교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불교교양대학에서 ‘부처님 생애와 불교 기본교리’ 등 강의를 하고 있다. 『숲속 성자들』, 『이미령의 명작산책』,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목차>


머리말


1부. 붓다에게 성과 사랑을 묻다

1. 영성으로 만나는 ‘내 안의 나’

2. 붓다에게 사랑과 결혼을 묻다

3. 불교, 페미니즘과 만나다


2부. 한국 불교에서 여성을 말하다

4. 조선 전기 왕실과 사대부 여성들의 삶과 불교

5. 한국 여성관음과 서구 여신관음

6. 붓다. LGBTQ+(성소수자)를 말하다


3부. 불교사에서 여성을 만나다

7. 간다라 불전 미술 속 여성들

8. 동아시아의 『혈분경』 사상을 통해 보는 여성관

9. 티베트 불교의 뛰어난 여성 수행자, 그 깨달음의 여정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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