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할 여정을 끝내고

슬픔 없이 일체의 관점에서 해탈하고

일체의 속박을 버린 님에게

고뇌는 존재하지 않는다. 

새김을 갖춘 님들은 

스스로 노력하지

주처를 좋아하지 않는다.

백조들이 늪지를 떠나는 것처럼

그들은 집마다 그 집을 떠난다. 

쌓아 모으는 것이 없고

음식에 대하여 완전히 알고

있음을 여의고 인상을 여의어

활동영역에서 해탈한 님들,

허공을 나는 새처럼 

그들의 자취는 찾기 어렵다. 

번뇌를 부수고

음식에 집착하지 않고

텅 비고 인상을 여의어

활동영역에서 해탈한 님들,

허공을 나는 새처럼 

그들의 자취는 찾기 어렵다. 

                -전재성 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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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확) 

법정스님께서 펴낸 여러 저술 가운데 <버리고 떠나기>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표지에는 ‘단순하게 더 소박하게’라는 소제목과 함께 “적게 가질수록 더욱 사랑할 수 있다. 어느 날엔가는 적게 가진 그것마저도 다 버리고 갈 우리 처지 아닌가.”라는 금언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이 책 가운데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라는 문장은 불교 수행의 요체를 불교적 표현을 빌리지 않고서도 적확하고 동시에 멋있게 드러낸 것이다. 

불교수행이란 무엇인가? 찰나 찰나마다 나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온갖 느낌들을, 육근을 통해 만나는 온갖 대상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아닌가. 이를 통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세상의 이치[諸行無常]를 깨닫고, 그런 것에 집착하고 머무는 본능 같은 욕망이 고통[一切皆苦]을 불러오며, 궁극적으로 몸과 마음조차도 인연화합에 의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諸法無我] 진리를 이렇게 간결하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니! 법정스님의 글을 읽어가다 보면 ‘해야 할 일을 다 해 마친’ 경지에서 써 내려간 글이라는 강한 느낌을 받곤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부처님의 이 시는 <법구경- 담마파다> ‘거룩한 님의 품(Arahantavagga)’에 등장한다. 이 시는 부처님께서 스스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 내용으로, 아라한의 경지를 성취한 성자들의 삶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내용들이다. 아라한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평소 궁금했던 분들에게 그 답을 알려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아라한의 경지를 목표로 정진하는 모든 수행자들이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이유는 부처님처럼 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시구 ‘가야 할 여정을 끝내고’는 윤회의 길을 멈췄다는 의미이다. 일체의 번뇌를 모두 부순 이는 윤회의 소용돌이를 벗어났기에 여정을 끝냈다고 표현한 것이다. 

- 시어 ‘슬픔 없이’는 윤회의 원인이 되는 슬픔이 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 시어 ‘일체의 관점’은 다섯 가지 존재의 다발[오온], 열두 가지 감역[십이처], 열여덟 가지 인식의 세계[십팔계]의 현상들을 말한다. 

- 시구 ‘일체의 속박’은 네 가지 계박을 말한다. 네 가지 계박이란 탐욕의 축적에 의한 계박[貪身繫], 악의의 축적에 의한 계박[瞋身繫], 규범과 금기의 취착에 의한 신체적 계박[戒禁取身繫], 독단적 견해의 고집에 의신 신체적 계박[此實執身繫]이다. 

- 시어 ‘고뇌’는 신체적 고뇌와 정신적 고뇌 두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신체적 고뇌는 더위나 추위 등에서 오는데 번뇌를 다한 거룩한 님[아라한]에게도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지와까의 문답에서 ‘궁극적으로 번뇌가 소멸된 자에게 고뇌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 시어 ‘새김’은 사띠의 번역어로 선정과 통찰 수행을 의미한다.  

- 시어 ‘주처’는 욕망 또는 집착의 경향을 말한다.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 즉 오욕락에 집착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 시어 ‘백조’는 백조의 특성 때문에 부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백조는 물고기와 같은 풍부한 물웅덩이에 있어도 필요한 음식량을 섭취하면 미련 없이 떠나는 속성이 있다고 한다. 

- 시구 ‘쌓아 모으는 것이 없고’는 두 가지의 축적, 즉 업의 축적과 필수품의 축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의 축적에는 착하고 건전한 것과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 있다. 필수품에는 네 가지 필수품의 축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 승원에서는 한 조각 설탕과 네 조각의 버터, 한 날리(nāḷi)의 쌀은 필수품의 축적이 아니라고 봤다. 

- 시구 ‘음식에 대하여 완전히 알고’는 궁극적인 혐오의 의식으로 완전히 음식을 아는 것(지혜로서의 앎), 물질적 음식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몰아내는 앎(판단으로서의 앎), 그리고 버림으로 이끄는 앎의 세 가지 형태를 수단으로 음식을 완전히 안다는 뜻이다.       

- 시구 ‘있음을 여의고 인상을 여의어’는 삼해탈을 의미한다. 해탈에는 공해탈, 무상해탈, 무원해탈이 있는데, ‘있음을 여의고’는 공해탈을, ‘인상을 여의어’는 무상해탈을 뜻한다. 

- 시어 ‘활동영역’은 세 가지의 세계[三界], 네 가지 태어남의 방식[四生], 다섯 가지 운명[五趣: 지옥, 아귀, 축생, 신, 인간], 일곱 가지 의식의 상태[七識住], 아홉 가지 주처[九衆生居]를 말한다.