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왕켄뽀의 보성론 강의(014)//

강의:켄뽀 아왕상뽀

(북인도 둑 다르마까라 승가대학 교수사/ 서울 성북구 캄따시링 센터장)

번역 및 정리:자홍스님(캄따시링 법회 통역)

교정: 캄따시링 역경원(지성남, 김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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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상가 논사의 탱화
 

지(地)는 수(水)에, 수(水)는 풍(風)에

풍(風)은 허공에 머물지만

허공은, 풍(風)과 수(水)와

지계(地界)에 머물지 않는다. [1.55]

།ས་ནི་ཆུ་ལ་ཆུ་རླུང་ལ།།རླུང་ནི་མཁའ་ལ་རབ་ཏུ་གནས།

།མཁའ་ནི་རླུང་དང་ཆུ་དག་དང་།།ས་ཡི་ཁམས་ལ་གནས་མ་ཡིན།

"지(地)는 수(水)에, 수(水)는 풍(風)에, 풍(風)은 허공에 머물지만"이라고 하였다. 지(地)는 수(水)에 의지한다. 수(水)는 풍(風)에 의지한다. 풍(風)은 허공에 의지한다. 아비다르마의 세계관에서는 우리가 거주하는 이 대지의 아래에 물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물은 텅 빈 허공 중에 어떻게 머무를 수 있는가? 물 아래에 바람이라는 강력한 에너지가 떠받치고 있기에 가능하다고 한다. 이 풍(風)은 허공에 의지하여 존재하고 있다.

"허공은, 풍(風)과 수(水)와 지계(地界)에 머물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허공 자체는 풍, 수, 지에 의지하여 머물고 있지 않다. 지와 수와 풍이 존재하든 소멸하든 허공은 늘 그대로 있다. 1.55는 비유이고, 이 비유가 의미하는 바는 아래에서 밝혀진다.

마찬가지로 온(蘊), 계(界), 근(根)들은

업(業)과 번뇌에 머물며

업(業)과 번뇌는, 비여리(非如理)의

작의(作意)에 항상 머문다. [1.56]

།དེ་བཞིན་ཕུང་པོ་ཁམས་དབང་རྣམས།།ལས་དང་ཉོན་མོངས་དག་ལ་གནས།

།ལས་དང་ཉོན་མོངས་ཚུལ་བཞིན་མིན།།ཡིད་ལ་བྱེད་ལ་རྟག་ཏུ་གནས།

"마찬가지로 온(蘊), 계(界), 근(根)들은 업(業)과 번뇌에 머물며"라고 하였다. 온(蘊), 계(界), 근(根)은 업(業)에 의지한다. 다양한 업을 축적하기에, 그로 인하여 온, 계, 근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업(業)은 무엇에 의지하여 생겨나는가? 업은 무인무연(無因無緣)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업은 번뇌에 의지하여 생겨난다. 탐욕, 화, 무지, 아만, 의심 등의 동기, 즉 번뇌에 의해 업이 발생한다.

"업(業)과 번뇌는, 비여리(非如理)의 작의(作意)에 항상 머문다."라고 하였다. 업을 발생시키는 번뇌는 무엇에 의해 생겨나는가?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 Tib. tshul bzhin ma yin yid la byed, Skt. ayoniśo-manaskriyā)에 의지하여 생겨난다. 비여리작의란 무엇인가? 부정(不淨)한 것을 청정하다고 인식하거나, 괴로움을 즐거움이라고 인식하거나, 무상(無常)한 것을 상주불변(常住不變)이라고 인식하는 등 전도(顚倒)된 인식이 바로 비여리작의다. 이 비여리작의에 의지하여 번뇌가 일어나고, 번뇌에 의해 업을 쌓고, 업에 의해 온 등이 성립한다.

작의(作意, Tib. yid la byed pa, Skt. manaskāra)는 5온(五蘊) 중에서는 상(想, Tib. 'du shes, Skt. samjñā)에 상응한다. 이것은 견(見, Tib. lta ba)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도된 견해가 마음속에 있으면, 이 마음에는 번뇌가 쉽게 발생하며, 번뇌를 일으키면 반드시 업을 쌓게 된다. 업을 쌓으면 필히 괴로움을 겪게 된다.

전도(轉倒, Tib. phyin ci logs pa, Skt. viparyāsa)란, 사물의 실상(實相)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전도견(顚倒見)에 의한 생각이 있으면 환상(幻相)들이 나타난다. 이 환상들은 우리를 번민하게 하고 괴롭게 한다. 일상에서 실제 상황이 아닌 것을 마음대로 착각해서, 멋대로 기대하고 욕심부리다가 나중에 실상을 알고 후회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얼마나 자주 있는가?

반면에 상(想)이 올바르고 견해가 올바르면 잘못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며, 그로 인해 일어나는 괴로움도 사라진다. 마음속 번민은 외적인 환경의 영향에 앞서, 자신의 마음속에 선재하는 관념에 크게 좌우된다. 나름대로는 자기 생각에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근거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근거까지 실상에 부합하지 않을 때, 결국 상황을 직면하고 마음에는 번민이 일어나고, 괴로운 마음에는 외부의 사물과 환경이 모두 비호의적으로 나타난다.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는

마음의 청정함에 실로 머문다.

그러나 마음의 자성법들은

일체에 머묾이 없다. [1.57]

།ཚུལ་བཞིན་མ་ཡིན་ཡིད་བྱེད་ནི།།སེམས་ཀྱི་དག་པ་ལ་རབ་གནས།

།སེམས་ཀྱི་རང་བཞིན་ཆོས་རྣམས་ནི།།ཐམས་ཅད་ལ་ཡང་གནས་པ་མེད།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는 마음의 청정함에 실로 머문다."라고 하였다. 비여리작의는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마음의 청정함' 즉 심자성(心自性) 속에 머물고 있다. '머문다'라는 표현은 이것이 그것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의미로, 비여리작의가 마음의 청정함 속에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어째서 마음의 청정함으로부터 비여리작의가 생겨나는가? 유식파(唯識派)에서는 외적 대상들은 무엇으로부터 생겨나느냐는 질문에 마음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그 마음은 무엇으로부터 생겨나는가 하면, 아뢰야식으로부터 생겨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뢰야식으로부터 마음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여기에는 아뢰야식에 다량으로 축적되어 있는 습기(習氣)에 의해서 생겨난다고 한다. 이때 유식파에서는 아뢰야식과 심자성(心自性)을 별개로 구분한다. 그렇지만 1.57의 1,2행을 해석하기 위해서 유식교의 이러한 도식을 활용해 볼 수 있겠다. 많은 업을 지었기에 업에서 비롯된 습기가 마음속에 축적되어 있고, 그 습기의 위력으로 인해 비여리작의가 생겨나는 것이다. 허공이라는 공간의 내부에 다양한 사물이 머물러 있듯, 심자성청정(心自性淸淨) 안에 습기(習氣)들이 머물고 있다. 이 습기들은 비여리작의를 발생시키는 조건이 되며, 심자성을 장애하여 가리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마음의 자성법들은 일체에 머묾이 없다."라고 하였다. 이 습기가 어디에 어떻게 머물고 있는지 탐색해보면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다. 다만 전도상(轉倒相)에 의해 마치 머물고 생겨나는 것처럼 나타날 뿐이다. 『입중론(入中論)』에서는, 아뢰야식을 상정하지 않더라도 공성(空性) 속에서 모든 것이 연기(緣起)에 의해 생겨난다고 하였다.

학생: 아뢰야식은 습기가 저장된 집합체 그 자체이지, 별도의 저장공간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켄뽀: 아뢰야식은 특정한 식(識)의 상속(相續)이다. 식의 상속이란, 선도 불선도 아닌, 그저 비추고 아는 인식의 흐름을 의미한다.

학생: 1.57의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나의 이 마음이 청정함에 머물지 못하기 때문에,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가 생겨나는 것인가요?

켄뽀: 마음의 청정은 비여리작의에 의지하지 않지만, 비여리작의는 마음의 청정에 의지하여 발생한다. 그리고 심자성(心自性) 곧 청정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비여리작의가 생겨난다. 마음이 청정에 머물 수 있다면, 비여리작의는 자연히 정지되고 소멸한다.

학생:여기서 마음의 청정은 심자성(心自性)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까?

켄뽀: 그렇다. 여기서는 동일한 것을 가리킨다.

지(地)와 유사한 것이 온(蘊),

처(處), 계(界)라고 알아야 하며,

수계(水界)와 마찬가지라고 유신(有身)의

업(業)과 번뇌에 대해 알아야 한다. [1.58]

།ས་དང་འདྲ་བ་ཕུང་པོ་དང་།།སྐྱེ་མཆེད་ཁམས་རྣམས་ཤེས་པར་བྱ།

།ཆུ་ཁམས་དང་འདྲ་ལུས་ཅན་གྱི།།ལས་དང་ཉོན་མོངས་ཤེས་བྱ་སྟེ།

"지(地)와 유사한 것이 온(蘊), 처(處), 계(界)라고 알아야 하며,"라고 하였다. 앞에서 아비다르마에 따른 세간의 성립 과정에 대해 설명하였다. 허공 중에 풍(風)이 있고, 풍의 위에 수(水), 수의 위에 지(地)가 성립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지(地)는 온, 처, 계와 같다. "수계(水界)와 마찬가지라고 유신(有身)의 업(業)과 번뇌에 대해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수(水)는 중생들의 업과 번뇌와 같다. 수(水)에 의지하여 지(地)가 성립한다고 하였는데, 마찬가지로 업과 번뇌에 의해 온, 처, 계가 성립한다.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는

풍계(風界)와 비슷하다고 보며

자성(自性)은 허공계와 비슷하여

그와 마찬가지로 의지함이 없고 머묾이 없다. [1.59]

།ཚུལ་བཞིན་མ་ཡིན་ཡིད་བྱེད་ནི།།རླུང་གི་ཁམས་དང་འདྲ་བར་ལྟ།

།རང་བཞིན་ནམ་མཁའི་ཁམས་བཞིན་དུ།།དེ་བཞིན་ཅན་མིན་གནས་པ་མེད།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는 풍계(風界)와 비슷하다고 보며"라고 하였다. 비여리작의는 아비다르마의 세간 성립설에서의 풍(風)과 같다. 풍이 수(水)를 휘저어, 그 안에서 흙과 돌 등의 지(地)가 생겨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여리작의가 마음\속에 생겨나면 마치 바람이 물을 휘젓듯 마음을 휘젓는다.

"자성(自性)은 허공계와 비슷하여 그와 마찬가지로 의지함이 없고 머묾이 없다."라고 하였다. 자성은 심자성을 의미한다. 심자성은 허공과 유사해서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그 어떤 것에도 머물지 않는다. 밖의 기세간(器世間)과 안의 유정세간(有情世間)은 모두 마음에 머물고 마음에 의지하여 성립하지만, 마음의 자성은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그 어떤 것에도 머물지 않는다.

학생: 티베트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아비다르마란 무엇입니까?

켄뽀: 지금 강의에서 언급한 아비다르마는 주로 와수반두 논사의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D 4090, Tib. mngon pa'i mdzod, Skt. Abhidharmakośa)의 내용을 의미한다. 『구사론』은 총 8개의 품(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에 제3장인 분별세품(分別世品)에 기세간과 유정세간의 성립 과정, 업과 번뇌에 의해 유정들이 태어나고 윤회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는

마음의 자성(自性)에 머물며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에 의해

업과 번뇌를 실로 연다. [1.60]

།ཚུལ་བཞིན་མ་ཡིན་ཡིད་བྱེད་ནི།།སེམས་ཀྱི་རང་བཞིན་ལ་གནས་ཏེ།

།ཚུལ་བཞིན་མ་ཡིན་ཡིད་བྱེད་ཀྱིས།།ལས་དང་ཉོན་མོངས་རབ་ཏུ་ཕྱེ།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는 마음의 자성(自性)에 머물며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에 의해 업과 번뇌를 실로 연다."라고 하였다.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는 어디에 머무는가? 심자성(心自性)에 머문다. 비여리작의는 어떤 작용을 하는가? 업과 번뇌가 생겨나는데 그 문을 여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낙(樂)이다, 이것은 고(苦)이다, 이것은 청정한 것이다, 이것은 부정한 것이다.' 이러한 분별망상도 모두 비여리작의이다. 즐거움에는 탐착하고 고에는 화를 내며, 청정한 것을 욕구하며 부정한 것은 혐오한다. 그리하여 업과 번뇌의 생성 과정이 시작된다.

업과 번뇌라는 물로부터

온(蘊), 처(處), 계(界)들이 생겨나고

그것이 쇠멸하고 생겨남과 마찬가지로

생하고 멸하게 된다. [1.61]

།ལས་དང་ཉོན་མོངས་ཆུ་ལས་ནི།།ཕུང་པོ་སྐྱེ་མཆེད་ཁམས་རྣམས་འབྱུང་།

།དེ་འཇིག་པ་དང་ཆགས་པ་ལྟར།།སྐྱེ་དང་འཇིག་པར་འགྱུར་བ་ཡིན།

"업과 번뇌라는 물로부터 온(蘊), 처(處), 계(界)들이 생겨나고"라고 하였다. 아비다르마 세계관에서는 수(水)로부터 거친 지(地)가 생겨난다고 했다. 이 비유와 마찬가지로 업과 번뇌로부터 색온(色蘊)과 같은 온(蘊), 안처(眼處)와 같은 처(處), 안근계(眼根界)와 같은 계(界)들이 생겨난다. 온, 처, 계는 우리 존재의 흐름(相續, Tib. rgyud)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쇠멸하고 생겨남과 마찬가지로 생하고 멸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3행의'그것이 쇠멸하고 생겨남과 마찬가지로'는 수(水)로부터 대지와 흙과 바위 등이 생겨났다가 쇠멸하고 소멸했다가 다시 생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생멸 과정과 마찬가지로, 업과 번뇌로부터 생겨난 온, 처, 계도 이전에 없던 것이 새로 생겨나고 이후에 소멸하는 과정을 거친다.

심자성(心自性)은 허공의

계(界)처럼, 무인(無因)이고 무연(無緣)이며

화합(和合)이 아니며, 생(生)과

멸(滅)과 주(住)도 존재하지 않는다. [1.62]

།སེམས་ཀྱི་རང་བཞིན་ནམ་མཁའ་ཡི།།ཁམས་ལྟར་རྒྱུ་མེད་རྐྱེན་མེད་དེ།

།ཚོགས་པ་མེད་ཅིང་སྐྱེ་བ་དང་།།འཇིག་དང་གནས་ལའང་ཡོད་མ་ཡིན།

온, 처, 계는 변화가 있다. 업과 번뇌로 인해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자성은 변화가 없다. 마치 허공 중에서 풍, 수, 지가 생겨나고 소멸하지만, 허공 자신의 자성에는 변화가 없는 것과 같다. "심자성(心自性)은 허공의 계(界)처럼, 무인(無因)이고 무연(無緣)이며"이라고 하였다. 마음의 자성은 허공과 같다. 이 마음의 자성은 이전에 없던 것이 원인과 조건에 의해 새롭게 성립된 것이 없다. 성립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떠한 원인도 어떠한 조건도 없는 무인무연(無因無緣)이다.

"화합(和合)이 아니며"라고 하였다. 사람이나 사물은 여러 가지 요소와 부분들이 모여서 화합하여 성립되는 것이다. 허공은 그러한 것도 아니다. "생(生)과

멸(滅)과 주(住)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으며 여러 요소의 화합도 아니므로, 허공과도 같은 이 마음의 자성에는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생멸이 없으므로 머무름도 없다. 심자성(心自性)은 생주멸(生住滅)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온, 처, 계와 같은 유위(有爲法, Tib. 'dus byas, Skt. saṃskṛta)는 원인과 조건에 의해 성립된 것이므로 변화한다. 변화하므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귀의처(歸依處)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면 심자성은 변화하지 않는 것이므로, 우리는 이것을 확신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고, 이것에 귀의할 수 있다.

심자성(心自性)은 빛나는 것이니

그것은 허공처럼 불변(不變)이며

허망분별로부터 발생한 욕망 등

객진(客塵)의 염오로 인해 그것은 번뇌가 되지 않는다. [1.63]

།སེམས་ཀྱི་རང་བཞིན་འོད་གསལ་གང་ཡིན་པ།།དེ་ནི་ནམ་མཁའ་བཞིན་དུ་འགྱུར་མེད་དེ།

།ཡང་དག་མིན་རྟོགས་ལས་བྱུང་འདོད་ཆགས་སོགས།།གློ་བུར་དྲི་མས་དེ་ཉོན་མོངས་མི་འགྱུར།

1.62에서 심자성은 허공과 같아서 생주멸이 없고 불변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심자성은 허공과 완전히 같아서, 아무것도 없고 아무 작용도 없는 그저 텅 빈 것에 불과한가? 아무것도 없는 공무(空無)인가? 1.63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심자성(心自性)은 빛나는 것이니 그것은 허공처럼 불변(不變)이며"라고 하였다. 마음의 자성은 빛나는 것(Tib. 'od gsal ba)이다.

마음이 빛난다고 해서, 일상에서 보는 전깃불이나 각종 광원과 같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간혹 우리의 마음이 매우 명료하고 가벼워질 때가 있지 않던가? 마음의 명료함을 일컬어서 빛난다고 한 것이다. 창문이 없는 실내에서 갑자기 조명이 꺼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컴컴할 것이다. 마음의 자성은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심자성에는 빛남이라고 부를 수 있는, 환하게 빛이 나는 것과 같은, 명료성이 있다.

학생: 마음의 밝음이란 어떤 느낌입니까?

켄뽀:비유를 해보자면, 물이 지극히 맑으면, 물 안에 아무것도 없더라도 그 안에 모든 것이 맑게 비치는 것과 같다. 지극히 맑고 빛나는 그 물을 보게 되는 것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인가? 그 물이 매우 맑아지면 그러한 빛나는 물이 드러난다. 마음이 지극히 청정해지면, 마음의 자성이 드러난다. 이렇게 드러난 마음의 자성은 허공과 같이 변화하지 않는다.

"허망분별로부터 발생한 욕망 등 객진(客塵)의 염오로 인해 그것은 번뇌가 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허망분별로부터 발생한'에서 허망분별(虛妄分別, Tib. yang dag min rtogs)은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를 의미한다. 허망분별로부터 발생한 온갖 번뇌들이 마음의 자성과 함께 지금 존재하고 있지만, 그 번뇌는 마음의 자성을 궁극적으로는 가릴 수 없다.

가을 하늘이 매우 맑은데, 간혹 구름이 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름은 가을 하늘의 자성 그 자체를 가리지는 못한다. 맑은 물이 흙탕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의 본질은 오염되지 않으므로, 흙탕물에서 맑은 물을 걸러낼 수 있는 것이다. 가을에 지극히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 안에 어떠한 것도 잡히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것 같지만, 동시에 지극히 맑고 장엄하고 아름다운 차마 형언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보게 된다. 이 마음의 자성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