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하는 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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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정윤경)

 5백 명 장로가 라자가하 거리를 거닐며 탁발하는 모습은 거룩했다. 마치 기러기 떼가 하늘을 나는 듯 고요하고 질서 있게 이동했다. 한 장로도 걸음이 빠르거나 늦지 않았고 눈은 자신들의 발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장로들이 걸음을 옮길 때는 연꽃이 한 송이 두 송이 피어나는 듯 거룩했다. 

 라자가하 주민들은 공양물을 들고 장로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문 밖에 서 있었다. 장로들은 기러기 떼가 나뉘어 날 듯 몇 사람씩 줄을 지어 라자가하 거리를 지나쳤다. 붓다가 당부한 대로 부잣집이든 가난한 집이든 간에 일곱 집만 들러 탁발을 했다. 공양물을 내놓지 못하는 거적때기 오두막도 한 집으로 쳐서 절대로 일곱 집을 넘지 않았다. 먹을 것이 없는 자들의 굶주리는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그랬다.

 탁발하는 날은 햇빛이 칠엽굴 깊숙이 들어올 무렵에야 아난다의 암송을 듣기 위해 5백 명 장로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난다는 5백 명 장로보다 일찍 칠엽굴에 들어와 입정했다. 암송할 <금강경>의 내용을 복기하기 위해서였다. 잠들기 전에 수십 번 복기하곤 했으므로 더듬거리거나 건너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법문을 설하는 붓다의 모습이나 법문의 내용이 선명하게, 마치 바위에 새겨진 글씨처럼 눈앞에 보였다. 아난다는 5백 명 장로들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느끼고는 암송을 시작했다.     

 <스승 붓다가 말했다. 

 “수부띠여, 실로 구도자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해 보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수부띠여, 

 이 ‘살아 있는 것(有情)’이란 생각(衆生相)은 

 생각이 아니며(非相)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여래가 살아 있는 것이라고 설한 것들은 

 실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니라.”>

 아난다는 기원정사에서 붓다가 이 부분을 설할 때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지금은 바로 이해가 되었다. 왜 ‘살아 있는 것(有情)’이란 생각이 틀린 생각이라고 했을까 하고 의아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집하고 집착하는 모든 존재(相)들은 결국 성주괴공(成住壞空), 생성되어 머물다가 파괴되고 소멸되므로 붓다는 그렇게 설했을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불안(佛眼)과 ‘중생의 눈’ 차이였다. 스승 붓다는 눈앞의 존재만 보는 것이 아니라 존재 너머의 실체까지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살아 있는 것’이란 임시로 붙여진 이름일 뿐이지 영원한 실체는 없다(空)고 봐야 옳았다. 그래서 붓다는 ‘살아 있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수부띠여, 

 여래는 진실을 말하는 자이고,  

 그렇게 말하는 자이며, 다르게 말하지 않는 자이며, 

 거짓되게 말하지 않는 자이기 때문이다.”>

 아난다는 ‘여래는 그렇게 말하는 자’의 뜻만큼은 기원정사 시절에도 바로 이해했다. 붓다가 ‘그렇게(如)’란 말을 가끔 사용했던 것이다. 제자비구들에게 어떤 내용을 설명하면서 표현을 정확하게 할 수 없을 때는 ‘그렇게’라는 말을 꺼내곤 했던 것이다. 무언가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때는 그 상황을 직접 겪어보라고 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가령 사과를 설명하고자 할 때 사과를 제아무리 설명을 잘한다고 해도, 가령 사과의 색깔은 붉고 맛은 달콤하다고 표현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직접 보고 먹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란 뜻이었다. ‘그렇게’는 그러한 경우에 사용하는 말이었다. 여래(如來)란 뜻도 ‘그렇게(如) 오다(來)’란 말로써 ‘그렇게’ 속에는 위없이 깨달은 붓다의 실존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서사가 들어 있었다.

 <“그래서 또 수부띠여, 

 여래가 이제 철저하게 깨달아 보여주시고 생각하시는 법, 

 거기에는 참된 것도 없고, 허망한 것도 없다.

 수부띠여, 이것을 비유를 들어 말하면, 

 어둠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아무것도 보지 못함과 같다.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머무는 구도자들도 그같이 보아야 한다. 

 그는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머무는 상태에서 보시를 행한다.

 수부띠여, 이것을 또 비유를 들어 말한다면, 

 눈이 있는 사람이 밤이 지나 태양이 떠올랐을 때 

 여러 가지 빛깔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사물 가운데 머물지 않는 구도자도 

 그와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사물 가운데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한다.”

 “그리고 수부띠여, 

 실로 훌륭한 젊은이들과 딸들이 이 법문을 들어 

 기억하고, 외우고,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고 하자. 

 수부띠여, 여래는 깨달은 사람의 지혜로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다. 

 수부띠여, 여래는 깨달은 사람의 눈으로 이런 사람들을 보고 있다. 

 수부띠여, 여래는 이와 같은 사람들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 

 수부띠여, 이러한 모든 사람들은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복덕을 쌓을 것이며 틀림없이 가지게 될 것이니라.”

 “또 수부띠여, 

 여자든 남자든 오전 중에 강가 강의 모래알만큼의 몸을 바치고, 

 또 마찬가지로 낮에도 강가 강의 모래알만큼 몸을 바치고, 

 저녁에도 강가 강의 모래알만큼 바치고, 

 이런 방법으로 무한히 긴 기간 몸을 바친다 해도, 

 이 법문을 듣고 비방하지 않는다면, 

 이쪽 편이 이 일 때문에 더욱 많은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복덕을 쌓는 것이 된다. 

 하물며 베껴 쓰는 것에서부터 배우고, 기억하고, 외우고, 

 이해하고, 남을 위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에 이르기까지 

 해주는 자가 있다면 더욱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니라.”>

 아난다의 암송을 여기까지 들은 5백 명 장로들이 합송을 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장로는 없었다. 암송은 아난다 한 사람이지만 합송은 5백 명이 하므로 그 소리는 칠엽굴을 울리는 음악소리와 같았다. 성스럽고 거룩하고 장엄했다. 아난다는 합송을 듣는 순간 법의 향기를 맡곤 했다. 그런 이유로 법향을 맡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스승 붓다가 고맙기 그지없었다. 붓다뿐만이 아니었다. 성스럽고 거룩하고 장엄하게 화답해 준 5백 명 장로들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특히 한때 자신을 무시했던 마하깟사빠 장로는 스승 같은 벗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나 자애로웠던 수부띠 장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칠엽굴 깊숙이 들어왔던 햇살이 슬금슬금 물러나고 있었다. 해가 중천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햇살은 날마다 칠엽굴 안으로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같이 빠져나가곤 했다. 그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었다. 오전의 칠엽굴은 햇살이 들어와 밝아서 좋고, 낮에는 햇살이 물러가니 서늘해서 좋았다. 

 5백 명 장로들이 잠시 포행을 하기 위해 칠엽굴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칠엽굴 밖은 햇살이 쨍쨍했다. 대부분의 장로들은 다리를 풀고 팔을 몇 번 휘휘 젓고는 칠엽굴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수부띠 장로만 삡빨라나무 청량한 그늘을 조금 더 즐겼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