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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 부수듯 자아의 형성을 부수라”

이 학종 | | 2024-11-29 (금) 08:37

잴 수 있건

잴 수 없건

생겨나는 것

존재의 형성을

해탈한 님은 버리고

안으로 희열이 가득한

삼매에 들어

갑옷을 부수듯

자아의 생성을 부수었다.

- 전재성 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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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확)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노래 가사를 입증이나 하듯, 바삐 살다 보니 어느덧 이순을 훌쩍 넘겼다. 하릴없이 세월만 보낸 것 같기도 하고, 나름 애도 썼으나 이렇다 할 만큼의 성취도 없으니 허탈함이 없지 않다. 생로병사의 엄연한 흐름을 거역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닥친 현실임을 철저히 자각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매우 드물다. 아무려나. 머리칼은 하얗게 셌고, 이마에는 시나브로 서너 줄 깊은 주름이 패었다. 50살 무렵부터 찾아온 당뇨라는 지병을 달고 살아가야 하고, 몇 해 전에는 불현듯 부정맥이 발견되더니, 연초 건강검진에서 전립선이 비대해졌다는 진단결과를 받았다. 나이 먹어 은퇴하고 노년의 삶으로 접어들었으니 불청객처럼 병마가 찾아오는 건 당연할 터. 어쩌다 보니 살아온 세월보다는 훨씬 짧을 남은 삶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가가 과제로 남은 시절이 되었다.

우리 시대 큰 스승이셨던 법정스님은 생전 한 설법에서 ‘각자의 인생에서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라고 하는, 그러니까 ‘시간의 잔고’를 늘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각자의 생애에서 남은 시간의 잔고를 생각할 때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었다. 또한 들꽃들이 다른 꽃들을 의식하지 않고 저마다의 개성으로 아름답게 피어나듯이 사람들도 자신만의 꽃을 피울 때 진정한 아름다움을 갖추게 된다고 역설하셨다. 난해하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역대 선사들의 선구의 깊은 뜻을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법정스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또 설법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감동이다. 무소유라는 지고지순한 가치만을 소유하신 채 우리 곁을 떠나가신 법정스님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리워지는 건 나만의 감상일까.

<대반열반경>을 읽다 보면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여정을 떠나는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여정이 부처님께서 열반지인 꾸시나라로 향하는 과정임을 알기에 이 경을 읽을 때마다 왠지 쓸쓸함과 허전함이 밀려오곤 한다.

이 시는 마지막 여정을 떠난 부처님께서 당신의 열반을 예고하신 곳에서 읊으신 것이다. 암바빨리 숲을 떠난 부처님께서 벨루바가마까 마을에 들러 우안거를 보낼 때의 일이다. 부처님께서는 안거 중에 심한 질병을 앓았다. 극심한 고통에 사경에 들 정도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른 알아차림을 갖추면서 지치지 않고 질병을 견뎌내셨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내가 만약 시자에게 알리지 않고 수행승의 승단에 작별을 고하지 않고 궁극의 열반에 들면 옳지 않은 일이다. 지금 내가 삶을 유지하여 질병을 정진력으로 이겨내어 수명의 형성을 유지해야겠다.”

질병을 이겨내고 건강을 회복한 부처님 짜빨라의 탑묘가 있는 곳을 찾아가서 시자 아난다에게 당신의 심경을 이렇게 전했다.

“아난다여, 웨쌀리 시는 아름답다. 우데나 탑묘도 아름답다. 고따마까 탑묘도 아름답다. 쌋땀바 탑묘도 아름답다. 바후뿟따 탑묘도 아름답다. 싸란다다 탑묘도 아름답다. 짜빨라 탑묘도 아름답다. 아난다여, 누구든지 네 가지 신통의 기초를 닦고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만들고 확립하고 구현시켜 훌륭하게 성취했다면, 아난다여, 그가 원한다면 일 겁이나 일 겁 남짓 머물 수 있을 것이다.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신통의 기초를 닦고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만들고 확립하고 구현시켜 훌륭하게 성취했다. 아난다여, 여래가 원한다면 일 겁이나 일 겁 남짓 머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이와 같은 세 차례에 걸친 명백한 언질에도 불구하고 아난다는 그 뜻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 아난다로부터 부처님께서 세상을 불쌍히 여겨 많은 중생들의 이익을 위하여 일 겁 남짓 머물러 달라는 요청이 없자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에 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셨다. 그리고는 지금부터 삼 개월이 지난 뒤에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을 결심하셨다. 이윽고 부처님께서는 짜빨라 탑묘에서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른 알아차림을 갖추고 ‘수명의 형성’을 놓아버렸다. 그러자 그 순간 대지가 진동하고 공포의 털을 곤두세우게 하는 천둥이 내리쳤다.

이 시는 부처님께서는 바로 이때를 맞추어 읊은 감흥 어린 시구이다. 여기서 말하는 ‘수명의 형성’은 물질적인 생명의 기능, 즉 몸의 수명을 의미한다.

굉장한 대지의 진동이 일자 그때서야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께 그 원인과 조건을 물었고, 부처님의 그 원인, 즉 대지의 진동이 일어나는 여덟 가지를 조건과 원인을 설명하셨다. 그 여덟 가지 가운데 맨 마지막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원인과 조건이 바로 ‘여래가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른 알아차림을 갖추며 수명의 형성을 놓아버릴 때’와 ‘여래가 잔여가 없는 열반의 세계로 완전한 열반에 들 때’이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아난다가 뒤늦게 일 겁을 머물러 주실 것을 세 차례에 걸쳐 간청하였지만, 부처님은 가납하지 않으셨다. 이후 부처님은 수행승들을 다 모아놓고 삼 개월이 지난 뒤에 완전한 열반에 들 것임을 선언하신 후, 다음과 같은 시를 읊으셨다.

연로하여 나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대들을 버리고 가니

나 자신을 피난처로 삼았다.

수행승들이여, 방일하지 말고

새김을 확립하고 계행을 잘 지켜라.

잘 집중된 사유로

자신의 마음을 수호하라.

이 가르침과 계율을

방일하지 않고 닦는 자는

태어남의 윤회를 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