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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 진영이다.
 

조선 명종 때 문정왕후는 무너져 가는 조선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발원하고 승과를 부활시켰다. 그때 승과를 보던 너른 들판이 봉은사 앞에 있는 코엑스이다.

조선 명종 5년 (1550)때 봉은사에서 개최한 승과 1기에 수석합격한 분이 서산대사로 불린 휴정 스님이다. 그때 대사의 나이 30세였다. 대선이라는 직함을 얻고 봉은사 주지가 되었다. 36세에는 선교양종판사로 임명받았다.

1556년 어느 날 내가 출가한 본뜻이 어찌 여기에 있겠는가? 탄식하고는 모든 직함을 내려놓고 금강산으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에 주막집에서 나그네와 주인이 서로 간밤의 꿈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대사는 미소 지으며 시 한수를 읊었다. 그것이 유명한 서산대사 삼몽시이다.

주인 몽설객 객몽 설주인 

금설 이몽객 역시 몽중인

주인이 나그네에게 꿈이야기하고

나그네도 주인에게 꿈이야기 하네

지금 꿈이야기 하는 두 사람

모두 꿈속의 사람 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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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에 있는 서산대사 토굴이다.
 

금강산에 도착한 대사는 향로봉에 올랐다. 봉은사 주지를 하면서 권력과 이익을 탐하면서 괴로워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의 심정을 읊은 시가 등향로봉이다. 그러나 그 시 한 편 때문에 조정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고 조롱거리가 될 줄은 몰랐다.

만국의 도성은 개미집 같고 

천추의 호걸들은 초파리와 같구나

밝은 달아래 텅 빈 허공을 배개삼으니

한없는 솔바람 소리가 아름답도다.

임진왜란 3년 전 조선을 뒤흔든 정여립 역모사건이 일어났다. 정여립이 소속된 동인세력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로 여긴 서인의 거두 정철은 스스로 염라대왕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무고한 사람들이 잡혀와 혹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고문에 못 이겨 역모에 가담했다고 자백하면 재산을 빼앗고 가족은 참수되었다. 그렇게 죽어간 사람이 1천 명이 넘었다. 기축옥사로 불린 정여립역모사건은 호남선비의 씨를 말려버리고 그때부터 조정의 잘못을 알면서도 표현하지 못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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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가 승군을 이끌던 병장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인문학적인 유물들은 해남 대흥사로 보냈다.

서산대사의 향로봉시가 정여립역모사건과 관련된다고 밀고가 들어왔다. 대사는 묘향산 보현사에 있다가 의금부도사에게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천여 명의 제자들은 붙들려 가는 노스승을 보며 땅을 치고 통곡하였다. 그때 대사의 나이는 70세였다.

정철은 대사를 조롱하며 정여립과의 관계를 추궁했다. 대사의 시귀에 반골기질이 드러나 있는데 이번 역적모의에 참가했을 거란 억지를 부렸다. 정철과 조정의 관료들은 대사가 역모혐의뿐 아니라 성리학과 적대시되는 이교도인 대사를 조롱하였다. 또한 대사의 인품과 뛰어난 시문이 세간에 까지 명성이 높다는 것은 아니꼽고 괘씸한 일이었다. 육체적 고문은 말할 것도 없고 야유와 냉소가 계속 이어졌다.

국문은 여러 날 계속되었다. 대사의 여윈 몸에 수없이 곤장이 내리쳤다. 선조가 자리를 뜨면 정철이 대사를 야유하며 빨리 자백하라며 위협하였다. 그러나 대사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했다. 대답은 짧았고 다른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피에 젖은 형틀 위에서 백설같이 흰 눈썹을 들어 푸른 하늘을 쳐다보는 대사의 표정은 지팡이를 짚고 길을 나선 듯 담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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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의 불탑이다.

오대산 월정사 팔각구층탑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선조는 대사의 태도를 보고 묘향산 보현사로 밀사를 보낸다. 대사의 행적과 혐의가 될만한 증거를 찾아보라 하였다. 밀사가 다녀와서 선조에게 보고하였다. 묘향산을 모두 수색했지만 역모에 연루된 흔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불전에는 주상전하 성수만세 라는 축원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선조는 곧 대사를 무죄로 방면하고 궁중으로 초대하였다. 압수해 온 대사의 시문집과 등향로봉 시를 참 좋은 시라고 칭찬하였다. 선조는 손수 대나무 그림을 그려주면서 대사를 위로하였다. 국왕이 직접 그려서 내려준 대나무 그림에는 다음 같은 묵죽시가 적혀 있었다.

잎사귀는 스스로 붓끝에서 나왔고

그 뿌리는 땅에서 나지 않았네

달이 돋아 와도 그림자 볼 수 없고

바람에 움직여도 소리 들을 수 없네..

대사는 선조가 내린 시를 받고 곧 답시를 지어 올렸다.

소상의 한 가지 竹이

성주의 붓끝에서 나왔어라

산승의 향불 사르는 곳에

잎마다 가을소리 띠었구나

서산대사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오히려 상감이 알아주는 도승으로 명성이 높아졌다.

조정대신들이 놀란 것은 죽음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영광 앞에서도 담담한 대사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