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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불교에서 간화선을 대표하는 선지식이었던 고우(古愚 1937~2021) 스님의 열반 3주기[(24. 8. 25(음 7.22)]를 앞두고 스님의 수행 일대기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자』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고우 스님께서 1961년 불치병을 만나 인생을 포기하는 마음으로 절에 갔다가 불교를 만나 간화선에 발심하여 평생 정진하다가 깨달음을 이루고 법납 60세로 2021년 열반할 때까지의 수행 일대기를 담고 있다. 

고우 스님은 군 복무 중 불치병을 얻자 세상을 하직하는 마음으로 김천 수도암으로 갔다가 불교를 만나 1961년 25세에 출가하였다. 

이듬해 대한불교조계종이 출범하자 일제강점기 불교의 폐풍이었던 대처승을 승단 밖으로 내보내는 정화운동이 일어났다. 고우 스님도 정화에 참여하는 동시에 당대의 대강백이었던 고봉 스님, 관응 스님, 혼해 스님에게 경전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불교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 먹던 약도 버렸지만, 병이 저절로 나았다. 강원 이력을 마칠 때 화두 참선에 발심이 나서 1965년 기장 묘관음사 향곡 스님 문하에서 첫 안거를 한 뒤 평생 선의 길을 걸었다. 

고우 스님은 1965년에 묘관음사 길상선원으로 가서 조실 향곡 스님께 인사를 드렸다. 향곡 스님이 물었다.

“강원 공부는 했느냐?”

“고봉‧관응‧혼해 스님께 사교 『금강경』까지 보고 대교과 『화엄경』 공부를 못 하고 참선하고 싶어 선방에 왔습니다.”

“그래. 그러면 화두는 ‘마음도 아니고, 한 물건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가?’ ‘이 뭣고?’ 화두를 들거라. 그동안 강원에서 ‘일체유심조’라 하여 마음도 배웠고, 마음이 부처라 하여 부처도 배웠을 거고, 한 물건이라는 것도 배웠겠지만, 그거 다 아니다. 이걸 화두로 의심해서 참선 열심히 하거라.”

이렇게 하여 고우 스님은 “마음도 아니고, 한 물건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화두를 참구하기 시작한다. 성철 스님도 1967년 해인총림 동안거에서 ‘백일법문’을 하실 때 대중들에게 이 화두를 준 것을 뒤에 알게 되었다. 향곡, 성철 두 선지식은 당시에 참선 수행자들에게 같은 화두를 준 모양이다. 

_58p, 「묘관음사 선원에서 참선을 시작하다」 중에서 

봉암사는 구산선문의 하나로 서기 879년에 희양산문으로 개산하여 참선 전통을 이어오다가 1947년 성철, 자운, 보문, 청담 스님 등이 ‘부처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기치로 결사가 이루어진 곳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년 뒤 한국전쟁이 나자 결사는 중단되었고 봉암사는 국군의 소개령과 종단 정화의 혼란 등으로 방치되고 말았다. 

1969년 고우 스님은 법연, 법진, 무비 등 수좌 도반 10여 명과 함께 구산선문과 결사의 전통을 되살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자’는 뜻을 모아 봉암사 제2결사를 시작하였다. 고우 스님을 비롯한 수좌 도반들은 봉암사만이라도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수좌 원융 도량을 서원하고 실천하자며 뜻을 모았는데, 이것이 바로 봉암사 제2결사 정신이다. 

초기에 고우 스님은 봉암사 총무 소임을 맡아 봉암사의 방대한 사찰림을 베어내던 산판 문제를 해결하다 감옥에도 가는 등 온갖 수난을 당하면서도 마침내 사찰림을 지켰다. 그리고 1977년에는 주지 소임을 맡아 쌍용그룹 김석원 회장의 도움으로 선방을 지어 선찰다운 면모를 갖추고는 2년 만에 주지를 내놓고 제방 선원을 오가며 정진했다. 스님이 돌아가실 무렵에는 전국선원수좌회 스님들과 봉암사 대중들이 논의하여 “지금의 봉암사가 있게 한 큰 공로자이시니 봉암사에서 돌아가시게 하고 전국선원수좌회장으로 최고의 예우로 모시자” 하여 봉암사 동방장실에서 열반에 들었다. 

이 책에서 1969년 봉암사 제2결사 이야기가 정리되어 공개되는 것은 이 고우 스님 일대기가 처음이라 한국불교 현대사에서 사료적 가치도 큰 책이라 하겠다.  

고우 스님은 평생 한국의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 수행을 하였는데, 33세인 1971년에 문경 심원사에서 좌선 중 ‘무시이래(無始以來)’의 뜻을 깨닫고는 스스로 돈오하였다고 생각했다. 그 뒤 보임한다며 1975년 남해 용문사 염불암에서 유유자적하던 중 갑자기 성철 스님을 만나게 된다. 당시 돈오점수 견해를 갖고 있던 터라 성철 스님에게 삼배를 올리고는 대뜸 “돈오점수가 맞지 않습니까?” 하고 대들었다. 그러자 성철 스님은 획하고 돌아누워 등을 보였다. 고우 스님은 하는 수 없이 물러나고 말았는데, 후일 그것은 성철 스님 법문을 바로 알지 못하고 속았다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고우 스님은 참선 중 처음으로 큰 체험을 한다. 당신은 뒷날 이 심원사 깨달음을 ‘공 체험’이라 하였는데, 고우 스님께서 직접 남기신 말씀을 들어보자.

“하루는 아침에 좌선을 하고 있는데 불현듯 ‘무시이래無始以來’라는 구절이 떠오르더니 ‘그 무시이래가 비롯함이 없는 아득한 옛날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이구나!’ 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강한 느낌이 왔어요. 엄청나게 환한 느낌이 와서 기분이 너무 좋았지요. 그래서 『서장』을 찾아 살펴보니 그전에는 이해 안 되던 대목이 화두 빼고는 다 이해가 돼요. 화두도 이젠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는 아주 좋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공에서 공을 여의었어야 했는데.”

35세에 고우 스님은 심원사에서 공空에 대한 체험을 한 것이다. 그동안 강원에서 불교를 공부하면서 공에 대하여 이론적으로만 알았는데, 이제는 마음으로 체험하게 되어 확신이 들었다. 마치 다 깨달은 것 같았다. 

_119p, 「감옥살이와 심원사의 공空 체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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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 스님(사진=조계종출판사)
 

1987년 50세에 고우 스님은 스스로 돈오하였다는 생각이 ‘백척간두 진일보’에 막혀 있어 갑갑해하던 차 각화사 동암에서 홀로 정진하던 중 우연히 <육조단경> 「정혜불이품」을 보다가 ‘정과 혜가 하나가 되어도 도가 아니다. 통류하여야 도다’ 하는 대목에서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 뒤 경전과 선어록을 샅샅이 살핀 끝에 팔만대장경의 근본이 중도(中道)라는 것을 확인하였고, 그동안 공부하던 돈오점수는 교학(敎學)의 입장이고 선(禪)은 돈오돈수(頓悟頓修)가 정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머리맡에 책이 한 권 있어 무심코 집어 보니 『육조단경』이었다. 『단경』을 펼쳐 보던 중 우연히 「정혜불이품」중에 “정定과 혜慧가 둘이 아니다. 정과 혜가 하나가 되어도 비도非道다.” 하는 구절을 보고는 벼락이 치는 듯한 충격을 받고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그동안 스님은 ‘정과 혜가 하나가 되면 도’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고는 일어나 그 뒤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정과 혜가 하나가 되어 통류通流해야 도道다.”라는 구절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알고 있던 깨달음에 대한 생각과 너무나 달라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으니 드디어 확연해졌다.

그런데 ‘정혜가 둘이 아니고 통류해야 한다’는 『단경』의 구절을 알게 되니 또 다른 것을 깨치게 되었다. 참으로 묘했다. 예전에 누가 ‘백척간두百尺竿頭 진일보進一步’의 뜻을 물었는데 제대로 답을 못 해주고 거기에 막혀서 상당히 고심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이날 불현듯 ‘통류通流’를 알게 되니 그 막혀 있던 ‘백척간두 진일보’의 뜻을 깨치게 된 것이다.

_182p, 「각화사 동암에서 깨닫고 돈오점수의 한계를 알다」 중에서 

1987년 고우 스님은 수좌 도반들과 함께 해인사에서 선화자 수련법회를 열었는데, 선승 500여 명이 며칠 동안 한 도량에서 정진하여 불교사에서 유례없이 선풍이 크게 일어났다. 

2005년에는 간화선의 대중화를 위해 무여, 혜국, 의정 스님 등 전국 선원장 스님들과 함께 『조계종 수행의 길, 간화선』(조계종출판사)을 펴냈다. 또한 중도와 간화선을 알리기 위해 전국 어디든 가서 법문하셨고, 70세에 창건한 작은 암자 봉화 금봉암에 주석하며 찾아오는 수행자들의 수행을 도왔다. 

스님은 부처님이 깨달은 중도(中道)가 위기로 가는 인류가 화합 회통하는 문명사의 대안이라 늘 말씀하였다. 고우 스님은 간화선이 비록 중국에서 출현하였지만 지금은 공산화로 선맥(禪脈)이 단절되었고, 일본에도 간화선이 전해졌으나 교학과 습합되어 점차(漸次)법으로 변질되었음에 비하여 우리 한국 간화선은 직지, 돈오 선풍이 그대로 성성하게 전승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인류 최고의 보물이라 하였다. 고우 스님은 앞으로 인류가 양극화되고 물질문명의 폐해가 드러날수록 정신문화의 최고봉인 간화선의 가치와 지혜가 주목받을 것이라 예견하고 간화선의 대중화, 세계화를 염원하였다.  

고우 스님은 70세에 이르러 간화선을 위해 대중 설법을 시작하였는데, 주로 불교인재원과 조계사 선림원 등에서 재가자들에게 중도와 화두 참선하는 법을 자상하게 안내하였다. 그리하여 스님께 화두와 법명을 받은 재가자들이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렇듯 간화선 선지식 고우 스님을 세상으로 나오게 한 이가 이 책의 저자 박희승 거사다. 지금 한국명상지도자협회 사무총장 소임을 맡고 있는 박 거사는 2002년에 각화사 선원장 고우 스님을 처음 만나 2021년 열반에 이를 때까지 스님의 법문을 듣고 공부하며 간화선 대중화에 함께한 재가불자이다. 

박 거사는 그동안 고우 스님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와 스님 열반 이후 도반 스님들을 찾아가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는 한편, 전국 각지의 고우 스님 수행처를 답사하며 꼼꼼히 기록한 덕에 고우 스님의 수행 일대기가 대중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이 책에는 간화선 선지식 혜국 스님과 성철 스님의 영원한 시자 원택 스님의 추천사가 앞부분에 실려 있으며, 고우 스님의 탄생부터 군대에서 병을 얻게 된 이야기와 출가, 강원 공부 과정, 현대 선지식들과의 문답과 일화, 수행 체험과 깨달음, 공심으로 일한 봉암사ㆍ조계사 소임 살이와 10.27법난 수습 이야기, 두 번의 깨달음과 성철 스님과의 짧지만 인상적인 법거량 인연, 간화선의 지혜와 대중화에 쏟은 열정 등이 총 4장에 걸쳐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박희승 지음 | 조계종출판사

256쪽 | 138*200mm  

정가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